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더 단단한 '합의'
대학로X포럼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에 대응하면서 만들어진 연극 및 공연예술인들의 토론을 위한 페이스북 그룹입니다. 블랙리스트 대응만이 아니라 연극 및 공연예술계 현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때로는 공동발의를 통해 오프라인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합니다. 지난 3월 18일에는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제9차 대학로X포럼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 - <두 메데아> 보이콧 운동을 경유하여”가 개최되었습니다.
토론회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번 토론회는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 예정이었던 <두 메데아>에 대한 보이콧운동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메데아> 보이콧운동은 이 공연에 전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주연 배우로 그리고 성폭력 관련 조사 중인 안 모씨가 그래픽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있는 이 공연이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공공극장인 대학로극장 쿼드에 오른다는 데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학로극장 쿼드를 운영하는 서울문화재단은 문제제기에 대해 대관심사 과정에서 출연진 및 스태프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고, 전 연희단거리패 대표에 대한 법률적 처벌이 없는 상황에서 대관배제는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답변합니다. 성폭력 가해자 조사를 받고 있는 그래픽디자이너는 문제제기가 시작되자 공연에서 하차합니다.(<두 메데아> 보이콧운동 관객 서명) 연극인들만이 아니라 관객들의 서명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연단체가 공연을 취소함으로써 <두 메데아>는 대학로극장 쿼드에 오르지 않습니다.
이날 토론회는 페이스북 라이브로도 중계되었는데, 라이브 중계에서도 현장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특정 사건에 한정하지 않고 ‘백래시’로 논의를 넓히고 집중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가까운 사건을 두고 논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극 및 관객들까지 보이콧운동에 참여할 만큼 연희단거리패 전 대표가 공공극장 무대에 선다는 것이 안전한 창작환경을 위협하는 공격적 반발이라는 의견이 강하게 개진되었습니다. 발언자들 중에는 연극인들만이 아니라 보이콧운동에 참여했던 관객들도 있었습니다. 한편 보이콧운동이 공연취소에 이르는 과정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연극 및 공연예술인들이라면 공연취소가 갖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짐작할 것입니다. 보이콧운동은 그 무게만큼의 항의일 것입니다.
세 시간을 꽉 채워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내내 대립되는 의견들로 긴장이 이어졌습니다. 2018년 이윤택 성폭력 사건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미투가 있었고 이후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 등 ‘안전한 창작환경’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의 긴장은 사실에 대한 정보값 자체의 차이, 성폭력, 위계폭력, 가해자, 조력자 등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에서 비롯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이해의 간극 만이 아닙니다. ‘위험’을 감지하는 것에서도 큰 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 해 연희단거리패 전 대표를 캐스팅한 연출자가 “페미니즘보다 휴머니즘”을 존중한다고 했던 인터뷰 기사가 자주 인용되었는데, 이러한 견해가 어떻게 문제를 왜곡하고 피해자와 안전한 창작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것인지에 대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간극은 ‘백래시’와 관련한 여러 쟁점들, 법률적 처벌이 없었다는 것이 책임 없음을 증명하는 것인가, 우리가 안전한 창작환경을 만들어가는 기준이 법률적 유무죄로 한정되는 것인가, 가해자는 영원히 현장에 돌아올 수 없는가, 돌아온다면 어떻게 돌아와야 하는가 등등의 쟁점을 토론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옳고 그름인지, 서로 다름인지에서부터 이해와 견해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하기 위해 먼길을 달려왔지만 소통의 어려움에 실망했다는 참석자도 있었고, 어떤 발언에 대해서는 부적절함에 대한 항의가 즉각 터져나오는가 하면, 토론회에 참석한 <두 메데아> 연출자는 보이콧운동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더 고민해보겠다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토론회의 긴장과 어려움은 여전히 우리의 창작환경이 안전하지 않다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때 ‘안전한 창작환경’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법률과 규정 등 제도개선만이 아니라 창작자들 스스로 더 단단하고 더 나은 합의를 만들어갈 때 ‘안전한’ 창작환경이 마련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더 단단하고 더 나은 합의가 제도개선과 제도를 작동시키는 동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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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거가 다가왔습니다.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이 펼쳐지겠지요. 그래도 우리의 삶은 나아갈 것입니다. 꽃이 지고 푸른 잎사귀가 무성해지듯이.
김소연 편집장
목차
[이슈] 22대 총선 문화예술 공약 분석– 지켜보고 있다는 기록_ 김민규
[이슈: 문화예술교육 지역화 현장 인터뷰 ③] 사회적 의제와 결합하는 문화예술교육 - 이민석 경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_ 안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