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2025대선 ⑦] 사회를 회복시키고 우리의 삶을 살리는 길-‘사회정책으로서의 문화정책’과 ‘연대’를 위하여 (손동혁)

CP_NET 2025. 5. 27. 08:22

 

편집자 주: 긴 탄핵정국이 끝나자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곧 각 정당의 후보자들의 선거 유세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선거는 후보자들의 경합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선거는 정치적 요구들이 쏟아져 나오는 공간이며, 후보자들은 마땅히 그러한 요구들을 속에서 경합해야 합니다.

[문화정책리뷰]는 제21대 대통령선거를 맞이하여 ‘특집:2025대선’을 마련했습니다. 후보자들의 약속에 갇히지 않고 오늘을 성찰하고 내일의 비전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프롤로그 “선거는 왜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가! 20인의 외침!”으로 시작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① 프롤로그 “선거는 왜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가! 20인의 외침!”
② 잊혀진 문화헌장을 다시 들추며 (염신규)
“선거는 왜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가! 32인의 외침!”
④ 2025예술인선언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의 삶과 예술을 위한 사회를”
⑤ 개혁이 면죄부가 되는 이유- 공적 도구의 이념을 묻는다
⑥ “선거는 왜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가! 44인의 외침!”
⑦ 사회를 회복시키고 우리의 삶을 살리는 길-‘사회정책으로서의 문화정책’과 ‘연대’를 위하여 (손동혁)
⑧ 흩어져 있거나 기반 조성에 묶여 있거나- 문화예술분야 공약 리뷰 (김민규)
⑨ “선거는 왜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가! 59인의 외침!”
 

 

 

대한민국은 지금 인구 감소, 지역 소멸, 사회적 고립, 심화되는 불평등 등 복합적인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문제는 이 위기들이 단일 정책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이라는 데 있다. 복지, 산업, 교육 등 여러 정책들이 제각각 해법을 제시해 왔지만,, 정작 시민의 일상 회복과 공동체 재건이라는 근본적 변화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문화정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문화는 더 이상 여가나 예술 향유의 영역에 머물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사회정책으로서의 문화정책이다.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고립된 삶을 공동체로 회복시키는 힘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정책은 본질적으로 사회정책이어야 하며, 이 변화는 삶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지역에서, 경쟁이 아닌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

 

 

문화정책의 전환-문화는 시민의 권리다

 

지금까지 한국의 문화정책은 예술창작 지원, 콘텐츠산업 육성, 문화기반시설 확충에 집중되어 왔다. 이러한 정책은 문화 관련 사업의 외형을 키우는 데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시민 대다수에게 문화는 여전히 낯설고 먼 영역으로 남아 있다그러나 헌법 제22조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고, 문화기본법4조는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참여하며 향유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선언한다. 이는 문화정책이 단지 산업 육성이나 예술 지원을 넘어, 국민의 문화적 시민권을 실현하는 공공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 전환 속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개념이 바로 사회정책으로서의 문화정책이다. 이는 문화정책이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장, 세대 간 소통, 지역 공동체 회복, 정신 건강 증진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으로 기능해야 함을 뜻한다.

 

이러한 흐름은 실제 정책과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서울시는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예술 활동을 통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술로 돌봄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가와 복지사가 협업하여 예술을 삶의 회복 도구로 활용하는 이 시도는, 문화가 단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복지의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의 지역 창의문화 활성화 프로젝트(Creative People and Places)’는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주민들이 직접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게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문화 접근을 넘어서 문화민주주의의 실현을 지향한다. 덴마크의 지역 문화공간 재생 정책 역시 이주민과 원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공 문화공간을 통해 사회통합을 유도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의 회복도 중요한 주제다. 충북 옥천의 문학축제 지용제는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기획·운영한다. 축제는 단지 행사가 아니라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복원하는 문화적 실천으로 자리 잡았다핀란드는 의료와 문화를 연결해, 의사가 환자에게 전시 관람이나 공연 관람 등을 처방하는 문화 처방(Cultural Prescription) 제도를 운영한다. 한국에서도 국공립 미술관을 중심으로 예술치유 프로그램이 확산되며, 정신건강과 문화 향유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문화정책은 단순한 지원이나 흥행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이 삶의 의미를 찾고, 타인과 연결되며,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정책이 되어야 한다. 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권리이며, 문화정책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자다.

 

 

중앙 중심 경쟁의 역설-지역이 지역을 착취하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정책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이 존재한다. 바로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경쟁 중심 정책 구조다. 공공기관 유치, 산업단지 지정, 문화기반시설 사업 등 거의 모든 정부 지원이 공모 방식으로 이뤄지면서, 지역 간 갈등과 소외를 낳는다. 지방정부와 지역단체는 선정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고유한 문화 자산을 포기하거나 왜곡하기도 하며, 행정력과 예산은 실질 필요가 아닌 평가 기준 맞추기에 낭비된다. 문화도시 지정, 생활 SOC 사업의 경우, 표준화된 중앙 기준에 맞추는 데 급급해 지역 고유의 비전과 주민 주도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 결과 지역 간 연대는 끊기고, 오히려 지역이 지역을 갈아 넣는 구조가 고착된다. 청년 유출, 고령화, 복지 인프라 부족, 문화 접근 격차 등 공통의 문제를 가진 지역들이 연대해야 할 필요성은 외면된 채, 경쟁만이 남는다.

 

이제 지역은 중앙이 설계한 경쟁 구도에 저항하고, 연합과 협력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인접 지역 간 공동 거버넌스를 실험하고, 지역 주도의 문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자율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제 지역이 직접 문화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상향식 접근 방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지역의 주민, 예술가,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여 지역의 실질적인 필요와 잠재력을 반영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역에 대한 태도와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보편적 문화복지 보장, 필요 기반 조정, 상향식 정책 기획, 사회적 가치 기반 평가 체계, 그리고 문화정책과 복지·교육 간 정책 연계가 그 핵심이다. 문화정책은 복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와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 비로소 최대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이러한 정책 간 연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어 협력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문화정책이 더 이상 하나의 부처에 국한된 업무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을 위한 핵심 동력이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지금이야말로 중앙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지역 주도문화 시대를 열어갈 때이다.

 

문화정책은 더 이상 부가적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의 언어이자 공동체의 토대, 사회정책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지역 간 연대는 사회정책으로서의 문화정책이 작동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공공성과 민주성, 지속가능성과 포용성을 갖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손동혁.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 지역과 영상, 문화정책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문화예술생산자연합 기획국장,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대표,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조직국장, 인천민예총 사무처장,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소장, 한국영상미디어센터협의회(현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초대 대표, 인천문화재단 본부장·정책협력실장 등을 역임했다. 자유롭고 발랄한 담론의 소통 마당, 지속 가능한 문화 의제를 발굴하고 새로운 시도를 지원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