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신규 27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②] 예술지원정책의 기저질환

한 다리 건너 지인 중 민주시민교육 분야에서 일하시는 선생님이 있다. 그분은 촛불 이후, 소위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지역자치, 거버넌스에 대한 강조가 다시 시작되면서 매우 바쁘게 이런저런 민주시민 교육 프로그램, 지역 거버넌스 프로그램을 정부와 지자체의 요구에 의해 진행해왔다. 그런데 그분이 최근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온 카드대금 연체 문자였다.. 바쁜 것만큼의 액수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공공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며 받아오던 보조금이나 용역비가 코로나 사태 이후로 끊기다 보니 은행 잔고가 부족했던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각종 교육이나 행사가 불가능해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봉급 생활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상황이겠지만 프리랜서들에게는 매우 흔한 일이다. 뭐 이처럼 춥고..

특집 2020.05.05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통찰의 시간이 왔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활동 파행이 이렇게 장기화 될 줄 짐작하기 힘들었다. 초창기 이 바이러스에 대해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이 강했고 최근 몇 차례 지나갔던 사스나 메르스처럼 비교적 단기간의 국지적 확산이 이루어지고 사그라들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적 기대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바이러스 상황은 잠잠해지기는커녕 국경을 빠르게 횡단하며 거의 전 세계를 일시중지 상태로 몰아넣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은연 중에 “선진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왔던 유럽과 미주의 주요국가들에서 엄청난 확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정확히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아베 정부가 적극적인 의료 대책을 미룬다는 의심을 받아가면서까지 강행하려고 했던 2020 도쿄..

특집 2020.04.06

[기획연재_ 도시와문화정책⑨] 바이러스, 도시, 문화정책

병마로 인하여 뒤숭숭해진 도시를 목전에 두고 문화도시, 혹은 도시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도시의 모든 문화프로그램과 행사는 멈췄고 연기되고 취소되었다. 모든 이벤트는 바이러스 이후로 미뤄졌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명명된 바이러스성 폐렴이 전파되기 시작된 지 근 한 달여가 넘었으나 잦아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현대 인간 사회에서 질병은 단지 의학적인 치료나 예방의 대상만은 아니다.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 드러나듯 질병은 그 자체로서는 가치중립적인 것이지만 사회적인 담론을 생산하고 정치적인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특히 존재하지 않던, 그래서 치료법이 확실하지 않은 새롭게 변형된 병균이나 바이러스가 등장할 때의 파장은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다. 극복되지 못한 고통과 죽음이라는 전제 앞에..

기획연재 2020.03.06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⑦]도시재생의 딜레마(3) - 경제에 포획된 도시, 도시정책, 문화도시

미셀 드 세르토의 유명한 글 “도시 속에서 걷기”는 하필이면 이제 9.11테러로 인해 더 이상 볼 수 없어져버린, 그 유명했던 “오리지널” 세계무역센터 110층에서 시작한다. 이건 단지 우연에 불과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하고 지독한 은유다. 1970년대 개장된 세계무역센터는 근대의 위용과 승리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뉴욕 맨해튼은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였고 이곳에 우뚝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400미터가 넘는 마천루는 그 자체가 자본주의 근대의 승리를 상징하는 바벨탑이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세계의 정상, 세르토는 그 건물 정상인 110층에서 내려다보는 맨해튼의 묘사를 통해 도시라는 인간 사회를 텍스트들을 전체화(totalizing)하는 쾌락에 대한 고찰을 보여준다. 그는 그것을 찬..

기획연재 2019.12.30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⑥]도시재생의 딜레마(1) - ‘시민주도성’의 전제

도시재생과 문화도시에 대한 고민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사업이 의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지자체들은 여기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나서고 있다. 비전에 대한 지역의 공감대, 결과에 대한 구체적 검증이 충분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은 현재 진행형의 대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부동산 가격은 급상승하고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원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원인이라는 비판도 따르고 있다. 최근 10년 간 부산 지역 도시재생을 비판적으로 리뷰한 기사는 도시재생 사업 10년 만에 부산의 산토리니라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감천문화마을이 지역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시재생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주민 상생에서 실..

기획연재 2019.11.04

[이슈: 정책의 난제들2 “협치”] 도착하지 않은 문화민주주의 시대의 거버넌스에 대하여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불리는 협치의 문제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반드시 문화정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근 20년간 거버넌스는 행정혁신의 가장 주요한 의제였다. 심지어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던 시기로 불리던 박근혜 정부시절에도 형식적이지만 거버넌스 조직들은 정부 주변에 숱하게 만들어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거버넌스가 정부 기구의 일방적 통치구조에서 벗어나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적이고 분권화된 행정시스템이란 점에서 행정의 민주화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반드시 그런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선 분명한 것은 거버넌스의 시작이 아래로부터, 혹은 시민들의 요구에 의했다기보다는 행정의 필요에 의해 민간을 끌어들인 측면이 더 강했다는 점을 지..

이슈 2019.10.01

[이슈: 정책의 난제들1 “예술의 자생력”] 한국 국가 문화정책에서의 문화예술 자생력은 어떻게 다루어졌나

예술정책을 다루는 일을 하다보면 문화예술의 자생력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동시에 문화예술의 자생력이란 개념 자체가 본원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혹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의구심을 품게 되는 측면도 있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런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대량복제가 가능하고 멀티미디어 환경을 통해 대규모로, 또한 지역적으로 국제적인 수준에서 유통이 이루어지는 산업화된 대중문화 분야(문화산업)가 아닌 개별적이거나 소규모로 창작과 활동이 이루어지고 향유와 소비 자체도 개별화되어 이루어지는 기초예술분야에서 문화예술활동의 경제적 입지는 취약하기 짝이 없으며 공공지원 없는 자립의 가능성은 무망하다고 하겠다. 물론 예술 역시 주류 경제학의 논리에 따라 상품화의 대상이 되거나 경제에 기여해..

이슈 2019.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