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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제21대 총선 문화예술정책]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으려면- EU 음악산업 정책 사례 탐색

CP_NET 2020. 4. 6. 13:59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설정하고, 그에 대한 공공적 대응을 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정책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대응이 기획되고, 수립되고, 확정되고, 시행되는 과정 역시 일반적으로 정책 과정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정책을 매우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사회적 행위라고 한다면 의식과 의도의 초점이 무엇인가가 정책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사유의 기반이 된다고 하겠다. 정부를 비롯한 거의 모든 공공조직은 일련의 정책적 행위를 수행한다. 문화예술 분야도 많은 정책적 행위들이 기획되고 추진된다.

 

정책 집행 행위만큼 중요한 것이 정책 수립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정책 대상으로부터 의견 수렴이란 행위가 수행되는데, 그러한 과정상 행위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서 어떤 경우는 일상의 절차적 행위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그러한 과정상 내용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유될 때 보다 풍부한 정책 논의가 생산될 수 있다. 공유와 논의에 대한 접근성이 미흡한 정책일수록 해결해야 할 현실과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의 괴리는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정책 대상과의 소통과 공유를 기반으로 하는 정책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유럽연합에서 진행한 과정을 살펴본다.

 

 

정책 과정의 중요성

 

유럽연합에서 ‘Music Moves Europe’이란 명칭으로 음악산업에 대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 추진 내용은 이미 국내에서 소개된 바가 있다. (유럽연합의 음악산업 정책 동향에 대한 연구 -‘Music Moves Europe’ 이니셔티브를 중심으로, 유지연, 예술경영연구 제46, 2018) 이 논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Creative Europe이 정책 아젠다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현장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정책 워크숍인 ‘The AB Music Working Group’을 운영하였다. 여기서는 확정된 내용이 아니라 정책 아젠다 설정 과정으로 진행된 워킹그룹 워크숍에 대해 살펴본다. (워크숍 내용은 “The AB Music Working Group Report”(Music Moves Europe, Creative Europe, 2016)로 발간이 되었다. 55쪽 분량의 리포트로 이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리포트 내용 (간략 요약)

 

201512EC(the European Commission)DG EAC(the Directorate General for Education and Culture)는 유럽내 음악 분야 관계자들과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하는데, 여기서 정책 워킹그룹을 만들기로 하고 이름을 “Creative Europe AB Music Working Group”으로 한다. 워크숍을 개최하는 목적은 크게 2가지로 설정을 하는데, 하나는 DG EAC를 교육하는 것, 둘은 구체적인 제안을 산출하는 것. 참여자들로부터 미리 제안 내용을 서면으로 받아서 4개 주제별 워크숍이 20163~5월까지 진행되었다. (주제별로 1회 워크숍 진행) 워킹그룹 구성과 워크숍 조직을 위해 EC 담당자 3(국장급, 과장급, 담당관(policy officer))이 전체적인 관리를 하고, 2명의 모더레이터가 참여하였다.(1명은 변호사, 1명은 LIVEUROPE PM)

 

리포트의 시작은 9쪽 분량으로 워킹그룹 결성 과정과 내용, 브레인스토밍 회의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3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1) EU는 유럽의 음악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개입해야 하는가? (2) 해야만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3) 위원회(the Commission)의 단기 계획은 무엇인가? 이러한 자문에 대한 핵심 용어들은 보상’,‘현금화’, ‘자금조달’, ‘공적부조’, ‘비례성으로, 이를 기본 원칙으로 EU 수준에서 실행될 수 있는 것에 대한 내용을 설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기존에도 지원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존 정책이 음악 분야에서의 특정하고 점증하는 요구에 충분히 대응하고 있지 못하다는 진단에서 시작된 것이다.

 

브레인스토밍 회의에서는 약 45명의 현업 전문가가 참여했고(워크숍 포함 최종 108명이 참여하였고, 리포트에 명단을 명시함), 자유로운 개방적 토론을 목표로 했으며, 이를 위해 채텀 하우스 룰(the Chatham house rule)’을 적용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채텀 하우스 규칙에 따라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지만 누가 발언을 했는지는 밝힐 수 없음. 이는 토론의 개방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됨.) 리포트는 일부 소수 의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제안된 내용은 풍부하고 다양한데, 유사한 이슈를 5개의 분야로 정리하여 토론이 진행되었다.

 

(1) 진행 중인 저작권 개혁 및 기타 정책 주제와 관련된 이슈 및 조치 (Issues and measures relating to the on-going copyright reform and other policy topics)

(2) 음악 창작자 및 중소기업의 역량 강화에 관한 이슈와 대책 (Issues and measures regarding the empowerment of music creators and SMBs)

(3) 문화적 다양성, 예술가의 이동성, 유럽 레퍼토리의 국경을 넘나드는 순환을 위한 이슈와 대책 (Issues and measures to foster cultural diversity, the mobility of artists and the cross-border circulation of European repertoire)

(4) 도전적인 맥락에서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한 음악 창업자와 순수한 참여자들의 투쟁을 해결하기 위한 이슈와 대책 (Issues and measures in order to address the struggle of music start-ups and pure players to survive and thrive in a challenging context)

(5) 작동 중인 음악 경제에서 데이터 및 메타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문제 및 조치 (Issues and measures acknowledging the importance of data and metadata in a functioning music economy)

 

이후 워크숍은 4개 분야로 정리되어 진행되었다.

 

(1) 데이터와 메타 데이터 (Data and metadata)

(2) 크리에이터의 역량 강화 및 육성 : 교육, 교육 및 전문화 (Empowering creators and Nurturing creation : Education, Training and professionalization)

(3) 문화적 다양성 : 예술가의 이동성과 유럽 레퍼토리의 순환 (Cultural diversity : mobility of artists and circulation of European repertoire)

(4) 혁신과 창의성 : 어떻게 하면 빠르게 진화하는 상황에서 음악 창업을 가장 잘 지원할 수 있을까? (Innovation & creativity : how to best support music start-ups in a fast evolving context?)

 

 

정책 과정에 대한 단상

 

(1) 브레인스토밍 회의는 본격적인 회의에 앞선 사전 회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전 회의의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은 정책이 어떤 배경과 과정에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물론 우리도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이러한 행위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고, 최종 정책 문건에 적시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적은 분량과 의도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다. 해외 정책 사례는 우리의 정책 수립 시에도 많이 참고를 하는데, 주로 최종 아젠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최종 아젠다의 내용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유사하다.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공유는 정책 수립과 집행에서 중요한 기준과 원칙으로 작용할 수 있다.

 

(2) 우리는 모든 참여자들이 특정 층의 이익을 옹호하기보다는 음악 생태계를 전체적으로 반영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산업 전문가로서의 자격으로 초대받았다고 느껴야 한다는 사실을 매우 주장하고 싶다라고 리포트에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정책 워크숍을 구상하고 조직하는 공공조직이 관련 현업 전문가를 대하는 태도와 기대하는 것을 엿볼 수가 있다. 한편 참여자의 소수 의견까지 적시함으로써 현업의 의견과 요구에 대해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회의 진행 방식과 내용에 대한 방향과 원칙을 정리하고 있다. 앞의 (2)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책 관련 문건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4) 참여자의 명단(이름, 소속, 직위)을 명시하고 있다. 참여자 명단 적시는 참여자에게 경력에 대한 확인이 되기도 하고, 또한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도 본 리포트와 유사한 정책 문건들이 있다. 2004, 2008, 2018년에 창의한국, 문화비전 등으로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포괄적 정책 아젠다를 정리한 문건이 있는데, 이중 발표된 문건에 참여자 명단이 적시된 것은 2004년 창의한국 뿐이다. (2004년 창의한국은 350쪽이 넘는 분량으로 400400여 명이 참여함)

 

(5) 일반적으로 정책 수립 시 이와 같이 현업의 의견수렴 등 사전 회의 등의 과정을 진행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최종 정책 내용만 볼 수 있을 뿐 그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접하기 어렵다. 어떤 측면에서는 최종 정책안이 결정되고 나서부터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정책 논의 과정은 관련 이해자들의 공감과 공유를 위한 중요한 과정이고 그런 측면에서 최종 정책안보다 과정상 중요성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즉 논의의 틀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2004, 2008, 2018년에 발간된 포괄적 내용의 문화예술정책 문건이 최종 정책안인지 아니면 정책 논의를 위한 포괄적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것인지 모호하게 보인다. 결론부에 예산안과 일정안까지 적시한 것으로 봐서는 최종안의 성격이 더 강한데, 그렇다면 정책 논의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내용을 알기 어렵다. (회의 일지가 있기는 하지만 회의 날짜만 있음).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인 정책 논의 과정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지금이라도 정책 논의 과정부터 그 내용이 정리되고 공유되는 것이 협치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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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학 시절 연극이 좋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문화운동과 조우하였다. 90년대 초반 석사 과정 시절 국내 최초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생활실태조사를 했다. 2000년대 초 인디문화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게임산업 진흥기관에서 정책, 기획 업무를 총괄하고 문화산업과 예술 분야 정책 및 법제도 개선에 참여했다. 지금의 관심은 예술과 문화산업에서의 공정 환경, 문화예술 분야의 노동 환경, 디지털시대의 문화운동은 무엇일까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