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인류세를 정의하는 주체로서 국제층서위원회와 인류세워킹그룹을 살펴보고, 인류세워킹그룹이 제안하는 네 가지 중 첫번째 기준인 표준층서그래프 상에서 인류세의 위치 설정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인류세워킹그룹이 제안하는 두번째 기준인 '경계설정의 표준방법', 세번째 기준인 1950년대의 '거대한 가속', 그리고 네번째 기준인 '표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나. 경계설정 표준방법 : GSSP 일명 ‘황금 못’
현재 국제층서위원회ICS는 각 지질시대의 경계를 GSSP(Global Boundary Stratotype Section and Point, 일명 ‘황금 못’)를 이용하여 절(Stage) 단위까지 구분하고 있다. GSSP가 성립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으로서 다음과 같은 7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 전 지구적 사건에 대한 표식(marker)이 존재할 것
(2)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보조적 모식층(stratotypes)이 있을 것
(3) 지역적, 지구적 대비가 가능할 것
(4) 표식 상하부로 적당한 두께의 연속적 퇴적층이 존재할 것
(5) 정확한 위치(위경도, 높이, 깊이 등)를 알 수 있을 것
(6) 접근성이 용이할 것
(7) 보전성이 좋을 것
이런 기준에 따라 GSSP(‘황금 못’)가 설치된 실제 사례를 보자. 아래 왼쪽 그림은 선 캄브리아대 원생누대 에디아카라기(Ediacaran)의 ‘황금 못’이다. 오른쪽 그림은 과달루페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 후세 코니키아 절의 층서를 보여주는 ‘황금 못’이다.
국제층서위원회는 층서가 결정되는 프로세스도 또한 규정해두고 있다.
국제층서위원회ICS는 1977년 출범한 이래 ‘황금 못(Golden Spike)' 으로 표현되는 GSSP의 모식단면 (type-section)을 지정해오고 있으며, 2016년 2월 기준으로 GSSP가 필요한 총 101개의 절 중에서 65개의 경계에 '황금 못'이 박혀있다(Serrano, 2015). 황금못을 박는 것은 대단히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그림 1). 먼저 각 시대별 워킹그룹(Working Group)의 연구 결과를 심사, 투표를 통하여 GSSP를 결정한 후, 다시 국제층서위원회 ICS의 소위원회와 ICS의 투표에서 60%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국제지질과학연맹IUGS의 인준을 거쳐야 비로소 공식적인 국제적 시간층서 경계로 인정받게 된다 (Kim and Kim, 2005). 따라서 공식적 시대 경계를 인정받기 위해서 많은 논의를 거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아래 그림은 층서를 결정하는 프로세스를 보여준다. 워킹그룹에서 소위원회로 그리고 국제층서위원회 위원장과 전체 소위원회의 위원장들이 결정하여 정족수의 60% 이상이면 국제지질과학연맹 최고위원회에 회부하여 검증한다. 검증을 통과하면 황금 못을 설치하고 제안서를 출판하는 흐름을 볼 수 있다.
인류세 워킹그룹은 마커를 설치할 위치와 제안서를 작성해서 위원회에 2016년에 제출했으나 아직 승인받지 못했고, 당시에 제출한 마커와 제안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인류세가 공식화되지 않았으므로, 아직 인류가 살고 있는 지질시대인 홀로세(Holocene)는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계를 설정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홀로세 경계설정의 특징은 그린란드에서 시추한 빙하 시추시료에서 여러 고기후 자료를 분석하여 ‘빙하기가 끝난 시기’를 경계로 삼은 것이다(Pillans and Naish, 2004; Walker et al., 2009). 오래된 지질학적 시대는 지층과 생물을 중심으로 조사하는데 홀로세는 다른 지질시대와 비교하여 시대 경계 설정을 위해 사용한 방식이 다르다는 점과 지속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 등의 특징을 가진다.
빙하코어를 이용하면 빙하에 갇혀있는 과거의 공기를 직접 조사할 수 있다. 이 공기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는데 이는 탄소순환과 기후변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산화탄소 농도 분석을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빙하를 녹이지 않고 기계적으로 부수어 공기를 추출하는 건식추출법을 이용한다. 빙하코어의 이산화탄소 농도 자료는 십년에서 십만년의 시간 규모의 변동성을 보여준다. 최근 국내에서 빙하코어 이산화탄소 농도분석 기술이 개발되었고, 앞으로 국내 연구에서 탄소동위원소 분석기술 개발되어야 한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준공과 맞물려 국내에서 빙하시료 확보가 용이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류세의 시작시기를 1950년대로 본다면 불과 7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지질학적 관점의 화석이 생성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지질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지구시스템 과학에 의해 조사범위는 빙하와 심해도 포괄하게 된다. 지구 시스템 과학이 만든 데이터를 최대한 지질학적 관점에 맞춰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빙하코어는 퇴적층을 조사하는 지질학적 방법과 유사한 면이 있다. 심해코어는 조개껍질의 퇴적층을 수직으로 시추하여 이를 시료로 분석하는 점에서 퇴적층을 조사하는 지질학과 유사점이 있다.
다. 인류세의 시작 시기 : 1950년대 거대한 가속
인류세 워킹그룹은 “인류세의 시작은 인구팽창과 산업화 지구화의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으로 인한 지질학적 신호들에 보존된 20세기 중반에 위치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거대한 가속’ 개념은 국제지리-생명권프로그램 IGBP (International Geosphere-Biosphere Program)을 통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인류가 지구에 미친 영향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24개의 글로벌 지표 세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표는 "Planetary Dashboard"로 불리는데, 이 지표들은 한결 같이 1950년대에 급격하게 상승하는 그래프를 보여준다. 이 사회경제적 활동의 급격한 상승과 지구 시스템 상의 급격한 변화를 개념화한 것이 ‘거대한 가속’이다.
이 거대한 가속 개념을 주도하는 학자는 호주 국립대의 윌 스테픈(Will Stephen)이다. 윌 스테픈은 IGBP (국제지리권생물권프로그램)에 참여하여 2004년에 이 거대한 가속 개념을 포함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2005년에 출간했다. 이 보고서에 그 유명한 거대한 가속 그래프가 실린다. 이 그래프들은 지구 시스템 추세와 사회-경제적 추세 사이의 상관관계를 주목하게 한다.
그래프는1750년대 부터 2000년까지 표기되어 있고, 1950년에 수직으로 점선이 위치하고 있다. 윌 스테픈은 기울기가 급격하게 높아지는 1950년을 거대한 가속이 시작된 시기로 제시했다.
윌 스테픈은 2005년에 발표했던 거대한 가속 그래프를 2015년에 다시 업데이트하여 논문을 발표했다. 시기는 2010년까지 포함하고 있고, 지구 시스템 지표는 12개가 동일하지만, 사회-경제적 지표는 2개의 지표가 제외되어 10개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선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그래프는 세 개의 국가 그룹으로 나뉘어 제시되었다. 그가 논문을 통해 제시한 거대한 가속 그래프의 업데이트 동기와 의미, 그리고 1950년의 기준점 제안의 시사점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동기 : 최초의 거대한 가속 그래프 (2004)는 인류를 하나의 전체로 취급했으며 사회-경제적 그래프를 국가나 국가 그룹으로 해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인류 전체를 하나로 취급하는 방식은 사회 과학자와 인류학자들로부터 공평성 문제를 가린다는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예 : Malm and Hornborg, 2014). 2015년의 업데이트(Steffen et al., 2015)에서는 부유한 국가(OECD), 신흥 경제국(BRICS) 및 세계의 나머지 지역을 구분했다.
의미 : 그래프에서 가장 놀라운 통찰력은 대부분의 인구 증가가 비 OECD 세계에 있었지만 세계 경제 (GDP)는 여전히 OECD 세계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BRICS 국가를 향한 전 세계 생산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대량의 경제 활동과 소비 비중은 대부분 OECD 국가가 차지한다. 2010년 OECD 국가는 전 세계 GDP의 74%를 차지했지만 전 세계 인구의 18%만 차지했다. 이것은 세계적 불평등의 막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거대한 가속'은 혜택 분배를 왜곡시키고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려는 노력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시사점 : 지구 시스템 지표에서 1950년 이후의 가속은 분명하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 홀로세의 변이 범위를 넘어 인간 활동에 의해 주도되는 지구 시스템의 상태와 기능에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있다. 따라서, 인류세의 시작 날짜에 대한 모든 후보자 중에서, 거대한 가속의 시작은 지구 시스템 과학의 관점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다.
윌 스테픈의 '거대한 가속' 그래프 업데이트는 인류세에 미치는 자본주의의 영향력을 더욱 상세하게 규정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지표들은 앞으로도 어떻게 조사 수집 분류되는가에 따라 계속해서 업데이트가 가능할 것이며, 그에 따라 인간의 영향력도 하나의 인류가 아닌, 다양한 그룹들로 나뉘어 더 세밀하게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남극에 설치된 기지에서 수집한 빙하코어 표본을 실험실로 가져와 공학적으로 정의된 처리 과정을 거쳐서 보다 가공하기 좋은 기호들로 변환된다. 하나의 그래프로 변환하기 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 지난한 과정의 끝에 이 그래프들이 등장한다. 이 그래프는 공론장의 학계와 국제적 이해관계자에 대응한다.
라. 최우선적 표식 : 핵실험에 의한 인공적 방사선 확산
인류세 워킹그룹이 제안한 네 가지 항목 중 마지막 항목은 다음과 같다. “최우선적인 표식을 형성할 예리하고 가장 지구적으로 동시적인 신호들은 1950년대에 핵실험으로 지구적으로 확산된 인공적 방사선의 확산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문장은 GSSP의 시기와 위치를 구체적으로 한정할 수 있도록 제시되어 있다. 인류세 워킹그룹이 2016년에 제안했을 때에 주목했던 GSSP가 있겠지만, 외부로 발표되지 않았기에 다른 자료를 살펴봄으로써 대략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를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이전에 인류세의 GSSP를 핵실험에 의해 지구적으로 확산된 인공적 방사선을 중심으로 연구한 논문이 있다. Colin N. Waters 외 (2015)는 <핵폭탄이 인류세의 시작점을 낙점해 줄 수 있을까?>라는 논문에서 저자는 플루토늄 239와 아메리슘 241을 마커로 보고, 북위 30-60도 부근으로 GSSP를 한정하고 있다.
콜린 워터스는 핵무기 실험에 의한 낙진에 주목한다. 핵무기 실험의 낙진은 "전 지구적 사건에 대한 표식"으로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플루토늄 239 (1945년 이후 지상 핵무기 시험에서 사용)의 출현은 좋은 지표로 간주한다.
"이 동위 원소는 본질적으로 드물지만 낙진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긴 반감기, 낮은 용해도 및 높은 입자 반응성을 포함하여 퇴적암과 토양 층에서 안정적인 마커로 권장하는 다른 기능이 있다. 아메리슘 (241) 및 탄소 (14)와 같은 다른 방사성 동위 원소와 함께 사용되어 퇴적물과 아이스 캡에 뚜렷한 낙진 신호를 분류할 수 있다. 세계적인 규모로, 퇴적 서열에서 플루토늄 239의 첫 출현은 1950년대 초에 해당한다. 플루토늄은 현대적인 측정 기술을 사용하여 지구 전체에서 쉽게 감지 할 수 있지만 인류세 '황금 못'(golden spike)을 정의하는 장소는 적도에서 북쪽으로 30도에서 60도 사이에 있으며 낙진이 최대이며 해양 또는 호수 환경에 방해받지 않는 범위가 이상적이다."
아래 그림은 콜린 워터스가 논문에서 제시한 그래프로 핵폭탄 실험이 진행된 시기와 지점과 크기를 표기한 것이다. 1945년에 시작해서 1963년에 대기와 지하 핵실험이 가장 많았음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핵실험 위치와 규모를 지도 상에 표기하고 표식이 등장할 확률이 높은 지역을 연결한 것이다.
앞서 국제층서위원회의 GSSP의 성립 기본 조건을 다시 살펴보자.
(1) 전 지구적 사건에 대한 표식(marker)이 존재할 것
(2)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보조적 모식층(stratotypes)이 있을 것
(3) 지역적, 지구적 대비가 가능할 것
(4) 표식 상하부로 적당한 두께의 연속적 퇴적층이 존재할 것
(5) 정확한 위치(위경도, 높이, 깊이 등)를 알 수 있을 것
(6) 접근성이 용이할 것
(7) 보전성이 좋을 것
콜린 워터스의 논문의 내용은 ‘(1) 전지구적 사건에 대한 표식’에 대해서는 1950년대 60년대의 전지구적 핵실험에 의한 방사성 물질의 확산으로 성립한다고 이야기하고 ‘(3) 지역적 지구적 대비’에 대해서는 각 지역별로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 측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7) 보전성이 좋을 것'에 대해서는 반감기가 더욱 길고 안정적인 물질들을 비교하여 아메리슘 플루토늄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2) 보조적 모식층이 있을 것과 (4) 표식 상하부로 적당한 두께의 연속적 퇴적층이 존재할 것이라는 조건을 만족 시킬 수 있을까? 1950년대에 낙진으로 표식 상하부의 적당한 두께가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핵실험에 의한 인공적 방사선 외에도 주목을 받는 다른 대안들이 있다. 캐나다 웨스턴대학 등의 지구과학자들은 플라스틱이 섞인 돌덩어리들을 수집해 새로운 유형의 암석이라는 뜻에서 ‘플라스티글로머리트’ 또는 ‘플라스틱 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플라스틱 돌이 지구 역사에서 인간의 영향이 커진 지질시대를 일컫는 이른바 ‘인류세’(Anthropocene)를 구분하는 데 기준석으로 쓰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논문의 제목은 "An anthropogenic marker horizon in the future rock record" 이고 논문이 실린 매체는 GSA Today라는 지리학 저널이다.
인류세워킹그룹이 우선적으로 핵실험 방사선을 마커로 우선 주목하지만, 다른 마커에 대한 연구들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인류세워킹그룹을 중심으로 인류세의 정의와 관련된 주요한 사항들을 훑어보았다. 전호에서는 인류세 과학이 탈정상과학이며, 공론장 속에서 다루어진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류세워킹그룹 주도하는 인류세 정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거대한 가속' 개념은 자연과학적 관점만을 고집하지 않고 사회과학적 비판에 대응해서 유연해질 수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인류세를 둘러싼 다양한 관점들의 차이들을 비교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획연재_ 인류세와 문화정책⑤] 그레타 툰베리를 위한 정치 지도 (0) | 2020.03.02 |
---|---|
[기획연재_도시와문화정책⑧] 법정문화도시 선정 리뷰 (0) | 2020.02.03 |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⑦]도시재생의 딜레마(3) - 경제에 포획된 도시, 도시정책, 문화도시 (0) | 2019.12.30 |
[기획연재_인류세와 문화정책⓷] 인류세는 누가 어떻게 정의하는가? (1) | 2019.12.29 |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⑦]도시재생의 딜레마(2) - 문화의 왜곡, 정치의 왜곡 (1) | 2019.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