기획연재

[기획연재: 지역문화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 ③ ] 지역문화예술정책은 지역에서!(강구민)

CP_NET 2024. 8. 7. 21:23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라는 기획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새정부에 대한 제안이라기보다는 새정부 구성을 계기로 현단계 정책과제를 살피자는 기획이었습니다. 이 기획에는 100인의 예술가, 기획자, 정책연구자 등이 참여하여 현장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과제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이 기획에 대한 분석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단과 제안에는 구체적 현장으로서의 지역에 대한 여러 관점이 드러납니다. (관련기사:[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 분석-정책 관심도와 흐름, [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 분석-정책에 대한 관심과 흐름2)
 
지역문화의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은 지역예술과 지역문화의 현장에서 정책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현장에서는 어떠한 변화와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책의 작동에서 토대로서의 현장에 주목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지원사업의 안이냐 밖이냐를 떠나 스스로 자신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현장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의 재구성을 전하고자 합니다.

척박하기 때문에 연대로 성장해온 대구 독립영화 씬 _ 권현준
창작열, 동료의식, 지원기관의 노력_ 이승우

 

 

2019, 지역에서 직접 문화정책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문화민주주의!’라는 생각으로 문화도시 공모를 했을 때가 생각난다. 당연한 것이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역 중심의 지역문화정책의 재편성해보겠다며 예술가, 기획자, 활동가, 문화행정이 모였었다. 수차례의 라운드테이블과 정책회의를 거치며 서로의 입장과 현실을 공유하면서 몇몇 목표를 설정했다. 지역의 지역문화예술 자생성은 거의 전무하였고, 그래서 야생성을 키우는 사업을 통해 몇몇 인력이나 중간지원조직을 지역에 남기는 목표가 있었다.

 

유럽의 문화수도나 창조도시의 이론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분명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자료를 탐색하며 문화도시 계획을 작성하던 중 발견한 것은, 우리나라 문화정책과 현장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화, 예술, 공동체, 사회혁신과 같은 영역에 연구와 정책 생산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의미 있는 연구와 정책이 서울과 수도권의 국책연구기관이나 대학 산하 연구소, 중간지원조직, 기획사에서만 나올 뿐 지역에서 나온 연구결과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정책을 연구하고 설계하는 정책생산 기능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다 보니 지역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정책의

구체적인 메시지들이 전달되기 어려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대부분 수도권의 자장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를 만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역에도 문화예술정책 생산기능이 필요한 이유이다.

 

중앙에서 설계한 문화예술정책은 문화와 예술을 분리하는 것부터, 지역 행정의 인식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시・도비 매칭을 요구하는 것, 지역의 기획인력의 부족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평가하는 것 등 현장과는 더 큰 괴리를 만드는 반작용으로도 작용하는 실정이다.

 

 

지역문화인력은 어떻게 성장하나?

 

2019년 영천은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에 선정되었으나, 문화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문화예술계에 큰 갈등이 있었다. 이로 인해 행정에서 3년간 직접 사업 운영을 하였고, 그간 기간제 근로자 2명을 뽑아 공모사업을 관리하는 일로만 사업을 진행시켰다.

 

한편, 위탁 과정에서 기획자로 선정되었지만 2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잠시 미국에서 휴식을 취하고 돌아와서는 그곳에서 본 데로 지원받지 않으나 활동하는 NPO”를 지역에서 만들고자 하였다. 여름부터 임의단체를 만들고 지역에 마음을 함께 하는 문화인들의 도움을 받고, 청년 기획자들을 만나 여러 번의 숙고 끝에, 202112월 문화체육관광부 설립인가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2022년 지역문화진흥원의 협력형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우리만의 속도와 스타일로 현장을 일구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문화행정은 2명의 기간제 근로자를 지역문화인력이라기보다는 행정업무 지원인력으로 여겼다. 이들의 처우나 미래 역할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함께 고민하고 돕는 문화예술단체와 전문인력을 단순히 업체 정도로 생각하였다.

 

지역문화행정만이 아니다. 2020년도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지역 문화예술교육 중간지원조직 양성’ 관련 공모사업이 있었을 때, 너무 지역에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계획서를 준비하고 지원하였다. 그런데 선정 결과는 기대를 무색케했다. 대부분 선정 지역이 지역문화재단이 있는 곳이었다. 공고문에서는 지역 민간 문화예술교육 단체 발굴한다고 했는데, 우리처럼 지역문화재단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발굴’의 기회가 없는 것인가.

 

 

지역 문화예술공백 현상

 

지역에서 최소한의 문화예술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이른바 문화예술공백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지역의 자생성을 키워갈 토대는 허약해지고 그에 따라 지역문화예술공백은 커지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지역문화 현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예술 공백. 

 

인구 10만 명 미만의 도시들은 실제로 단단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기에 유리한 지리적 이점이 있다. 대도시에 비해 예술가, 기획자, 활동가 등의 활동 공간이 겹치거나 인접해 있기에 커뮤니티 혹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용이하며 그러한 연결이 새로운 기획을 만들어낼 확률도 높아진다. 하지만 이는 가능성이지 현실은 아니다. 대부분의 문화예술 공급이 공모사업을 통해 실현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소도시 문화예술은 지원 없이는 활발해지기 힘들었다. 중앙의 공모사업은 지역 문화예술계의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높은 수준의 기획을 요구한다.

 

지금은 지역에도 기획력이 있는 문화예술단체와 기획사가 있지만 여전히 이들에게 공모사업의 허들은 높다. 기획력은 정책 이해 능력과 정책 생산 능력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다보니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와 기획자들은 공모사업의 높은 허들에 앞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사업의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지역에서의 활동이 위축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하면서 문화공백 현상이 지역의 문화예술계에 퍼져있다이러한 문화공백 현상은 현재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문화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신뢰한다면 문화공백은 곧 지역의 미래탐문역량의 저하로 이어진다. 미래 도시에 대한 담론과 실천은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소도시에서는 지속적인 실패에 직면하는 상황인 것이다.

 

둘째, 지역형 문화예술인력의 절대적 부족 

 

지역문화인력을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고 문화예술교육사가 호출된다. 하지만 지역에 필요한 인력은 문화예술교육사만이 아니다. 지역이야 말로 문화예술기획자 또는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 특정 장르 의 전문성을 가진 인력은 예술가도 필요하지만 기획과 새로운 정책 발굴과 시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대부분의 소도시처럼 영천에서도 문화원 등 문화기관에서 문화전문인력 지원,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 등을 통해 인력이 배출되고 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이를 규정하는 단어조차 없는 현실에서 지역문화예술 인력은 안정적인 여건에서 지역과 성장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문화특화지역 사업이 종료되면 수년간 수많은 단체들의 에너지와 활동과 경험이 단절된다. 뿐만 아니라 사업과 함께 성장해온 ‘사람’의 자리도 없어지는 것이다. 

 

2019년 이래 5년간 영천에서 문화특화지역 조성 사업과 협력형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을 포함하여 청년문화예술 지원을 통해 2019년 10개를 시작으로 현재는 100개 정도의 단체와 동아리가 도시의 같은 시공간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게 되었다. 크지 않은 예산으로 지역문화예술 콘텐츠를 생산하고 확산함은 물론, 지역민에게 찾아가 문화예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문화를 매개로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원을 받은 단체나 동아리에서 정작 우리 지역문화인력과 단체에 대한 응원이 필요할 때, 아무런 메시지가 없을 때 참 낙담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더 큰 어려움은 정책의 설계에서 지역문화예술 인력과 생태계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준점이다. 재단이 있거나 인구가 20만 명이 넘은 도시와 10만 명 미만의 도시 간에 문화예술적 저변과 자산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초지자체 중에는 지역문화예술에 투입되는 문화예산이 거의 전무한 곳도 많다. 그러다보니 국도비 사업을 사활을 걸고 도전해야 한다. 물론, 인구감소지역 등의 가점이나 할당이 있기는 하다.

 

공모사업을 준비하면서 갖게 되는 수많은 회의는 지역의 필요를 포착하는 것이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숙의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운 좋게 사업이 선정되어도 실무자들은 기획, 섭외, 홍보, 실행, 보고, 정산 등의 매우 세분화된 프로세스를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며 사업을 이끌어가야 한다. 여기에 더해 지역에서는 민원에도 그대로 노출된다.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공모사업과 서류를 하다 보니 생긴 지역민들의 문의와 민원도 상대적으로 많다. 그 과정에서 지역 활동에 대한 회의감도 생긴다지역문화예술정책에서 지역, 특히 인구감소지역과 같은 소도시에 특화된 지역문화예술인력 정책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 “문화예술 유통, 소비 경험의 부재

 

문화예술에서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지역에서는 예술가가 이러한 문화예술을 유통하거나, 시민들이 소비하는 경험이 부족하다. “지역은 문화예술은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곳이 아닌, 소비하는 곳이다”라는 문화행정의 인식은 지역 축제나 행사에 여과 없이 투영된다. 그러나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저 상품을 소비하듯이 작품을 관람하는 것만으로는 경험이 축적될 수 없다.

 

한편 문화예술 공간은 있지만 “경험 공간”은 아니다. 문화공간이 장소성을 획득하려면 경험의 장치가 세세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은 작게도 크게도 가능하고, 무대에서도 가능하고 공간 자체를 함께 가꾸고 아끼는 것에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역에서 문화공간은 철저하게 “신성화된 공간”이다. 새로운 시도와 기획은 용납되지 않는 무언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지역에서 문화공간을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이 다른데, 중앙에서는 같은 기준으로 공간사업을 평가하고 내려보내고 있다.

 

 

5년 간의 실험은 마침표를 찍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있기 직전, 2019년 하반기 영천의 문화예술계가 한번 들썩인 적이 있다. 그 중심에서 약 1년을 긴장된 상태로 정신을 붙잡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부족하나마 지역 문화의 좌표를 설정하려고 연구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구와 정책생산이 없다보니 갈등과 경쟁의 단어들이 여과 없이 문화의 현장에서 사용되었다.

 

그 순간 다짐했다. 함께 하는 이들과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그래서 약 1년의 고민을 거쳐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다양한 주체들과 협업했다. 젊은 인력들이 지역문화예술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적 세계를 스스로 구축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진중하게 팀 빌딩을 해왔다. 지역에 좋은 문화예술계 어른들이 있어 가끔은 수도권의 좋은 분들의 자문도 받고 응원도 받았다. 가능하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랜드에 뒤처지지 않고자 공부했고 적용을 시도했다.

 

몇몇 지역문화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단체와도 협력하였고, 새롭게 시작하는 동아리들과 지역의 문화 관련 의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남았고, 경험이 형성되었으며, 지역문화인력, 문화예술교육, 문화다양성, 미래세대, 신중년 생애전환, 생태문화 등의 의제를 도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의욕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러한 의제들이 영천의 문화예술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리가 문화정책을 제안해도 시청이나 군청에서 들어주나요?

 

그렇게 동력을 잃고 있고 사람들도 곧 흩어질 것이다. 문체부는 지역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번 연구해보면 좋겠다. 거기에서 지역문화인력과 지역문화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천에서는, 경북에서는 나름의 지역문화정책을 고민하는 이들이 현장-대학-예술가 사이에 네트워크로 형성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사업을 청도군과 함께 진행하면서도 월별 행사에 참여하는 기획자-예술가-활동가 등이 지역문화정책을 발굴하는 리빙랩(Living lab)을 병행하고 있다. 좋은 지역문화정책 아이디어들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어떤 참여자가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해도 되요? 시나 군에서 들어주나요?” 모두 실패의 경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안 들어줘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행사만 하는 것보다 이렇게 행사 이후를 고민하는 것이 너무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4명인 엄마)

 

아이러니하게도 실패의 경험이 있는 이들이 내린 결론은 지역문화예술정책은 지역에서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문화예술 코디네이터가 이러한 일을 해가는 구체적이고 안정적인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의 시작으로 작은 포럼으로 열고자 한다.(“(가칭)지역에서 만드는 문화정책 포럼”/2024. 8. 23() 13:30/ 영천시 관내/ 자세한 사항은 영천시 문화공감센터인스타 참고)

아무쪼록 지역에서 직접 만드는 지역문화정책 연구모임, 코디네이터 양성 지원 등의 실천가능한 사업이 반영되길 기대해 본다.. 지역문화정책을 직접 조사하고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에서의 문화정책 역량이 지속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문화예술 코디네이터 인력이 대한민국 지역문화의 미래의 주축이라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래본다.

 

문화도시로 담고자 했던 지역문화예술 정책 생태계는 우리와 같은 소도시 지역문화예술 생태계와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실현 불가능하다. 지역문화예술에서는 기획보다 정책이 중요하다.

 

중앙에서 이 글을 읽는 정책 단위에 있는 분들의 열렬한 관심과 동참을 기다린다. 인구 10만 명 이하의 도시에 우리 지역문화예술계의 미래가 있다.

 

 


강구민. 도시사람콘텐츠랩 대표. 문화경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문화도시, 지역문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고향인 영천에서 현장에서 일한 지 5년차, 문화를 중심으로 두고 청년과 지역을 연결하고자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