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이슈: 예술인고용보험①] 제안에서 법제화까지-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CP_NET 2020. 6. 8. 09:35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을 담은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의 마지막 회기에 극적으로 통과되었다. 반면 예술인과 동시에 고용보험 적용대상으로 논의되어왔던 특수고용 형태의 노동자들이 제외하고 또한, 블랙리스트 후속조치의 내용을 담은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끝내 폐기되었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서 예술인고용보험은 올해 11월까지 시행령 등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예술인고용보험을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현재의 예술인고용보험이 어떤 맥락을 통해서 공론화가 되었으며 주요한 시기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논쟁들이 다시 조명되고 이후 예술인고용보험의 구체적인 시행과정에서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논의될 필요가 있다. 아래의 내용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예술인고용보험에 대한 최소한의 사전적인 공동의 맥락을 제안하는데 목적이 있다.

 

 

예술인의 요구로 시작된 고용보험 논의

 

언제 예술인고용보험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라는 점이다. 실제 1946년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서 확인되는 첫번째 사례는 2004년이 되어서야 언급된다. 당시 기초예술의 위기가 예술인 당사자들을 통해서 이야기 되면서 토론회나 국회에서 예술인의 경제적 상황을 조명하는 기사가 확인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면 2006년 원주에서 개최된 문화예술대토론회에서 예술인 권익대변 조직에 대해 노동조합에 준하는 법적지위 보장, 예술인과 제작자 사이의 고용 및 계약조건 개선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면서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정책의 필요성이 언급되었다. 하지만 이후 예술인고용보험에 대한 논의는 예술인공제회와 같이 예술인 자조제도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한계를 보이는데,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2007년에 민예총,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인복지제도와 관련한 정책협의기구가 만들어지고 2008문화예술인복지연대가 출범하게 된다. 여기서는 7가지의 정책과제를 제시했는데 그 중 “2. 문화예술인들이 ‘4대보험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속에 존재할 수 있도록 이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립하라는 요구를 통해서 기존 공제회 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넘어서는 4대보험 가입을 요구했다. 또한 그와 별도로 프리랜서 예술인에 대한 실업급여제도를 별도로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논의가 다시 수면에 떠오른 것은 2008년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주최한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였다. 당시 논의가 중요한 것은 기존 예술인공제회가 예술인 당사자의 자기 기여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한계에서 벗어나 공적 지원을 전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이 주요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는 별도의 예술인복지법의 제정 대신에 기존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하여 예술인에 대한 지위보장과 복지제도 도입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다. 이러던 것이 2011년 초 최고은 씨의 사망사고가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면서 별도의 <예술인복지법> 제정 논의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 당시 예술인복지법은 정병국, 서갑원, 전병헌, 최종원 등 4명의 대표발의로 제안된 상태였는데 이 중에서 서갑원 의원 안을 제외한 3명의 대표발의안에 모두 근로자 의제를 통한 고용보험 가입이나 특혜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상 예술인복지법의 제정논의에서 예술인고용보험은 기본적인 사항으로 포함된 셈이다. 하지만 해당 법의 제정과정에서 노동부 등의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근로자 의제를 포함한 고용보험 특례 적용에 대한 사항이 빠진다. 법 제정 당시에는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제도의 포함 역시 노동부의 반대로 포함하지 못한 채 2011년 말에 통과되었다.

 

 

근로자 의제를 우회한 예술인복지법

 

이렇게 통과된 <예술인복지법>은 사실상 예술인복지재단이라는 기관 설립 외에는 예술인 지위보장이나 사회보장 확대에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법이었다. 이후에 논란이 되니 지속적으로 법개정을 통해서 표준계약서의 적용 등을 보완하지만 애초 근로자 의제를 통해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예술인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만 접근하려다 보니 실효성이 없는 예술인복지정책이 지속되었다.

 

예술인고용보험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예술인 사회보험 적용 확대 등 창작안전망 구축을 국정과제로 확정하면서 이다. 당시 정부에서 제출한 추진계획은 20146월까지 실태조사 및 외국사례 검토 등을 통하여 적용가능한 방안을 마련하고 201412월에 고용보험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데, ‘예술인복지법을 근간으로 하여 예술인고용보험 특례의 형식으로 적용한다는 것을 담고 있었다. 이에 따라 나온 것이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한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연구보고서다. 해당 보고서는 예술인 노동시장 실태를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경제활동인구조사, 설문조사의 방식을 통해서 살펴보고 프랑스 엥떼르미땅 제도를 외국의 사례로 검토했다. 해당 보고서는 결론을 통해서 근로자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공연, 영상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인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고용보험에 포함하고 기타 예술인은 예술인복지사업으로 지원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그것을 제외하고 보험료나 가입 기간에 대해서는 별도의 특례 없이 기존 고용보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일부 변형하는 형태로 제시했다.

 

해당 연구가 별다른 정부의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제한적인 수준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후속조치도 나오지 않았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정과제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이후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문화예술인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고 지원정책을 통한 예술인의 선별, 즉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인의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빈곤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2016년에 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한 사회보험료 지원정책이 시행된다. 해당 제도는 임의가입 방식으로 예술인과 사업자가 사회보험료 지원을 신청할 경우 각각의 부담금에 50%를 지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지원 방식 탓에 사용자를 특정할 수 없는 대다수 기초예술인의 경우에는 사회보험료 지원대상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실제로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이 시행된 초기에는 기존에 근로계약 관계에 있었던 영화 등의 산업에서 주되게 지원대상으로 들어오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블랙리스트 이후라는 사회적 압력

 

이런 상황이 바뀐 것은 2017년에 이르러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문재인 정부가 다시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 정책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부터다. 이를 위해 20179월부터 예술인복지TF를 만들어 주요한 과제들을 논의했는데, 이 중 한 가지 의제가 예술인고용보험 논의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새예술정책을 발표하기로 하면서 새예술정책추진단이라는 형태의 기구 내에 예술인복지분과 방식으로 논의가 합쳐져서 논의된다. 해당 TF20179월부터 20181월까지 총 9차에 걸친 회의를 진행했다. 최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시한 안은 근로 계약 관계가 확인되는 일부 예술인들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임의가입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던 예술인복지재단의 사회보험료 지원정책이 매우 낮은 실적인 것을 근거로 의무가입 방식이 제안되었다. 또한 가입대상 역시 근로계약으로 간주할 수 있는 대상 외에 용역계약 및 공모/지원사업 등에 참여하는 예술인들도 대상으로 확대할 것이 제안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2018187차회의에 이르러서야 의무가입 방식이라는 틀을 확인하고 1158차회의에서 가입대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이 정리되었다.

 

이와 같은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의외로 예술인들의 필요성이 아니라 고용노동부의 수용성 여부였다. 특히 예술인고용보험제도 도입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의지가 강하게 확인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술인고용보험 논의는 지속적으로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하는 특수고용노동자 고용보험 논의와 속도를 맞추어야 한다는 논리에 의해 미끄러졌다. 그럼에도 블랙리스트 이후라는 문화예술계의 분위기 속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요구가 좀 더 강하게 관철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수용성과는 논외로 현 시점에서 예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형태의 제고를 구상한다는 합의가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2차례의 예술인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와 토론회가 진행되었고, 기존 의무가입 방식을 반대한 주요한 협단체 관계자들에 대한 설득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2018년에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새예술정책>에서 한국형 예술인고용보험 도입과 산재, 사회보험 실효성 제고라는 내용으로 포함되어 발표되었다. 이 과정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기존에 있었던 한국형 엥떼르미땅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지게 된 것인데, 이는 해당 논의가 예술계의 민간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기 기여를 중심으로 하는 엥떼르미땅이 한국적 상황에서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2018731일 고용보험위원회는 예술인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고용보험 적용 방안을 심의하고 의결하였다. 해당 발표에는 적용 제외를 최소화한다는 기본원칙 외에 보험료 부담에 대해서도 사업주의 부담 비율을 달리 적용할 수 있으며 24개월 동안 9개월 보험료를 납부한 비자발적 이직자 및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감소로 이직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포함되었다. 다만 출산급여는 포함되었지만 고용안정, 직업능력개발 사업은 제외되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한정애 국회의원 대표발의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2년 동안 해당 법률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루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인들은 <예술인권리보장법>과 함께 <고용보험법> 개정을 20대 국회의 중요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발표하고 특히 20204월에 진행된 21대 국회 총선에 맞춰 각 정당에 요구했다. 특히 지난 1월부터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장기화되면서 예술인들과 같이 취약한 사회안정망에 놓여 있는 사각지대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사실상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등 떠밀리듯이 20205월에 열린 20대 국회의 마지막 회의에서 <고용보험법> 개정이 주요한 안건으로 다루어질 수 있었지만, 그나마 대상수가 적은 예술인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수정되어 통과되었다.

 

 

가장 필요한 이에게 도움이 되도록

 

새삼스럽게 전국민고용보험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지만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용보험법>의 적용확대에 대해 미진한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배제했다. 예술인고용보험 역시, 법 통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작 가장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다. 5월에 통과된 법은 오는 11월에 발효를 예정하고 있다. 그때까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의 내용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마도 지난 10년 넘게 진행되어온 예술인고용보험의 구체적인 사항은 남아있는 5개월 안에 판가름 날 것이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상의 경과에서 보듯이 예술인고용보험은 전혀 시혜적인 측면에서 도입된 것이 아니다. 정말 오랜기간 예술 현장에서의 요구와 개입을 통해서 관철한 결과다. 이후 예술인고용보험 제도가 누더기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의 노력이 필요하다.

 

 

--------

김상철. ()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위원, 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