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 지역문화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 ⑧] 공공도서관은 어떻게 마을을 만드는가(이정은)

CP_NET 2024. 12. 22. 03:56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 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라는 기획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새정부에 대한 제안이라기보다는 새정부 구성을 계기로 현단계 정책과제를 살피자는 기획이었습니다. 이 기획에는 100인의 예술가, 기획자, 정책연구자 등이 참여하여 현장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과제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이 기획에 대한 분석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단과 제안에는 구체적 현장으로서의 지역에 대한 여러 관점이 드러납니다.
관련기사:[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 분석-정책 관심도와 흐름,
               [
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 분석-정책에 대한 관심과 흐름2)
 
지역문화의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은 지역예술과 지역문화의 현장에서 정책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현장에서는 어떠한 변화와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책의 작동에서 토대로서의 현장에 주목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지원사업의 안이냐 밖이냐를 떠나 스스로 자신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현장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의 재구성을 전하고자 합니다.

 척박하기 때문에 연대로 성장해온 대구 독립영화 씬 _ 권현준
 창작열, 동료의식, 지원기관의 노력_ 이승우
 지역문화예술정책은 지역에서! _ 강구민
 아산에서 예술하기_ 조혜경
 아산에서 예술하기 2, 예술인 복지증진 조례 제정 노력 무산 _조혜경
 지역에 뿌리를 두고, 음악하기 _배미나
지역 기록문화운동, 관계의 발견을 통한 다정한 공동체 만들기 _배은희

 

 

2008년 파주의 신도시 교하지구에 교하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도서관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문을 열기 전부터 지역 주민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겉보기에는 수도권의 여느 신도시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지만, 교하로 이사를 온 이주민들 중 많은 수가 삶의 장소로서의 교하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잠시 머무는 서울 변두리가 아닌 교하살이를 그리는 사람들에게 교하도서관은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개관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휴일 낮이었던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도서관을 가득 채운 이들의 호기심가득한 눈이 지금도 떠오른다. 도서관을 반기는 환한 웃음에 살짝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교하도서관의 사서들의 움직임이었다. 지역 주민들에게 교하도서관의 초기 모습을 그려보라면 신도시에 어울리는 세련된 건물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적을 것이다. 교하도서관의 사서들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거나 강연을 준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도선관을 찾아온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질문에 답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사서들이라니! 도서관 특별 강연 시간에 질문을 한 사람들을 따로 모아 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하고, 이왕 모인 김에 독서동아리 만드시면 어떠냐며 등을 떠미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모인 독서동아리가 2024년 겨울 15살 생일을 맞이하는 것은 모두 그들 덕분이다. 교하도서관의 사서들은 독서동아리를 만들라는 말에서 그치지 않고 매주 함께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었다. 도서관 이용자를 장서개발위원이나 도서관 기획회의에 참여시켜 공공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였다. 교하도서관 근처 골목에서 마을잔치가 벌어지면 사서 선생님들이 책을 들고나와 자리를 지켰고, 아예 마을로 나온 도서관이라는 연중 기획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강사보다 동네 골목 장인을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자는 취지로 시작된 동네사람이라는 프로그램은 2012년 시작하여 올해로 62회를 기록하였다. 시험공부 하는 독서실이 아닌, 지역 주민을 위한 정보 서비스센터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는 교하도서관 덕분에 지역 주민은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리터러시의 실험장, 책벗

 

교하도서관에는 독서동아리가 많다. 공공도서관에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임이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독서동아리 책벗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당연하다 생각하고 소홀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2009년 교하도서관 개관 기념 특강 탈경계 인문학강연은 교하 주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매번 질문이 이어져 7시 반에 시작된 강연이 10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강사들은 첫 인사로 여기가 질문 폭탄으로 강사의 발을 묶어둔다는 교하도서관이로군요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경계 위에서의 인문학을 다룬 내용이라 책을 통해 만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쏟아졌고, 회를 거듭할수록 참여자는 늘어갔다.

 

5강을 마무리할 무렵 교하도서관 사서가 강연 시간에 질문을 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시민 대토론회를 제안했다. 질문을 조금 더 키워보자는 취지였다. 그 자리에서 패널이 선정되고 강사와 지역 주민 패널이 무대에 오르는 시민 대토론회가 열렸다. 120명 정원의 소극장은 서서 듣는 주민들로 가득 찼다. 토론회를 마치면서 한 시민이 손을 들고 강연에서 토론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래서였을까? 토론회를 마친 후 다시 질문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왕 모였는데 이렇게 헤어지는게 아쉽지 않겠냐며, 독서동아리를 만들어 이어나가면 어떻겠냐고 등을 떠미는 사서들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하면서도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동아리는 단 두 명으로 1년을 버틴 적도 있고, 30명이 넘게 시끌 시끌 토론을 열기도 하면서 15년을 이어오고 있다. 수많은 위기를 사서들과 함께 이겨내고 버텨내면서 서로 다른 삶의 언어를 한 자리에 풀어놓는 실험실의 역할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름을 이야기한다는 것, 삶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책을 매개로 서로의 말을 번역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옳고 그름이 아닌 주장에 설득당할 용기를 배운다. 교하도서관의 다른 많은 독서동아리들도 나름대로 함께 살기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공공 도서관이 마을에 있다는 것은 멋진 건축물, 세련된 멀티미디어실, 신간 보유 권수보다 더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교하도서관은 보여주었다.

 

 

목적이 아닌 과정의 쩜오책방

 

마을 이웃 16명이 협동조합으로 책방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대단하다, 멋지다는 말들을 한다. 그래서 외부 활동을 할 때 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다. 사회학자, 시인, 사진 전문가, 디자이너, 다원예술가 등등. 조합원의 구성에 대해서도 말을 아낀다. 우리는 전문가 이전에 마을살이를 고민하는 동네 이웃들이다. 우리는 교하도서관이라는 파주 교하 신도시의 소중한 장소에서 서로를 소개받고 책을 읽고 서로에게 책이 되어주는 경험을 나눈 이웃들일 뿐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권하는 책을 마을에서 공유하고 싶어서, 마을 사람들이 서로에게 책이 되어주는 공유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방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서울의 변방이 아니라 여기 이곳, 파주 교하에서 살맛을 느껴보자는 생각을 실천하는 과정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책방 문을 연다.

 

책방과 도서관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틈새를 살피고, 그 틈새를 벌일 것인지, 좁힐 것인지, 무엇으로 채워버릴 것인지를 매일 매일 고민한다. 공공도서관에서 강의를 듣고 책을 대출받는 것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 책을 펼쳐 서로 다른 목소리로 읽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듯 마을 이웃의 경험과 지식을 늘 공유할 수 있는 책방은 어쩌면 또 다른 도서관의 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 실험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을 살아갈 이들에게 뭐라도 남겨줄 수는 있을 거라 위안하면서 오늘도 함께 읽기를 이어나간다. 책 팔아 월세 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떻하겠나, 이게 다 교하도서관을 찾은 우리 탓이니!

 

 

쩜오책방. @booksdot5. 발전소책방5협동조합 Since 2016. 마을 이웃들이 함께 꾸려가는 협동조합 책방. 조합원의 절반과 당신의 절반이 만나 하나 이상이 되기를 바란다. 책을 매개로 마을 사람들이 만나는 공유공간이며 주말이면 북토크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조합원들의 특기를 살려 기타 강습, 일본어 수업 등이 진행되기도 한다. 책방의 수익은 마을공동체에 환원되고 있다.

 

 

 


마담(이정은) 마을 이웃들과 함께 책을 읽고 다양한 속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쩜오책방지기입니다. 손을 놀려 꼬물거리는 놀이를 좋아하고 이웃들과 소소한 작당을 즐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