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2025대선 ⑤] 개혁이 면죄부가 되는 이유- 공적 도구의 이념을 묻는다(김상철)

CP_NET 2025. 5. 20. 11:37
편집자 주: 긴 탄핵정국이 끝나자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곧 각 정당의 후보자들의 선거 유세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선거는 후보자들의 경합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선거는 정치적 요구들이 쏟아져 나오는 공간이며, 후보자들은 마땅히 그러한 요구들을 속에서 경합해야 합니다.

[문화정책리뷰]는 제21대 대통령선거를 맞이하여 ‘특집:2025대선’을 마련했습니다. 후보자들의 약속에 갇히지 않고 오늘을 성찰하고 내일의 비전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프롤로그 “선거는 왜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가! 20인의 외침!”으로 시작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① 프롤로그 “선거는 왜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가! 20인의 외침!”
② 잊혀진 문화헌장을 다시 들추며 (염신규)
“선거는 왜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가! 32인의 외침!”
④ 2025예술인선언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의 삶과 예술을 위한 사회를”
⑤ 개혁이 면죄부가 되는 이유- 공적 도구의 이념을 묻는다
⑥ “선거는 왜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가! 44인의 외침!”
 

 

 

알박기가 유행이다. 정권 말기엔 다양한 행태들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계엄과 탄핵 정국에 이어지는 현시기의 사태는 특징적이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장 등의 인사는 두 가지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전문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독립성. 물론 현행 공공기관운영법에는 정부의 지분구조를 중심으로 공공기관을 설정하고 있고(4) 일반적으로 알려진 시장형 공기업이냐 준시장형 공기업이냐의 기준,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이냐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냐의 기준 역시 자산규모나 수입액 중 자체수입액 기준 같은 회계적 요인으로만(5)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왜 정부가 직접 수행하지 않고 공공기관을 통해서 정책이나 사업이 집행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회계적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별도의 기관설립 필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일반행정이 하는 것보다 더 전문적으로 해야 할 경우이거나, 사업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것이 정책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와 같은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논란이 되는 공공기관의 알박기 논란은 알박기라는 말이 주는 것처럼 임명 시기의 문제보다는 그렇게 임명되는 사람이 공공기관의 구성원리에 부합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거의 없다.

 

 

기관장 알박기 논란의 함의

 

공공기관의 문제를 임명시기의 문제로만 국한하면 우스운 상황이 벌어진다. 이를테면 202554일에 <연합뉴스>는 자체 전수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계엄 이후에 공공기관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48명에 달한다면서 알박기 의혹은 보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들이 6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국토교통부로 5, 뒤이어 문화체육관광부가 4명이다. 이런 부처들은 정부에서도 특히 공공기관이 많고 이해관계자들이 다수 있으며 전직 관료들이 옮겨가는 빈도가 높은 곳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자체 전수조사를 통해서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29명이나 있다는 기사를 냈다. 이들의 관점에선 문재인 정부의 정권 말 알박기 인사가 현재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란을 좀 더 면밀하게 보면 공통적인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공공기관장은 임기 중의 정부가 임명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 더 직접적으로는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이들이 기관장으로 임명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이러다 보니 해당 기관장 임명이 왜 일어났는지설명되지 않는다. 나아가 특정인이 해당 공공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에 도움이 되는가의 여부는 쟁점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어떤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인가가 도드러진다.

 

이를테면 현재 논란 중인 한국관광공사를 보자.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해서 확정한 예비자는 이용호 전 국민의힘 의원이다. 이이는 경향신문 기자로 시작해서 참여정부 초기 국무총리실로 자리를 옮긴 후 근무하다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 후 낙선, 이후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입당이 좌절되자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이다. 이후 지역구를 변경하여 서울 서대문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국회의원을 하던 시기 주로 게임물 관련 사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람을 둘러싼 논란은 국민의힘 출신 정치인이 정권 말기에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되려고 한다는 것이 핵심인가?

 

비슷하게 최근 인사가 단행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정영욱 대표를 보자. 공무원 임기의 상당수를 국무조정실이나 국무총리실에서 보낸 이다. 윤석열 정부 시기에 청와대로 가게 된 전직이 국무총리실 민정민원비서관이었고 청와대에서 한 일은 국민제안비서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로 온 것은 20238월이며 종무실장이 최종적인 직함이다. 예술정책은 고사하고 복지정책 일반과 관련해서도 직무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최근 문화연대 등이 낸 논평에선 이이를 윤석열 내란세력의 일부로 간주하고 유인촌 장관이 실행한 문화행정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훼손한 정치적 보복이라고 평가했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전문성이 핵심인가 아니면 윤석열 정부 말의 인사가 문제인가?

 

이런 모호함은 한국의 문화예술계 특히 행정을 핵심적으로 하는 문화예술정책 내의 고질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문화예술기관에 대한 이중적 태도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기관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고 이를 통해서 중요한 문화정책의 과제가 수행되거나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관들이 많이 생겨야 하고 적절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그렇다. 그러니까 노골적으로 말하면 특정 정파의 전리품처럼 취급되는 기관장에 대한 욕구가 해당 기관의 필요성을 부정하면서 그게 있을 필요가 있나라는 불신을 대놓고 말하는 태도가 함께한다.

 

우린 알고 있다. 문화예술공공기관의 자율성이라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 주무부서 일개 서기관의 전화 한통조차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형식적인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전문성이 낮은 기관장의 존재 자체가 기관장이 기관의 고유한 업무를 하는데 그다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결국 일을 하는 건 공공기관의 공고한 관료조직의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필요에 따라 형식적으로 거버넌스가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할지언정 실질적으로 정부가 바뀌어 공공기관이 본래의 목적을 회복하거나 혹은 독자적인 비전을 수립해서 나아가는 진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 이후 큰 틀에서는 블랙리스트 후속조치를 위한 논의가, 기관별로는 기관의 체질 개선을 위한 각종 조직진단 및 개선과제들이 다루어졌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그와 같은 기관의 개혁이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었던가. 그 의미는 문재인 정부 시기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 시기에 실질적인 효능감이 나타나야 하지 않았던가.

 

 

공공기관을 도구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위치짓기

 

기존 장르별 이사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가급적 예술현장과 직접 대면하고 이들의 이야기가 일방적인 수혜의 관점이 아니라 예술정책의 파트너 관점에서 공존하길 바랐다. 이를 위해 현장소통소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소위원회를 활성화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했었다. 단지 형식적인 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블랙리스트와 같이 위에서 오는 바람을 능동적으로 피할 수 없다면 정책의 당사자인 예술인과의 연대를 통해서 아래로부터의 버티기가 가능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역시 일방적인 복지 전달체계가 아니라 유일한 예술인의 권리 옹호기관으로서 기능을 하기 바랐고 동료 상담 기능을 확대하는 등, 예술인의 문제는 예술인이 함께 해결한다는 자율적 문제해결의 시도들이 제안되었다. 위원회는 단지 특정한 사안을 사후적으로 다루는 의견 기구가 아니라 특정한 문제를 다루면서 필요한 정책과 사업을 사전에 검토하는 논의 기구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관의 개혁 방향은 단 하나의 변화, 즉 대통령이 교체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거의 무의미하게 유실되고 만다.

 

논의를 확대하면서 공공예술기관의 존재를 물어야 한다. 더이상 한국적 상황을 핑계로 문화예술분야 공공기관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과연 현재의 공공예술기관은 특정한 예술인의 예술적 성취에 대한 공적 보상인가 아니면 구체적인 사회적 미션을 지닌 공적 기능의 수행기관인가. 그리고 그 목적에 다른 예술인은, 그리고 시민들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새롭게 들려오는 예술분야 공공기관 설치를 둘러싼 갈등은 토대가 부실한 모래성처럼 느껴진다.

 

다시 대선 기간이고 많은 사업들이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논의된다. 사업들은 사업을 작동시킬 기구를 필요로 한다. 크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같은 정부 부처의 관료체계 그리고 작게는 전문화된 각종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부의 교체에 의해 주어지는 사업을 대행하는 기구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밑바탕에는 기존에 해왔던 것은 정당하다는 현상유지의 힘이 존재하고 과거 정책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의 논리가 기능한다. 이런 태도는 갈등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세력은 이런 관료 집단의 태도를 손쉽게 이해할 만한 것으로 간주하고, 지연, 학연 등 자신들과 연계된 기관장이 등장하면 손쉽게 같은 편이라고 착각한다. 언제나 개혁은 피상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과거와 같은 기관의 개혁과 같은 시도는 중세 가톨릭의 면죄부 발행과 같은 꼴에 불과하다. 본질의 변화가 아니라 과도한 신앙고백의 형식에 의해 인정되는 면죄부 형식의 개혁은 실질적으로 문화예술 행정의 변화와 거리가 있다.

 

이런 조건에서 필요한 것은 문화예술 관료체계를 대상으로서정확하게 위치짓는 것이다. 즉 공공기관을 도구의 관점에서, 추상적인 논의를 통해서 구체적인 대상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필요한가, 충분한가, 그리고 합당한가라는 기준에 맞춰 과거의 필요들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있기 때문에 고민해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어쩌면 한국 문화예술정책이 가진 기본적 보수성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총체적 구체성이 필요한 때

 

문화헌장을 다시 쓰자는 제안은 개별적 구체성이 아니라 총체적 구체성을 먼저 고민하자는 제안과 같다. 톱니바퀴를 먼저 끼워 넣으면 전체적인 모양을 만들 수 없다. 결국 모든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하려면 모양은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그러면 모양을 먼저 잡으면 된다. 예전 톱니바퀴가 남을 수도 있고 새로운 모양의 부속이 필요할 수 있지만 그렇게 만들어야 원래 기대하는 시간의 흐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문제가 발본적이라면 현재의 우리 고민도 부문을 넘어서 좀 더 발본적인 형태로 나타나야 하지 않겠나 싶다.

 

 

 


김상철. 김상철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