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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왜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은 예술대학 지원사업이 되었나

CP_NET 2023. 6. 13. 16:39

 

 

낯선 사업이 눈에 띄면 그 기원을 쫓는다. 해당 사업이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으면 더더욱 그렇다. 이를테면 지난 5월 초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라 칭함)에서 발표한 예비예술인 지원사업결과 발표가 그렇다. 예비 예술인라는 개념도 낯설지만 그 결과를 보면 해당 사업이 예술예술인 지원사업인지, 예술대학과 예술단체 지원사업인지 모호해서 그렇다. 예비예술인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면 그것의 문제는 대개가 기존의 예술대학이나 예술단체에 있을 텐데, 다시 사업의 지원체계에서 예술대학과 예술단체를 매개로 사업구조를 만들다니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대학이라는 전공체계를 그대로 수용해서 예비-ooo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전공별 취업율을 따지고 그걸 가지고 서열화를 했던 행태와 뭐가 다른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예술대학의 존재의의가 직업적 예술인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라도 존재하는 걸까.

 

 

모호한 사업 구조

 

아르코가 진행하는 ‘2023년도 예비예술인지원 사업은 신규 사업이다. 이 말은 작년까지만 해도 없었던 사업이라는 뜻이다. 사업의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국회 예산 확정 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사업별 설명서을 본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일반회계 사업이 아니라 아르코가 관리하는 문화예술진흥기금 사업이다. 사업설명서 상의 설명에 따르면 이 사업은 차세대 예술인력육성사업중 하나인데 단위사업으로는 예술창작역량강화사업이고 그 하위의 예술인력육성이라는 세부사업 내 세세사업으로 편성되어 있다. 사업의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해당 사업은 예술대학 지원사업이나 예술단체 지원사업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예술 당사자로서 예비예술인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예술인력육성사업은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창작뮤지컬아카데미, 전통예술기획자양성프로젝트, 무대예술전문교육, 아르코청년예술가지원, 예술요원제도지원 등 기존의 신진예술인지원사업과 문화예술기관 연수단원지원, 공연예술전문인력지원, 전문무용수지원센터운영, 비대면예술인력교육프로그램 및 플랫폼 개발, 예술기록물관리전문인력지원,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운영, 예술가의집 운영 등 현장예술인 육성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예비예술인지원사업이 추가되었다는 건, 기존의 인력지원사업의 사업 대상이 될 수 있는 자격 상의 문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예술인력 육성 사업에 예비예술인이 되었던 신진예술인이 되었던 이들이 일정한 비율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것이다. 서로 연계되지도 않는 개별 사업들을 주렁 주렁 양산하는 것보다 오히려 기존 사업 평가를 통해서 점차 사업 품질을 향상시켜가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방법이다.

 

그런데 예비 예술인 지원사업은 그와 같은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 여기에 중요한 배경이 있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사업별 설명서에는 아르코가 신규사업을 별도로 다루는 1페이지 설명자료가 있다. 사업목적은 예비예술인력의 전업 예술인 성장을 위한 현장역량 기회 제공이고 동 사업의 추진 배경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예술인 대상 지원사업은 다양한 편이나, 예술대학생을 위한 현장의 다양한 학습 및 경험 기회는 부족을 들고 있다. 그러니까 에비예술인의 중점 대상으로 예술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을 특정하고 이들에게 현장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현장역량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업방향으로 예비예술인의 창작 및 행정경험 확대 창의적이고 경영 역량을 갖춘 전업예술인 배출 예술생태계 활성화라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참조하면 창작 경험 확대와 행정경험 확대인 듯 하다.

 

그런데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이 제안된 맥락이 잘 보이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라는 부분이 명확하게 떠올라야 하는데 이 사업의 구조만 놓고 보면 이 사업이 필요한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사업 배경

 

한 가지 단서는 예산 사업설명자료 내에 최근 3년간 동 사업에 대한 주요 외부지적사항 및 평가, 문제점 및 대책이라는 항목에서 청년예술TF 구성 완료, 활동 정례화 운영 및 국회토론회 등 활동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청년지원사업에 대한 개선을 완료했다는 언급이 이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별도의 청년예술TF를 운영한 적이 없다. 그 명칭이라면 아르코 내에 설치된 TF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르코가 202291일에 누리집을 통해 공개한 청년예술 TF백서에 따르면 같은 해 2월에 공식적으로 출범했고 (서문에서는 2월로 본문에서는 2111월에 해당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음) 6월에 미래예술을 위한 제언을 발표하고 국회를 매개로 하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한편, 지역의 청년예술인들을 직접 만나 청년예술TF 릴레이 인터뷰라는 영상을 제작했다. 위원들은 아르코 사무처를 제외하면 모두 기존의 아르코 내 위원회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아르코 내부 소위원회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백서에 따르면 여기서 최종적으로 제안한 내용은 1) 문화예술진흥법 및 시행령 개정을 통해 위원회 위원의 청년비율 보장 및 특정 성 독점을 방지하는 것 2) 청년예술인 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하는 것 3) 청년예술인 네트워크 활성화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당사자 정책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예비예술인에 대한 정책지원이나, 지원대상으로 예술대학생을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예술대학이라는 고등교육체계 자체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내용만 확인된다.

 

일단 예술 교육의 혁신은 일어나야 돼요. 대학, 특히 예술대학 혁신이 필요한 이슈인데, 그게 왜 필요하냐는 것은 너무 장황한 얘기가 필요해서, 사회에 나와서 맞이하는 이 예술생태계가 너무 달라졌는데, 그 생태계 그리고 어쨌든 사회 안에서 예술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사회와 예술과의 관계가 완벽히 차단된 곳에서 아직도 예술의 수월성만을 얘기하는, 학교 안에서 사회로 나왔을 때 굉장한 고립감과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끼는 미래세대의 경험을 이제 그만둬야 되는 부분들이 저는 가장 크고요.”(김미소, 기획자)

 

그렇다면 아르코 청년예술TF를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의 배경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새롭게 구성된 아르코 위원회의 구성이나 사업 내용은 보면 청년예술TF의 제안 내용은 대다수 수용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해 보인다. 그렇다면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에 어떤 정책적 배경이 있는 걸까. 단서는 윤석열 정부가 2023년에 발표한 예술인복지 기본계획에 있다. 그 이전에 한국문화정책연구원이 구성하였던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TF 최종본에는(2021년에 발간된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 수립연구를 의미한다) 예비예술인에 대한 언급이나 예술대학에 대한 언급 모두 찾아보기 힘들고, 언급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공정 이슈에 대한 의제에 한정된다. 이를테면 현행 예술대학에서는 예술인의 법적 권리와 창작자로서 누려야 하는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예비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교양 교육을 시행하는 등의 내용이다. 이때 예비예술인은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 예술대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면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이라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고유한 목적성을 가진 정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 정부에서 발표한 예술인복지 기본계획 추진전략4. 예술인 역량 강화와 예술의 가치 확산에서 첫 번째 세부과제인 경력단계별 맞춤형 역량 강화는 예비예술인 신진예술인 직업예술인이라는 생애주기를 전제로, 예술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예비예술인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경력 2년 미만의 신진예술인에 대해서는 생애 첫지원 사업을 한 다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를 통해서 초기 지원을 완료하는 경로로 제시된다. 여기에서는 명확하게 예비예술인을 예술대학생으로 한정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2023년에 신규로 57.8억원이 편성되어 이 중에서 50억원은 예술대학의 창작 프로젝트를 지원하는데 사용하고 5억원은 예술 행정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예비예술인을 앞세운 예술대학들

 

이쯤되면 한가지 강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예술대학생 당사자들의 중요하고 선도적인 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그 운동의 최종적 결실은 예술대학이 가져가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알다시피 예술대학생네트워크(예대넷)는 오랫 동안 예술대학을 상대로 다툼을 해왔다.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도 적절한 예술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제기 였고 청년예술인들을 경험을 위해서라면 희생해야 하는 대상쯤으로 치부해왔던 예술계 내의 관행과 기득권 구조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입장은 예대넷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1년에 연속으로 개최한 예술대학 살리기 연속토론회에서도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오히려 관건은 예술대학생의 문제를 그대로 예술대학의 문제로 등치시키는 힘이다. 예술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라 할 예술대학은 어느 순간에 예술대학생과 동등한 피해자의 위치에 서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청년예술이라는 선전 문구 하에서 한 일이다.

 

1차에서 4차까지 진행한 토론회의 발제 내용 중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은 4차 토론회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신정원 연구원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지원정책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졸업자 취업률을 기준으로 하는 대학평가 제도의 문제점 지적이나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신입생 축소 그리고 이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문제점은 몇 차례 논리 비약을 거쳐 인식의 전환을 강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이러한 주장이다.

“예술대학들은 연구, 창작, 교육, 봉사의 영역에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며 창의성의 계발을 통하여 문화예술의 영역을 풍부하게 하고, 교육을 통하여 예술과 그와 연관된 지식을 전파하며 지역사회봉사를 통하여 지역의 문화예술 역량을 증진하는 데 기여함. 예술대학의 위기는서로 연결되어있는 예술대학과 예술인, 그리고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지역사회의 선순환적 생태계가 위험에 놓여, 문화예술의 창의성이 위축되고 흔들리는 상황임.”

굉장히 많은 전제를 깔고 있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신정원 연구원이 말하는 예술대학의 위기는 예술교육의 위기가 아니라 예술대학경영의 위기이고 이것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일 뿐이다. 오히려 4차에 걸친 토론회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예술대학의 사회적 쓸모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야 했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외려 대학 경영 상의 어려움을 예술대학의 위기로 동일시하는 한계를 보인다. 사실 이런 인식은 계원예술대학교 서동진 교수가 아르코의 온라인 공론장에 기고한 대학 예술 교육의 수상한 앞날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교육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학기본역량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더니 예술대학생 당사자들이 예술과 사회의 단절을 예술교육의 위기로 꼽아야 할 부분에서는 오히려 살짝 비껴선다. 정작 예술대학의 교육당사자인 기고자가 왜 예술대학에서 예술과 사회의 접면이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말해야 하는 시점에 대학을 빼놓은 채 예술과 사회의 관계로만 슬쩍 밀어 내고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은 사실상 예술대학 지원사업일 뿐, 이것이 구체적으로 예술대학생을 향하는 정책이라고는 보기 힘든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성립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다른 곳에서 그 욕망의 구조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국회 유정주 의원의 정책개발비로 진행한 문화예술 인력양성 및 R&D 정책 활성화를 위한 법제 개선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이 예술대학 지원사업과 연관된다는 언급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 370쪽에는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으로 신설되어 58억이 책정된 예비 예술인 현장 역량 강화 사업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예술대학 차원의 산학협력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해당 사업이 예술대학 살리기 연속 토론회의 결과라고 명시한다. 그러니까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은 사실 예술대학 지원과 분리될 수 없는 프로젝트고 이를 위해서 예술대학을 매개로 하는 예술연구의 R&D 지원을 법제화하자는 제안이다.

 

 

예술의 위기냐, 예술대학의 위기냐

 

과학기술 분야의 지원과 비교해 예술지원을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상투적인 접근이다. 헌법상의 규정은 과학과 예술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예술가와 과학기술자의 권리에 대한 것이다(22). 오히려 지원정책이라는 맥락에서라면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1271)인데, 이를 예술지원 정책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예술지원이 어떻게 국민경제 발전의 수단이 되겠는가. 어떤 점에선 예술가의 권리는 보장하되 예술의 기능에 대해서는 강제하지 않는 현행 조건이 훨씬 긍정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 나가면 예술과 과학기술 사이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를 누락하면 안 된다. 그것은 개인 작업과 집단 작업 간의 본질적 차이다. 더 정확하게는 전일적 작업과 분업적 작업의 차이다. 예술 창작은 기본적으로 예술인 개인의 작업이다. 설사 공연예술이라 하더라도 작업을 통해서 공동작업화 되는 것이지 공연예술 자체로 특화되거나 종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기술연구는, 특히 현대의 연구는 개인 연구보다는 특정한 실험실 내에서 매우 미분화된 역할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으로 집단화된다. 즉 예술과 과학기술은 창의성이 발현되는 경로 자체가 다르고 그렇기때문에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의 형태 역시 동일한 방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더군다나 예술대학에 예술과 관련한 R&D를 독점시킨다는 것은 예술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고작 예술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국가의 R&D사업을 매개로 하는 정부지원금이라는 것은 한심하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지적해야 하는 것은 예술대학의 위기가 예술의 위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과 비교해 종합대학 형태의 예술대학이 적은 주요 나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술의 위기에 봉착했어야 했다. 오히려 한국과 같이 종합대학화 된 예술대학 자체가 매우 특이하고 신기한 것 아닌가.

 

정리하면, 예술인의 권리 보장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가 맞다. 그런 점에서 예술인과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보장 수준은 비교가 된다. 하지만 예술대학과 공과대학 간의 비교는 곤란하다. 이건 별다른 유사성도 없는 두 집단을 임의로 가져다가 비교하는 것에 불과한 일이다. 오히려 예술대학의 위기에 대해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왜 여전히 예술대학이 있어야 하는가? 더 정확하게는 종합대학 형식의, 타 전공자들을 배척하는 방식의 단일 전공 학문으로서 예술대학은 필요한가? 그리고 이런 질문은 예비예술인 지원사업과는 상관없이 다뤄야 하는 주제다.

 

오히려 한국의 과학기술 생태계 내에서 예비과학자 혹은 예비공학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어떤 처우에 놓여 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이 되는 순간 지도교수의 실험실에 종속되는 것을 물론이고 도제식 관행과 연구비 정산 과정에서의 악습은 절대 좋은 생태계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니까 예술인의 권리 보장이라는 맥락에서 예비예술인들의 문제 해결을 대학이라는 기관을 매개로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물며 과학기술 지원정책과의 비교라니, 과학기술인의 권리 보장이 정부의 과학기술 R&D사업 규모의 확대와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졌다는 맥락을 놓치면 안된다. 오히려 실험실 프로젝트를 매개로 하는 지원정책의 확대가 예비과학자나 예비공학자들의 집단화 혹은 세력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다시, 예비예술인 사업에 대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에 대한 공고를 내면서 내놓은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예비예술인의 정의로 29세 이하 예술인으로, 예술대학()생과 그 외 예술관련 교육 훈련을 받는 동일 연령대를 포괄하는 것으로 한다. 29세 이하 기준에 대해 통계청과 청년기본법 상의 청년 기준이라고 하는데 틀렸다. 통계청의 경우 2021년에 경제활동인구조사 상에 청년층 부가조사 공표 연령을 확대하면서 기존과 같이 29세 이하로 유지하면서도 청년기본법 상의 34세까지의 연령을 부가 조사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29세 이후 기준은 청년고용촉진특별법상의 대상자 기준일 뿐, 청년 정책 일반의 연령 대상은 아니다. 예비예술인 기준을 다른 청년정책 관련법이 아니라 고용촉진 관련 법을 참조한 것은 맥락이 없다.

 

사업 내용은 예술대학, 민간단체, 지역재단, 청년예술가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하여 예비예술인에게 창작, 실연, 기획, 기술, 행정, 네트워킹 등 다양한 분야의 현장경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멘토링, 아카이빙, 향유, 일자리, 창업 등 성장 및 확산과 연계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장르별 지원분야로 나눠진다. 예술대학을 매개로 하는 사업은 최대 2억원, 예술단체를 매개로 하는 사업은 최대 1억원 수준이다. 전자는 현장연계 지원이 강조되고 후자는 발굴육성 지원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예술대학의 지원은 반드시 학교 밖의 민간예술단체, 문화재단, 공연장, 출판사 등 기관과 컨소시엄 방식으로 제안하도록 하는데 동일 대학에서는 최대 2건까지 선정될 수 있다. 사업 신청은 반드시 산학협력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했다. 민간단체의 경우에는 멘토링, 국내외 연수, 차기작 발표 등 성장연계 프로그램과 아카이빙, 관객심사, 작품판매 등 확산연계 프로그램으로 구분된다. 신청 자격으로는 공모전, 경연대회, 축제 등 예비예술인 발굴 사업실적이 있거나 예비예술인 다수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프로젝트 추진실적이 있는 민간예술단체 중심의 컨소시엄이다. 전체 사업은 12월에 성과공유회 방식으로 종료된다.

 

이 사업은 33일 접수를 시작해 29일에 종료되었으며 총 131건이 신청되고 38건이 선정되었다. 선정된 사업의 예산규모는 54억 원이다. 공모 결과 발표는 53일에 있었으나 518일에 편성된 예산의 잔액에 맞춰서 8,800만원 규모의 민간단체 지원사업이 추가 발표되었다. 우선 20개 대학이 선정된 결과를 보면, 절반 가량이 서울 소재 대학이고 수도권으로 확대하면 절반을 넘어선다. 애당초 먼저부터 위기라고 말해지는 대학들은 신청을 안 한 것인지 선정이 안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상명대학교가 2개 과제에 선정된 것과 국고로 운영되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1건의 사업 선정을 보인 것이 눈길을 끈다. 사실 공개된 사업명만으로는 컨소시엄의 구성도, 사업 추진의 개요도, 무엇보다 예비예술인이 몇 명이고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조차 알기 어렵다. 참고해볼 수 있는 자료로 1차 서류 심사 이후의 심사 총평과 2차 인터뷰 심사 이후의 심사 총평인데, 1차 총평에서는 지역 안배를 전제로 컨소시엄의 구성 수준과 예비예술인에 대한 기획 부분이 중점이었다. 2차 총평에서는 기존 합산 점수에 가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고 1차년도 사업임을 고려해 차년도 모델이 될 만한 곳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두 개의 심사평 어디에도 예술대학과 예술단체 매개로 하는 유형별 변별성에 주목하는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사업의 내용이 다른 데도 그 특수성이 언급되지 않아 의아한데, 이는 애당초 공모 서류가 동일한 형식이라는 점에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지원 서류는 예비 예술인을 발굴할 예정인 사업계획이지 이미 그와 같은 활동을 했다거나 하는 실적에 대한 부분의 강조점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공모사업 경험이 많고 지도교수나 책임자가 문화예술단체에 속해 있거나 혹은 공연장과 연계되고 문화재단과 교류가 있었던 곳이 훨씬 유리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서 의문이 남는다. 이 지원사업은 결국 잘하는데 지원해주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애당초 위기에 놓인 예비예술인에 대한 기회를 예술대학을 매개로 제공하기로 했다면 이런 상황에 대한 조사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실제 위기에 놓인 예비예술인의 대학과 지역은, 이와 같은 지원사업을 응모할 의지도 없는 예술대학과 예술단체가 있는 지역일 수 있는 것이다.

 

 

실용적 문제해결의 한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언제나 간결하고 단순한 경로를 따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때때로 지향점을 기준으로 다소 우회하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절충은 어디까지나 지향점이 훼손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조정이어야지 지향점 자체를 절충하는 방식이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예술대학생의 문제에서 시작한 논의가 예비예술인에 대한 논의로, 그리고 다시 예비예술인에 대한 논의가 예술대학에 대한 논의를 경유하여 제도화된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은 방법의 절충이었을까 아니면 지향점의 절충이었을까.

 

예단일 수 있지만 일단 현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방식이라면, 그래서 그것이 일종의 실용적 접근이라는 말로 타협한 것이라 말한다면 적절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현행 예비예술인 지원사업의 형식은 예비예술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절충적 방법도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사업의 초점을 급격하게 예술대학 자체로 돌리는 트리거가 될 공산이 크고, 현재 예술생태계 문제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예술대학 자체를 구제의 대상으로 삼는 왜곡이 발생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 그런가? 그 정책 어디에도 정작 예비예술인 당사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업 주변엔 기존 예술단체를 운영하는 기성 예술인들과 대학 내의 예술교수들만 보이고 현재 예술정책을 좌우하는 그 사람들이 위기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당사자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의 결과물이 나오는 12월이 아니라, 사업 자체가 본격화될 1학기 종강 이후의 풍경들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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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제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예술인금고의 전 단계인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이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2022년에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와 가치에 대한 연구'(한국예술인복지재단)'동네 예술일자리 연결센터 실행방안 연구'(성북문화재단)의 책임연구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