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영역과 절차의 한계, 지역 편차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됨에 따라 호외를 발행합니다. 코로나19 전염병 위기 관련 이슈, 현장 소식, 위기 분석 등을 별도 간기 없이 발행합니다. 현장을 기록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 투고를 받습니다. 투고하신 원고는 [문화정책리뷰] 편집회의를 거쳐 채택될 경우, 호외 혹은 정기호로 발행합니다. - 전염병 확산 추이에 따라 공공 및 민간 극장, 미술관, 박물관 등 문화예술시설 운영이 멈춤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시설 운영과 관련한 사례, 의견 등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채택 여부는 편집회의 후 개별 연락드립니다.) 발행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문의 및 원고 보내실 곳 kdoonga@naver.com |
국내에서 코로나 19로 인한 전염병 위기경보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 발표된 지(2020.2.23) 100일 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 간 휴관상태에 접어들었다가 예약제로 조금씩 관람객을 맞이해가던 수도권 다수 문화시설은 최근 또 다시 문을 닫아야했다. 전세계가 고통받는 코로나19 판데믹은 예술계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3월과 6월 개최가 예정되어 있던 아트바젤 홍콩, 아트바젤(스위스) 등 국제 아트페어 행사는 온라인으로 대체되거나 연기되었다. 비엔날레도 대폭 축소되거나 잠정 연기되었다. 짝수 해인 올해는 베니스 건축비엔날레가 5월 23일부터 11월 29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여파로 8월 29일부터 11월 29일까지로 축소 변경되었다가 얼마 전 내년 5월 22일부터 11월 21일로 연기한다고 재공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기존 홀수해에 개최되어 오던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은 2022년 4월을 기약하게 됐다. 3월 10일 개막해 6월 8일 폐막 일정이었던 시드니 비엔날레는 전염 우려로 일찌기 3월 24일 문을 닫고, 구글기업과 손잡고 VR전시와 팟캐스트 등 온라인 비엔날레 방식으로 운영을 변경했다. 현재까지 확진자 누계 1백 7십만을 돌파하고 사망자수가 10만 여명에 이르며 코로나 최대 피해국이 된 미국도 주요 오프라인 전시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휘트니미술관(휴관 3월 12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휴관 3월 17일~), 구겐하임 미술관(휴관 3월 18일~), 뉴욕현대미술관(MoMA, 휴관 3월 30일~)이 휴관하고, 아트시장을 주무르는 첼시마켓 인근의 화랑가도 전면 문을 닫은 지 석 달이 되어간다. 루브르, 팔레 드 도쿄, 에르미타주, 대영박물관, 모리미술관도 장기간 휴관 중이다. 바티칸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6월을 맞아 이제 갓 재개관을 속개하고 있는데 향방을 지켜볼 일이다.
국내 상황을 보면 아트부산이 기존 5월에서 11월로 개최일을 연기했고,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원안인 9월 열릴 예정으로 준비중이며, 광주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제주비엔날레가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는 9월 개막 계획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국공립미술관·문화시설은 사전예약제와 좌석 간 거리두기 방침을 두고 운영 재개 중이다.
유래 없는 위기, 정책의 대응
문화체육관광부는 코로나19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한 사업과정을 아카이빙해 부처 홈페이지 게시란 '코로나19 지원 대책'을 알리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은 ‘생활 속 거리두기’와 불안심리의 영향으로 국민의 문화여가생활 및 연관 소비활동이 급감하고 관련 산업 종사자의 피해가 막중한 만큼 부처의 신속하고 현실적인 대처방안이 요구된다. 지역에서는 서울문화재단이 4월 초 ‘코로나 19 피해 긴급 예술지원 공모’에 이어 ‘예술놀이 온라인콘텐츠 제작 긴급지원 모두의 예술놀이’, ‘예술인이 재난을 대하는 가지가지 비법’, ‘예술인(문화예술 기획자) 문화기획활동 긴급지원 190시간 공모’, ‘예술교육 연구활동 긴급지원 예술교육 연구활동 계획안 공모’ 사업을 꾸려 4월 29~30일 선정 예술인 발표, 5월 중순 지원금 교부를 마쳤다. 경기문화재단도 ‘공공예술 프로젝트 '백만 원의 기적'’, ‘공연예술 프로젝트 '드라이빙 씨어터'’, ‘경기도 전업 예술인을 위한 '긴급 작품구입 및 활용'’ 등 신규 사업공고와 참여예술인/단체 모집을 선정 완료했거나 선정 중이다.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예술인 긴급재난 지원금, 온라인 문화예술활동 지원, 대관료 피해 및 소독방역물품 지원사업 등이 포함된 ‘(코로나19 피해 최소화를 위한) 인천 예술인 긴급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대구문화재단은 ‘공연업·전문예술단체 분야 특별지원’ 사업으로 피해예술단체에게 '생존자금' 100만원을 지원했고, 부산문화재단은 소규모 공연 전시장 소독을 대행 하는 ‘코로나 19 극복 관련 소규모 예술공간 방역지원’사업, 청년예술인이 어린이 학습 영상콘텐츠 제작하면 비용 60~100만원을 지원하는 ‘방구석 프로젝트’를 시행한 데 이어, 지역 예술인에게 5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코로나19 부산예술인 긴급생계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수원문화재단은 지역예술인의 중위소득 구간과 가구원수를 반영해 30~50만원을 지급하는 ‘수원예술인 긴급재난지원금’사업을 마련했다.
이 같은 사업에는 지원영역의 빈 고리와 절차적 아쉬움, 지역 간 심각한 지원 편차가 여전해 아쉬움이 들지만, 코로나19가 초래한 유례없던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부기관과 지역단체가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사업을 기획하여 공고하고 예산을 집행해가고 있는 바를 고무적으로 해석할 만하다. 이런 점은 현장예술인으로서, 직접 기획서와 신청서를 작성하고 주위의 입소문과 평가를 듣고 체감하면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던 점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문화재단은 예상을 훨씬 웃도는 지원 신청이 몰리자 선정자 발표일을 연기하고 예산을 추가 증액해 지원 규모를 늘리기도 했다. 새롭게 개설된 공모사업에 대한 지원자의 높은 규모가 예술계의 한시적 피해 현황을 뜻하고 마는 지표로 그칠 바는 아닐테니, 사업 주제의 확장성과 내용의 실험성, 소액다건 공공지원에 더불어 절차·증빙의 간소화 등에 대한 예술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요청을 잘 해석해 추후 사업설계에 적용한다면 좋을 것이다.
올해를 포함해 과거 몇 년간 현장예술인이자 때로 문화기관 행정인력으로서 경험한 예술 공모 과정을 볼 때 다음의 문제점을 상기할 수 있다. 여러 기관의 공모사업이 일시에 시작되고 마감되기 때문에 예술의 창의성을 지원한다는 예술지원이 일률적인 주기와 지루한 형식 보편성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또한 기금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예술인들의 생계주기 및 예술적 성장주기와 지원제도와 연결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방대한 지원 건수에 비해 소규모 지원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불명확한 심의 평가기준으로 예술가 지원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경우도 빈번하게 보이고 있다. 사업 신청경로인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NCAS)의 필수작성란과 필수 첨부파일 양식의 입력란이 중복되는 것처럼 불필요한 텍스트와 과도한 개인정보 요건에 응해야 하는 등 무시 못 할 피로감이 누적되는 문제들도 있다. 코로나 피해 지원처럼 긴급 수혈, 복지가 목표라면 좀 더 명확하고 간결한 지원절차를 현장은 절실히 기대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 사례를 직접 경험해 당사자로서 합당한 의견을 개진할 예술가의 발언, 자발적 논의 테이블이 지금보다 활성화되면 좋겠다. 정부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국민 지원금 신청 플랫폼이 이번에 개발·활용되었고, 6월 들어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사이트가 열렸다. 여러 시행착오의 터널을 통과한 만큼, 이러한 사례들이 e-나라 도움을 비롯한 예술계 기금 플랫폼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연대와 공감
나는 서울문화재단이 4월 30일 발표한 '예술인(문화예술기획자) 문화활동 긴급지원 190시간 공모'의 심의결과를 꼼꼼히 봤다. 1,447명이 지원하면서 기존 120명 지원계획이던 데에서 230명으로 지원 규모를 확대한 사업이다. “지원서를 읽으며 울컥하기도 했고 예술에 대한 태도나 관심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고 적은 한 심의위원의 심사평은 곱씹어 보게 되었는데, 방대한 지원서의 수많은 활자를 보는 심의과정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모종의 권력처럼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진정성 있게 임하는 모습으로 생각되어서였다. 그의 표현에서 지원자들의 기획서는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꺼내어”,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예술가의 고백”과 같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또 다른 심의위원은 ‘예술인(문화예술 기획자) 문화기획활동 긴급지원 190시간 공모’가 “많은 기획자들이 '기획자'라는 호명에 반가운 마음으로 참여해주신 것이 아닌가 싶었다”라고 하면서, “모든 분들의 기획안을 읽어보며 코로나19 시기를 버티고 있는 예술가들은 거대한 재난상황 가장 전면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이 밖에도 “이미 예술가와 기획자들은 그 너머를 고민하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했음”, “활동력을 보유한 존경받아야 할 기획자들과 새로운 감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기획자들 모두가 고려될 수 있는 행정지원력(예산)의 확충이 필요하다” 등을 말하고 있었다. 그 내용이 공감되고, 지원자에 대한 존중이 드러나 감사하게 되는 문장이었다. 심의결과에 언급된 것은 선정된 기획안의 제목일 뿐이지만 해당 활자들에게서 예술가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위기의식과 더불어 시대전환의 아이디어에 관한 공감과 연대를 느끼기도 했다. 이 사업은 담당부서인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이 추후 영상으로 대체 배포한 안내 자료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문화예술 분야 독립기획자를 대상으로 하는 첫 사업이라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획과 실행, 특히 담론을 지원한다는 취지가 그간 문화예술계에 감염처럼 퍼진 공모사업의 복제성과 회전주기로부터 우회할 다른 경로를 기대하게 한다.
100여 일의 시간 동안 멈춘 시계처럼 작동하지 않는 문화예술계.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활자와 영상에서 추적해본다. 기본소득과 그것에 내포된 권리보장의 주장과 실험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양상도 본다. 지난 5월 20일에는 예술인 고용보험 법안이 국회 통과되기도 했다. 범람했던 예술행사가 멈춘 사이, 보이지 않던 갖가지 새로움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술인 복지를 다루는 사회의식과 체계의 세심함도 조금씩.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SPACE_0)에 게시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블로그 바로가기
-------
오정은.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미술평론을 쓰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의 기관에서 일했다. 2019년 서울문화재단 네트워크 예술공간 연구프로그램에서 「생존을 증명하는 미술 -2010년대의 청년예술가, 신생공간, 굿즈의 담론에 더함-」을 썼다. 2020년 성북문화재단 성북N작가 리뷰어, 예술경영지원센터 비평가-매체 매칭 공모에 선정되어 글감을 수집 중이다. 미술과 시각문화, 정책비평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