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출발할 때 가졌던 기대, 이제 국가가 공급하는 예술정책이 아니라 현장의 참여를 통해 정책이 입안되고 실행되리라는 기대는, 혼란과 실망으로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민간위원회가 출범했지만 기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문화부를 통해 국가재정을 배분받아야 하는 경직된 예산구조는 위원회의 모든 기획과 실행을 압도하는 드높은 장벽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기존의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조직에 민간위원을 삽입한 기관의 구조는 의사결정과 실행 사이의 넓은 간극을 그대로 드러내며 시행착오와 혼란 그리고 때로는 격렬한 갈등까지 불러옵니다. 혼란은 실망으로 이어지고 현장의 관심은 식어갔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화부의 관계는 민간위원회가 무색할 만큼 위계화되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상은 추락해갑니다. 그러한 데에는 정권의 불법, 부당한 개입만이 아니라 현장과 괴리된 위원회의 현실 또한 원인이자 결과일 것입니다. 민간위원회를 통한 블랙리스트 실행은 그 추락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건입니다. 그리고 새정부 들어 2년이 지났지만 아직 ‘혁신’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이러한 과정은 협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낯설고 어려운 많은 과제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만이 아닙니다. 문화예술 분야만도 아닙니다. 협치는 공공영역에서 마주치게 되는 정책의 목표이자 과정이자 조직방식이고 실행구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협치”는 그 목표에도 불구하고 공공과 민간 모두에게 불편하기만 합니다. 공공은 진전된 성과 없이 계속 되는 프로세스에 불만이고 민간은 권한 없는 들러리라는 의심을 토로합니다. 공공은 파트너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어리둥절이고 민간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합의하는 공론장이 협소합니다. “협치 싫어!”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들도 익숙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치”는 사회 변화 속에서 공공과 민간의 관계와 역할을 재조정하는 중요한 방향키입니다.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이번호 이슈는 “정책의 난제들2 협치”입니다.
염신규의 “도착하지 않은 문화민주주의 시대의 거버넌스에 대하여”는 우리 사회에 ‘협치’가 도입되고 전개되는 양상에서 정책 목표와 현실의 괴리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상철의 “예술기구의 협치는 어떻게 가능할까”는 예술위의 조직 혁신과 관련하여 협치를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를 살피고 있습니다. 김정원의 “도대체 거버넌스란 무엇인가”는 거버넌스론의 전개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세 글에서 공유하는 문제의식이라면 ‘협치’는 솔루션이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 사회, 우리 정책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것, 그리고 과제의 해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의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번호 [데이터리뷰]는 데이터의 객관성도 생성과정에 개입되는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 해석까지를 아울려 살필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문화정책] 다섯 번째 글은 도시재생이 시설이나 건설 정책이 아닌 시민의 ‘도시에 대한 권리’ 운동이라는 것을 국내외 사례를 통해 살피고 있습니다.
매 호 준비를 할 때마다 어떤 이슈, 정책이 그 하나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이번 호 ‘협치’도 문화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며 결국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문제와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실을 근본적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개개의 구체적 문제에 충실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면서, 개별의 구체성에 함몰되어 현실의 복잡다단한 관계와 영향을 간과하지 않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답은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지난 걸음에 이어 한 걸음을 잇습니다. 독자 여러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소연)
4호 목차(20191001)
[이슈: 정책의 난제들2 협치] 도착하지 않은 문화민주주의 시대의 거버넌스에 대하여 _ 염신규
[이슈: 정책의 난제들2 협치] 예술기구의 협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_ 김상철
'에디토리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DITORIAL 06] “지역성 연구사례” (0) | 2019.12.02 |
---|---|
[EDITORIAL 05] “문화정책과 민주주의” (0) | 2019.11.05 |
[EDITORIAL 03] “예술인고용보험” (0) | 2019.09.02 |
[EDITORIAL 02] “정책의 난제들1 예술의 자생력” (0) | 2019.08.01 |
EDITORIAL 01 “정책과 통치성” (0) | 2019.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