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수님이 수업 첫 시간, 칠판에 “Governance란 무엇인가?”라고 쓰셨다. 그리고 아마 중간고사 문제로는 “도대체, 거버넌스란 무엇인가?”가 나왔을 것이다. 이 유머의 원전은 경영학의 ‘마케팅’이다. 경영학의 마케팅처럼 거버넌스는 행정학의 핵심적인 키워드다. 실재로 학부시절, 유학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교수님의 강의에서 Governance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본인의 경험이기도 하다.
거버넌스, 거버넌스론, 뉴거버넌스론
거버넌스(Governance)는 통치(방식)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질 뿐 ‘민·관’이란 의미도 ‘협력’의 뜻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학이나 행정학 분야에서 이 말은 대체로 ‘민관협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때 ‘협치’는 ‘통치’에 대한 대응 개념, 즉 정부 혹은 정부의 통치를 뜻하는 ‘거번먼트(government)’에 대응하는 용어로 흔히 쓰이는데 용어는 관료제적 통치가 아니라 민과 관이 함께 협력하여 통치하는 것과 같은 이해를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거버넌스는 빠르게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용어가 되었다.(채효정, 2018)
행정학의 발전은 정부와 시장이라는 시소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20세기말 특히 1980년대 이후 사회 환경의 변화 속에서 행정학 또는 정책학 패러다임도 크게 변화한다. 더 많은 개인의 자유, 개개인의 정치참여 역량 확장,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정보공유 용량의 기하급수적 확대, SNS 등 개인네트워크의 전지구적 확대 등의 변화 속에서 행정학은 ‘정부’에서 ‘거버넌스’로 관점이 이동한다.
특히 제3섹터의 성장이 주목되었다. 국가와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으로서, 정부와 시장의 실패로부터 자유로우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공동체의 유익에 기여하고자 하고, 기본적으로 가치지향적이고, 원칙적으로 발생이윤을 사회, 환경, 문화적 목표 등을 위해 재투자하고자 하는 비정부조직들을 총칭하여 제3섹터라고 부른다. 이런 제3섹터가 정부와 협력하면서 효율적인 거버넌스 체제를 갖춘다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부실패의 많은 문제를 해소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거버넌스 이론은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외부환경에 대한 국가적응의 경험적 증명서로서 통치체제의 구성과 통치기제를 다루는 개념적∙이론적 방법이다. 거버넌스 이론은 기본적으로 아직 계층제적 정부구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민간참여를 기본전제로 하고 있으나 정책결정이 특정개인이나 소수집단에 의해서 행해지며 강제력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도모하는 전통적 방식을 의미한다. 관리가치를 여전히 효율성과 생산성에 두고 시장과의 결합을 주요한 구조적 특징으로 갖는 신자유주의적 국정 관리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관료의 역할은 공공기업가로 여겨지고 주도권은 정부가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성과를 높이기 위한 거버넌스 형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거버넌스론적 거버넌스이다.
뉴거버넌스론은 전통적으로 계층제에 의존하던 거버넌스가 변형된 것으로 1980년대 이후 국가라는 한정된 범위가 아니라 정부조직과 기업, 시민사회 등이 공공부문에 함께 참여하여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공공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다원주의시대를 맞이하여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그동안 정부나 기업들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뉴거버넌스론은 전통적 행정학보다 유용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즉, 공사를 막론하고 어떠한 조직도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 구성원간의 협조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을 정부의 의제와 정책을 결정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네트워크 부문 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뉴거버넌스론이 요구된다.
뉴거버넌스론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사회적 단체, NGO, 지역사회 등의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강조한다. 네트워크는 다양한 참여자로 구성되고 상호 독립적이다. 하지만 모든 구성요소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부는 전통적 정부처럼 우월한 것도 아니고, 항상 동등한 입장도 아니다. 즉, 정부는 기본적으로 전체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조정자의 입장에 있다고 본다.
뉴거버넌스론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성과 정치성을 관리가치로 여기며 공공서비스를 단순히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의 참여를 통한 공동생산물을 생산하는 공동체 형성을 지향한다. 뉴거버넌스이론에서의 거버넌스구조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뉴거버넌스 이론에서 거버넌스(조직)은 단순한 참여자나 들러리가 아닌 공동체의 임무를 위해 다같이 일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표> 거버넌스론과 뉴거버넌스론
거버넌스론 |
구분 |
뉴거버넌스론 |
국정관리 |
관리론 |
신국정관리 |
신자유주의, 신공공관리 |
인식론 |
공동체주의, 참여주의 |
시장 |
관리구조 |
공동체 |
결과(효율성, 생산성) |
관리가치 |
과정(민주성, 정치성) |
공공기업가 |
관료역할 |
조정자 |
고객지향 |
관리방식 |
임무지향 |
경쟁체제(시장메커니즘) |
작동원리 |
협력업체(참여메커니즘) |
민영화, 민간위탁 |
서비스 |
공동생산(민간부문참여) |
조직내 |
분석수준 |
조직간 |
출처: 양승일. 2013.
참여에서 권한으로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정부만으로, 시장만으로, 제3섹터나 전문가들의 힘만으로 사회가 유지되기에는 그 변화의 속도와 범위가 예측불가한 수준이다. 그리고 세대간, 지역 간 격차와 같은 사회의 층위는 생각보다 다양한 수준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 경계가 모호하고 파편적이다. 변화의 속도는 제각각이고 의견대립은 점차 극단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요구되는 거버넌스 체제는 무엇인가?
서울시 협치학교의 기본교제 『참여에서 권한으로』의 여는 글에서 ‘참여’라지만 ‘동원’같고 ‘들러리’같고 ‘소외감’을 느끼고 있기에 정부가 주체가 되는 ‘참여와 소통’이 아닌 시민 스스로의 ‘권한과 협력’으로서의 거버넌스가 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버넌스가 협치라는 거버넌스론적 거버넌스(혹은 거버먼트적 거버넌스)에서 벗어나, 협창(協創)이라는 뉴거버넌스론적 거버넌스, 협력적 거버넌스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가 거버넌스를 주도하려하지 말고, 정책의 수요자들이 필요한 거버넌스의 조력자, 조정자가 되어 줄 수 있기를 요청한다.
참고자료
- 채효정, 『월간 워커스』,2018, http://workers-zine.net/29485
- 양승일, 한국행정학회, 행정학전자사전, ‘뉴거버넌스론’ 용어해설,2013.
http://www.kapa21.or.kr/data/kapa_dictionary.php
- 박재창, 『거버넌스 시대의 국정개조』, 2012. 리북
- 이흥재, 『문화정책론』,2014, 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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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대학시절 합창단 단장을 거쳐 전국대학합창협의회 총무를 하며, 행정학도였으나 공연과 동아리 활동에 전력하는 학창시절을 보냄. 뒤늦게 문화예술행정학 석사과정에 진학하게 되면서 문화예술정책 연구의 길을 걷게 됨. 일반대학원 행정학과 박사과정 중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연구팀장으로 일한 바 있음. 행정학과 학부 개론 강의를 주로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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