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도시와 문화정책 ⑭] 권력과 도시건축

CP_NET 2021. 1. 6. 10:19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박정현 저, 워크룸프레스, 2020))의 발전국가는 ‘Development Nation’의 번역어다. 개발도상국은 ‘Developing Country’의 번역어다. 사전적 정의로 개발은 발전의 의미를 일정 부분 내포하고 있다. 개발은 주로 사용되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용례로 볼 때 토지나 천연자원 따위를 유용하게 만듦의 의미로 현재를 말하고 있다면, 발전은 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감으로 미래 가치의 긍정적 변화를 의미한다.

 

‘Development Nation’이 인간 기본권을 제약하면서 산업·경제·도시 개발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성장과 정권 유지를 위해 활용된 점으로 볼 때, ‘발전국가보다 개발국가가 적절한 표현이다. 건축이 더 나은 국가를 위해 군사독재에 순응하고 복무했다는 면죄부로 이용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발전국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책의 후반부에서 건축 역사학자 만프레도 타푸리 등을 인용해 말하는 건축이 계획(Plan)에게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내주며 국가가 미래를 통제하고 조작하는 계획의 주체로 등장했고, 이런 근대국가의 일반적 상황에서 한국은 1990년 계획자로서 국가의 구속력이 약해지면서 4.3그룹*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 건축의 자율성을 묻고, 담론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위한 대구(對句)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인찍기와 면죄부 발급이 아닐 수 있다. 이는 그동안 부정적 사례만을 모아 낙인찍기하고, 긍정적인 사례만을 모아 면죄부 발급하며, 한국 건축은 비생산적 논쟁으로 발전 없이 현재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 모두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역사로 한국 근현대건축이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된 문제로 정치·경제·사회 등과 거리를 둔 채 순수한 건축만을 추구하며 방기해 온 건축계의 문제다. 이 또한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기를 거치며 권력에 순응하며 이어져 온 건축계의 주류 권력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 권력과 건축의 대차대조표를 모두가 손에 쥐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이 책의 빈 페이지를 채우며 만들어질 치밀한 권력과 건축의 대차대조표가 필요하다.

 

한국 건축의 가장 큰 낙인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건축건설이나 토건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 건축의 역사가 만든 부정할 수 없는 결과물이다. 발전국가 시기를 거치며 현재까지 불과 50-60년 만에 한국의 주택은 아파트(공동주택)로 획일화되었고, 이는 시민들의 필요가 아니라 국가가 주도한 공급 위주의 대규모 주택개발사업과 이에 순응한 건축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 한국의 건축은 국가가 주도해 왔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축이 국가권력에 순응했건, 기생했건, 부역했건 간에 말이다. 그 시절 건축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산했는지를 묻고 밝힘으로 건축이 스스로 발전국가 시기를 거쳐 현재에 이른 한국 건축의 명암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는 건축이 발전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 개발의 주체였던 건축이 현재의 문제에 대해 건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민과 국가만의 탓으로 돌리며 상황을 회피하거나, 권력 유지를 위해 스스로 면죄부를 발급하는 것을 중단해 새로운 토대를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건축가 김수근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부사장과 사장을 역임하며 군사독재시절 대규모 국가프로젝트를 지휘했고, 군사독재의 상징적 시설인 남영동대공분실을 설계한 군사독재의 적극적 부역자이지만, 긍정적인 작업과 내용만을 모아 미화되어 여전히 한국현대건축의 1세대로 추앙받고 있다. 심지어 긍정적 부분만으로 미화된 동화책(이민아,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게(건축가 김수근 이야기), 샘터)으로 아이들에게까지 위인처럼 소개된다. 이 동화책에서는 건축가 김수근을 이렇게 소개한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김수근은 국회의사당 현상 설계에 당선(1960)되면서 귀국하게 되고, 박춘명, 강병기와 함께 국회의사당 설계사무소를 만들어 우리 국회를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이 일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러나 5.16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 계획은 중단되었습니다. 함께 일한 동료들과 흩어지게 된 김수근은, 그 후 1962년 종로구 송현동 현 백상기념관 건물에 김수근건축연구소를 설립하고, 자유센터, 타워호텔 등을 설계합니다. 김수근은 1965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라는 단체를 만들어 서울의 도시계획에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때 김수근은 한국의 도시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되었다. 또한 건축가 승효상은 추천 글에서 우리의 건축이 그냥 세우기에 바빴던 지난 시대에, 건축가 김수근 선생님은 짓는 건축의 참 멋을 우리에게 일깨우신 분입니다. 심지어는 그 시대의 문화적 환경이 부실한 것을 아시고 종합예술지 공간을 창간하시고, 불우한 예술인을 북돋우며 한국 문화의 부흥을 위해 온몸을 던지셨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듯이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군사독재정권이 국가프로젝트를 위해 설립한 기관이고, 자유센터와 타워호텔은 당시 아시아반공연맹 총회를 위해 만들어진 국가 이데올로기 수립을 위한 국가시설이며, 초기 공간지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듯 쿠데타 세력인 군 출신 석정선이 주도해 국가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정권을 비호하는 역할을 했던 매체였다. 승효상은 김수근의 공간에서 근무한 건축가이다. 필자가 글에서 다루고 있는 이와 친분이 깊은 건축가라는 점은 현재 한국 건축의 현실과 면죄부발급의 주체와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죽은 건축가의 과실이나 공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다루는 것조차 건축계에서는 금기가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축가들은 일제강점기 와세다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정인국, 김윤기, 와세다대학교 부속 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엄덕문, 강명구,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해방 후 서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이천승, 서울대학교 건축과 출신인 김수근, 승효상 등등이다. 대학교로는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근무처로는 한국종합개발공사, 공간 등으로 뒤엉켜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하며 존립 근거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군사독재의 부역자였던 건축가 김수근은 4.3그룹의 주축인 건축가 승효상의 스승이자 대학선배다. ‘남영동대공분실은 그가 공간에 근무하던 시기 설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본 바와 같이 반성이 아니라 건축가 김수근을 미화하는데 앞장서고 있고, 현재 한국 건축계의 주류 권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듯 특정 대학, 기관이나 사무소 출신이 전 분야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한국 건축계 권력화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런 권력 구조는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각 분야를 주도한 세력이 20~30대였던 반면 4.3그룹의 연령은 많게는 한세대 차이가 난 것과 청년건축인협의회(청건협) 등 젊은 건축인이 주축이 아닌 기성세대였던 4.3그룹으로의 이전은 사회적 문제라기보다 건축계 내부의 구조적 문제는 아니었을까라는 의심은 매우 합리적이지만, 건축계에서 문제제기는 없다. 기성 질서에 대한 안티테제나 저항이 아니라 순응하고, 포섭되어 권력을 이양받아 온 결과다.

 

이런 현실은 얼마 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었던 건축가 승효상의 강연에서 건축비평가인 사회자가 그를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정도전으로 소개하는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여전히 건축은 국가에 기대어 서야만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또한 형식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건축은 스스로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와 결탁하고 있는지 모른다. 작동방식의 변화가 있겠지만, 현재의 권력유지를 위한 개발국가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 사이 건축은 사회의 필요와 괴리되어 수 십 년 전의 문제가 반복되고, 건축은 여기에서 도피해 스스로를 규방에 가두고 자폐적인 존재가 되었다. 건축 이론가 김광현은 4.3그룹 전시 도록에서 훗날 한국의 건축가가 규방의 건축에서 벗어나 현대 건축의 그 어떤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석한 기점이라고 말했지만, 결과론적으로 오히려 담론을 만들어 내는 주체와 장은 높은 장벽으로 이루어진 요새와 같이 폐쇄적으로 권력화 했다. 그리고 한국 건축은 이미 국가를 건설한 이성계와 정도전이 출전하기만을 기다려 왔다. 이제 권력과 건축의 대차대조표라는 새로운 토대 위에 한국 건축이 자율성을 세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 199043일 승효상, 김인철, 민현식, 백문기 등 한국의 차세대 건축가 14명을 중심으로 결성된 그룹. 회원들의 작업 비평 세미나, 전시회, 출간 등의 공동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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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황.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 소장. 도시를 문화집적체라 생각하고, 각 시대의 문화가 새겨진 공간과 도시를 계보학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이며, 이를 기초로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근대 서울의 적응과정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는 문화도시연구소에서 사회적소외계층의 건축서비스를 제공하는 집짓기’, 아동청소년 건축교육프로그램인 ‘K12 건축학교’, 장소인문학적 도시건축연구 등을 하고 있다. 더불어 도시사회운동이며, 커먼즈 운동인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의 공동대표, 지역 문화예술 커뮤니티인 공유성북원탁회의의 공동위원장(2017)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