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건과 논쟁으로 돌아보는 한국문화정책 ⑪] 사반세기를 향해가는 지역문화정책- 2001년 “지역문화의 해” 4, 이후의 전개 (김규원)
편집자 주: “사건과 논쟁으로 돌아보는 한국 문화정책”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 연재는 한국 문화정책의 지형을 두텁게 그려보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사건과 논쟁에 대한 입체적 복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기원을 살피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② “이른바” 3S정책1: 유신이 억압하고 있던 것들_ 염신규
③ “이른바” 3S정책2: 개방과 강력한 통제의 공존_ 염신규
⑦ 1996년, 한국 문화향유정책의 기원 4 ‘문화의집’을 둘러싼 동상이몽_ 우지연
⑧ 사반세기를 향해가는 지역문화정책 – 2001년 “지역문화의 해”1_ 염신규
⑧ 사반세기를 향해가는 지역문화정책 – 2001년 “지역문화의 해”1_ 염신규
⑨ 사반세기를 향해가는 지역문화정책 – 2001년 “지역문화의 해”2_ 염신규
⑩ 사반세기를 향해가는 지역문화정책 – 2001년의 “지역문화의 해”3_ 염신규
지역문화의 해 ‘이후’는 고 이종인 소장님의 다음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지역문화의해가 지정되고, 상임위원이라고 맡아달라고 해서 1년 동안 살림을 맡았다. (중략) 일 년 그렇게 하고 12월 폐회식날 다시 모아놓고 보고대회를 했는데, 웅성거리는 얘기가, 참여자들이 지역문화의 해를 폐회하다니 무슨 소리냐,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는 것을 다독여 폐회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연판장을 돌려 만나자고 하면서, 가까운 지역끼리 모여서 지역 간 상호 교류를 하면서 몇 회 모임을 가졌다. 네 번인가 몇 번 다니고 나서 경주에서 모임이 있다고 해서 나하고 이중한 선생하고 같이 참석을 했더니, 그 멤버들이 지역문화네트워크라는 이름을 가지고 공식 출범식을 갖고 1년에 한 번씩 대표를 바꿔가면서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걸로 알고 있다. 나는 고문으로 되어 있어서, 2~3번 빼고 거의 다 참여했다. 재미있는 것이 지역문화네트워크는 자기부담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면 체재비 2만 원씩을 내고, 나머지는 그쪽에서 식사 대접하고 술 대접하고 잠자리 제공하고, 문화자원 보고 그러는데, 전국에서 기꺼이 자기 돈 내고 자기 차 몰고 와서 밤새워 얘기꽃을 피운다.”([창간2주년 특별기획] 한국현대예술경영의흐름⑥ 이종인 “예술경영, 예술행정을 넘나들며 새로운 문화지식체계를 개척하다” [예술경영웹진] NO.112_2011.01.20.)
‘2001년 지역문화의 해’는 일전에 언급하였듯이 ‘백가쟁명식 대토론회’, ‘지역문화 컨설팅 지원사업’, ‘지역특성 문화현장 탐방 및 현장대화’ 등 10개의 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마무리는 2001년 12월 20일 잠실 올림픽 파크텔에서 열리는 백화제방 토론회에 이어, 21일 오후 2시 폐막식을 끝으로 1년 동안의 장정을 끝맺음하였다. 당시 추진위원은 이중한 한국문화복지협의회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지역문화일반 (강신표, 김석만, 김명곤 등), 언론, 관광, 지역축제, 문화예술기획 (이종인, 강준혁, 유홍준, 박인배, 안이영노, 이원태 등) 당연직 노태섭 당시 예술국장, 이진배 문화예술진흥원 사무총장 등 26명이 추진위원회 위원 위촉되어 추진되었고 당시 본인은 ‘지역문화컨설팅’ ‘지역특성 문화현장 탐방’의 간사로서 전국을 다니게 되었다. 기억에는 이중한 위원장, 이종인 소장님, 강준혁 선생님이 가장 앞자리에서 지역문화의 해를 이끌었다.
‘2001년 지역문화의 해’에 대해 당시 많은 언론, 학계에서 일회성 사업, 중앙중심의 계몽적 사업 등의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1995년 지방자치제도의 본격 도입 이후 지역문화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 올라오고 있던 시기에 지역문화의 흐름을 중앙과 지역이 함께 바꾸려는 시도의 근간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지방문화원, 예총, 민예총 외에 지역의 활동가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함께 토론하고 논의하는 장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점은 현재의 지역문화정책 현실을 볼 때,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지역문화의 해 논의에서 시작되어 10여 년이 넘어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는 등 지난하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 흐름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지역과 공간에 대한 정책의 변화이고, 두 번째는 사람중심의 지역문화생태계이다.
지역 공간 정책으로의 연결과 확대
‘지역문화의 해’ 이전 공간 관련 정책사업으로는 2000년 문화예술진흥법 상 ‘문화지구’ 제도가 시행되고 그 이전에는 1995년부터 ‘문화의 거리’ 지정이 있었다. 그러나 타 정책과 마찬가지로 중앙 중심의 공간에 대한 사고방식이 지역에 전해지는 대표적인 공간정책이었다. 반면, 2001년 지역문화의 해 이후 연계사업으로 지역현장과 공간을 돌아보는 ‘문화환경가꾸기 2002∽2004’ 사업이 이어지게 되었다. 이 사업은 이종인 소장님을 중심으로 컨설턴트들이 ‘진단 위원’으로 강진갑, 강찬석, 손경년, 박은실, 양상현, 안동만, 유재현, 이범재, 이무용, 이원재, 조명래, 지금종, 한경구, 안이영노, 안성아, 전효관 등이 전국을 누비며 컨설팅이라기보다 지역의 활동가, 지자체와 함께 논의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본인은 ‘문화환경가꾸기 사업단’의 책임으로 덕분에 전국을 함께 다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문화환경가꾸기의 마지막 해에는 논의를 종합하는 토론회를 다수 가지면서 그 이후의 사업을 이야기하였고 그중 몇 가지는 문화관광부(당시) 정책으로 개발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참여정부에서 시작하여 현재에도 이어지는 ‘문화영향평가’ 정책이며 이외에 ‘생활친화적 문화공간조성사업(2004-2007)’이 제주도 우도면 사업을 시작으로 전국 74곳에서 시행된다. 이후 생활친화적 공간사업에서 유휴공간의 문제점을 제시하며 폐/유휴공간사업을 진행하다 2014년 정식으로 ‘유휴공간문화재생 사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소 공간 중심의 사업으로만 이어지다가 ‘사람’이 중심이 된 사업으로 ‘문화이모작’ 사업이 지역과 연결되어 2010년부터 시작되었고 이러한 경험이 지역문화진흥법 제정과 함께 ‘문화특화지역(문화도시/문화마을)조성 사업’으로 그리고 현재 법정문화도시와 대한민국문화도시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등 대규모 사업이 추월하면서 전반적인 흐름이 예산과 행정, 그리고 개발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전체적으로 공간사업은 사람이 중심이 된 논의에서 지역으로 그리고 공간에서 다시 지역과 사람으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지역문화의 해에서 논의된 것은 공간을 가꾸는 ‘사람’과 ‘생태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소 하드웨어 중심, 물리적인 지역문화환경 조성 중심으로 사업이 흐르다가 문화도시로 넘어왔는데, 결론적으로 ‘문화정책’에서 공간사업은 공간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과 생태계 중심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는 방향성으로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발전, 브랜드, 거점시설이 아니라 그 도시, 공간을 움직이는 사람과 사람의 모임이 가장 중요한 거점이라는 것이 ‘2001년 지역문화의 해’의 논의에서 이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지역생태계, 공동체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가는 문화적 환경에 대한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지역문화생태계
지역문화를 가꾸는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한 생태계의 논의 역시 기존의 많은 생각들이 뭉쳐져 있다가 2002년 ‘지역문화의 해’ 이후 행동으로 촉발되었다. 맨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지역문화의 해’ 사업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역설적으로 사업이 종료된 후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민간이 중심이 되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설립한 ‘지역문화네트워크’이다. 이 다소 열려진 네트워크는, 2001년 지역문화의 해 종료 이후 논의를 거듭하다 2003년 경주에서 예총, 민예총, 문화원, 문화의 집 등의 단체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첫 창립을 하게 된다. 이는 현재 지역문화재단 협의체인 ‘지역문화네트워크’와 달리, 순수 민간에서 “지역단위에서 활동하는 문화인들과 문화단체들 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실천을 위해” 창립했다. 특히 “중앙으로의 문화적 획일화를 탈피해 중앙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지역의 입장에서의 문제 접근과 해결 노력”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네트워크에서는 정부차원을 넘어 거시적에서 미시적인 제도까지 지역문화 전반을 논의하였다. 예를 들어 2004년에는 ‘지역문화진흥법(안) 제정을 위한 전국토론회’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당시 ‘지역문화네트워크’의 성격은 다음 2007년 선언문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지역문화네트워크 2007 선언문>
2001년 지역문화의해를 기점으로 촉발되어 지역 간 상호협력과 새로운 시민문화형성을 모색하기 위해 2003년 3월 1일 지역문화네트워크는 창립되었다. 그동안 지역문화네트워크는 지역현장을 찾아가 크고 작은 지역문화 현안을 다루며 지역문화활동가 교류의 장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지역문화현안들이 최근 몇 년간 지역 곳곳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굵직한 사업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과정에서 일부 지자체는 지역축제에 과잉투자하거나 문화도시 만들기에 앞장섬으로써 지역민에 의한 자발적인 지역문화 진흥 자체를 오도하고 있다.
1. 2007년 3월 오늘의 시점에서 지역문화네트워크가 추진하고자 하였던 창립 정신을 계승하여 지역문화현장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지역 간 교류협력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1. 지역문화 활성화의 근본은 내가 살고 있는 땅을 중심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문화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우리 지역문화 활동가들은 지역문화의 진정성 회복에 앞장서고자 한다.
1. 지역문화 활성화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역문화진흥법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1. 이 시대의 생명선을 엮는 방법을 문화영역에서 찾고자 하는 우리는 이 시대를 만들어가는 문화창조자로서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가 원활화게 흘러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할 것이다.
2007.3.24
지역문화네트워크 제5차 정기총회 참석자 일동
그러나 이러한 논의와 병행 혹은 별도로 지역문화의 제도적 조직화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너무나도 행정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지역문화재단의 설립이 가속화되었다. 지역문화재단은 지역 문화정책 수행에 있어 지역에 맞춘 독립성과 자율성 확대라기보다는 정부 지원금 분배라는 문화행정 수요에 대응하는 역할을 중심으로 수행해 왔다.. 물론 경기문화재단 등 문화재단의 큰 누님 격 기관은 지역 주도 문화정책의 성과를 내려는 노력이 초기에 많았고 특히 문화예술교육, 문화다양성, 전문인력 양성은 정부(문화체육관광부)보다 이러한 지역재단이 최초로 시도한 사업들이었다. 그러나 점차 정부 사업에 종속이 되는 재단의 역할과 지역 정치에 흔들리는 재단의 위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단, 현재 각 광역 및 기초 지역문화재단은 단순한 정부사업의 수행, 시설의 운영을 넘어서 지역의 요구에 맞춘 자체 기획 사업을 조금씩 만들어가며 지역문화분권의 싹을 어렵게 틔우고 있는 희망을 보이고 있다.
2001년 ‘지역문화의 해’에서 제기된 지역의 생태계는 이러한 제도권 조직으로서 재단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활동가, 예술가, 기획자, 시민이 지역문화를 위해 논의하고 결정하고 수행하는 ‘생태계’를 상상했고 이러한 상상을 다시 살려서 실현하는 것이 이제부터의 논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생태계는 지역 간의 연계, 그리고 지역의 목소리가 중앙의 정책으로 연결이 되는 오래된 정책요구의 실현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2001년 ‘지역문화의 해’를 돌아보면서 소중하게 남아 있는 이중한, 이종인, 강준혁 세 분의 현장에서의 모습을 전한다. 어느 지역에 가서도 강요하고, 설명하고,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허심탄회하게 ‘듣고’, 같은 자리에서 ‘함께 토론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이러한 전문가의 역할과 태도 역시 현재 매우 아쉬운 것들이다.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원. 2001년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입사, 입사부터 문화환경가꾸기, 지역문화의 해 등의 사업으로 지역 연구, 문화시설연구, 전통공연예술연구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