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예술지원정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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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학이라는 방법론이, 푸코가 말한대로 권력에 대한 기원을 드러내는 과정이라면 지원정책의 근원으로서 <문화예술진흥법>(이하 법)의 탄생을 복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모든 탄생설화가 상징성을 가지듯이 이 역시 그렇다. 법제처에서 제공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이법은 1972년 8월에 제정되었다. 그럼에도 이를 1973년 체제라고 부르는 것은 법에서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게 하기 위하여’ 설립하도록 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그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법의 제정 이후 실질적으로 법이 그 쓸모를 가지게 된 시점을 의미한다.
예술지원정책은 어떻게 등장했나
그렇다면 1972년과 1973년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법이 제정된 8월 3일 박정희는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을 발표한다. 당시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의 30% 이상이 사채에서 왔는데, ‘자금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빌려준 돈을 찾아가지 못하게’ 하는 사채 동결조치가 골자였다. 이로 인해 제일제당, 제일모직, 한국비료, 금성사, 현대건설, 대한항공, 효성물산 등 파산 직전에 몰렸던 기업들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유명한 ‘유신헌법’이 발표되어, 기존의 내용적 독재국가가 형식적 독재국가로서 틀을 갖추게 되었다.
바로 이 민주주의의 전면적인 후퇴라는 시기에 법이 제정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해당 시기의 국회회의록을 보면 법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당시 국회의원들은 이 법을 모금법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박정희 정부가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편성한 예산은 1972년 기준으로 3,000만원이었는데 당시 정부 예산이 6,472억원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얼마나 미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재원을 민간 기부금을 통해서 마련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또한 이 법은 정의를 통해서 “문화예술이라 함은 문학, 미술, 음악, 연예 및 출판에 관한 사항을 말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예총의 장르단체와 일치한다는 사항이 언급되었다. 즉 민간단체인 예총이 예술인들의 친목단체라면 이를 실질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정부조직으로 진흥원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진흥원은 1973년에 들어 설치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같은 해에 제1차 문예중흥 5개년 계획이 확정되고 1974년에 1차년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총 50억 8천만 원까지 늘어난 지원사업의 골자는 국학과 전통 예능이 가장 전면에 나서서 민족문화 중흥의 기수로 등장했다. 문학의 경우 ‘새마을 문예지’를 창간하고 1억 원의 작가 기금을 설립하는 한편 문예지에 최저 고료제를 실시하도록 보조하였다. 미술은 기존 국전을 4개 전시로 분리하여 회화, 조각 외에 서예, 공예, 건축, 사진 분야 등의 비중을 늘렸다. 연극은 새마을을 소재로 한 연극을 창작하고 공연법 상 신규로 만들어지는 공연장엔 반드시 무대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영화의 경우에는 새마을 영화와 반공영화 등을 제작하고 영화진흥공사 내에 시나리오금고를 설치하여 창작지원을 강화했고 종합 촬영소를 설립해서 제작비를 낮췄다. 또한 영화인 연금제도 및 장학금 제도를 운영했다. 출판의 경우에는 금고에 1억원을 추가 적립하고 1개의 면에 1개의 서점이 만들어지도록 했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지원정책에 가장 중요한 시초는 유신정부가 놓았고 지금까지도 장르별 지원체계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 맥락과는 정반대로 미국의 국가예술위원회는 케네디 정부에서 준비되었으며 그것이 10년 가까이 진행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미국음악인연맹 간의 갈등 끝에 만들어졌다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지원정책은 매우 고유한 권력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만들어진 ‘한국문화예술진흥법’은 여전히 지원정책의 가장 일반적인 법률로서 기능하고 있기도 하다.
뼈대 없는 예술지원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지방정부들이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면서 각종 대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그 재원이 많은 경우 상반기에 지출하고자 했던 사업비의 불용액을 재편성한 것들이다. 거기엔 당연히 축제 등 상반기에 예정되어 있는 문화예술 행사들의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어떤 재단은 어렵게 불용될 예산을 구해내어 예술인에 대한 융자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상반기에 불용된 문화예술 예산을 위기 극복을 위한 ‘여유 재원’으로 변경해 사용했다.
그 사이 예술정책에 가려져 있던 예술인 정책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린 많은 경우 예술지원정책과 예술인정책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해외의 어떤 사례에서도 예술지원정책이 예술인정책과 분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사 사업상 분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예술인정책이 앞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예술창작이라는 것은, 추상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물질적인 과정, 즉 인간의 고유한 신진대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술인의 인간으로서 생존이 예술창작의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하지만 한국의 지원정책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예술인이 없는 지원정책이라는 속성, 그러니까 앞서 살펴본 대로 1973년에 만들어진 진흥법의 구조에서 ‘창작을 지원한다’와 ‘예술인에 대한 직접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이중적인 구조로 나타난다. 즉 지속적으로 아사직전의 상태로 예술인들을 밀어 넣으면서도 고고한 예술창작의 비용만을 선택적으로 지원해주는 정책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잔인하게 나타나는지를 우리는 분명히 확인하고 있다.
크게 2가지 측면에서 코로나19라는 엑스레이를 통해 드러난 ‘뼈대가 없는 지원정책’의 상황을 진단해보자. 첫 번째는 어떤 경쟁률에 대한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 하는 지원정책 중에서 예술인에 대한 지원정책으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예술인복지재단이 시행하고 있는 ‘창작준비금’과 ‘예술인생활자금 융자’가 거의 유이하다. 구체적인 창작 등의 활동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정확하게는 조건삼지 않는) 정책인데, 그도 그럴 것이 생활자금 융자나 말 그대로 대출이니까 상환능력만 되면 빌려주는 사업의 성격이니 그렇고 창작준비금은 애초부터 ‘긴급지원금’ 형태로 설계된 사업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에 기존 자금 중에서 30억원이 배정되었던 ‘코로나19 긴급생활자금 융자’ 사업은 신청액만 43억원을 넘기고 종료되었다. 여기에 추가로 40억원이 추가되어 4월에 집행했지만 신청액은 더 늘어났다. 비슷하게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진행되는 창작준비금 사업의 경우에는 작년에 4,970명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1만 4,803명이 몰렸다. 작년에 비해 사업규모가 커졌지만 오히려 그를 압도할 정도의 신청자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6천 명정도가 선정된다고 하는데 그의 배가 넘는 예술인들이 지원정책으로부터 배제될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예술인생활안정자금의 총규모나 창작준비금의 총규모가 늘어나지 못했다. 현재 상황은 기존의 재원을 당겨서 사용하는 것으로, 사실상 더 빠르게 소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지금껏 발표한 다른 정책은 어떤가. 기업에 대한 융자 등을 제외하고 개개인에 대한 지원정책은 많은 경우 고용보험을 통해서 충당하고 있다. 그래서 예술인은 해당 사항이 없다. 예술인고용보험 논의는 이미 2018년에 종료되어 정부의 발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을 허송세월한 덕에 2020년 현재, 고용보험 체계에 토대를 둔 정부의 각종 정책에 사각지대로 몰렸다. 그러니까 지원정책이 창작지원이라는 앙상한 형태로 유지되어 오고, 이와 같은 지원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예술정책에 대한 관점과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라 믿어왔던 1973년 체제의 가장 불쾌한 결말을, 우리는 코로나19 위기라는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미 한국의 수많은 예술인들은 사실상 겸업 생활인으로서 예술을 하고 있다. 그나마 직업으로 예술을 보장해주는 가장 앙상한 제도로서 활동증명제도와 이를 통한 예술지원정책이 얼마나 쉽게 무능력해질 수 있는지를 목도하는 지금, 우리는 직업으로서의 예술인이 빠진 예술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있다고 믿는 그것을 ‘지원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까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 보니 그것을 지원정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그것은 지금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위기를 통해서 실제로 체감하지 못한 어떤 위기를 확인한 것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예술인의 시민성이 그 단초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여기서 시민은 누군가 ‘당신은 이러저러 하다’라고 주어진 명칭이 아니라 스스로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자임하는 정체성으로서 ‘시민’을 뜻한다. 시민으로서 예술인은 당연히 예술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그리고 당연히 그 권리를 위해 정부에 의무를 요구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가장 빠르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요구를 관철시킨 이들은 기업인들이다. 지난 2월 1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대통령과 6대 기업 총수가 자리를 함께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기업인들이 제안한 16개 사항이 모두 받아들여졌는데, 여기엔 수출기업의 공항 창고 이용료를 면제해달라는 것에서부터 저녁 회식을 근무시간으로 포함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민주공화국으로서 한국에서 가장 권리 요구가 분명하고 효과적으로 정부에 의무를 부과하는 시민집단은 기업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좋은 정부는 ‘알아서 챙겨주는 정부’라는 믿음이다. 전통적으로 알아서 챙겨주는 정부는 독재정권이거나 혹은 왕정과 같은 비민주적 정체에 어울린다. 여전히 지원정책을 전통적인 패트론 구조의 하위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원정책 자체를 ‘시민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것이 우리의 로두스를 이야기할 수 있는 전제가 아닐까 제안한다.
[보론] 양해에 기댄 것은 정책이 아니다
‘예술지원정책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 아닌가’라는 주장이 좀 모진 해석 같지만 현재의 지원정책이 구체적인 의무로서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땐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현행 <문화예술진흥법> 제3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사항이다.
제3조(시책과 권장) |
그리고 이런 의무는 너무나 손쉽게 기각되어 왔는데, 2008년에 제기되어 2009년에 판결이 내려진 어떤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해설은 어떤 안타까움도 없이 분명하다.
가. 이 사건 조례안이 법령에 위반되는지에 관하여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조례로써 폐지하고자 하는 ‘서울특별시 중구 구립 관악단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는 상위법인 문화예술진흥법 제3조 제1항의 규정에 근거하여 원고가 그 제정을 요구함에 따라 피고가 의결하였던 것인데, 피고가 부당한 이유를 들어 위 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상위법령을 위반한 것으로서 무효라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가 있는 것이고( 헌법 제117조 참조), 한편 문화예술진흥법은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고 하고 그 제3조 제1항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예술 진흥에 관한 시책(施策)을 강구하고, 국민의 문화예술 활동을 권장·보호·육성하며, 이에 필요한 재원을 적극 마련하여야 한다.”고 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문화예술의 계승·발전이나 보호·육성에 관한 시책과 권장사항 등을 규율하고 있으나,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에 구체적으로 관악단의 설립을 강제하는 등의 특정한 의무를 부과하거나 위임하고 있지는 아니하므로, 이 사건 조례안이 원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문화예술진흥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 이 사건 조례안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인지에 관하여 원고는, 구립 관악단은 원고가 전국에서 최초로 창단하였고, 또한 그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의 제정으로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예술단체보다 더욱 활발하게 공연활동을 해 왔음에도 그러한 관악단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근거가 되는 조례를 폐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 사건 조례안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구체적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을 정하는 위임명령의 제정 등과는 달리, 지방의회가 조례안에 대한 의결이나 재의결을 함에 있어서는 광범위한 형성의 자유가 부여되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앞서 본 바와 같이 구립 관악단에 대한 막대한 예산투입에 비해 주민들의 체감효과가 적다는 등의 이유로 이 사건 조례안을 재의결한 이 사건에 있어, 위 조례안이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원고의 이 부분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
현재의 지원정책은 오로지 행정기관의 양해에 놓여 있다. 할 마음이 들어서야 하는 것은 의무라고 보기 힘들다. 우리는 이미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거쳐오지 않았나. 여전히 수많은 지원정책이 예술인들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경우 행정기관의 선택과 양해에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원정책의 성격은 가장 우호적인 환경에서의 진단이 아니라 가장 부정적인 환경에서의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 개관 준비를 위한 정책워킹그룹 ‘콜렉티브 충정로_청년예술청’에서 준비한 연속 워크숍 중 5월 8일에 진행한 <상상포럼 : N년 뒤 문화예술지원정책이 전부 사라진다면?>에서 발표한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라이브 스트리밍 다시보기 콜렉티브 충정로_청년예술청 Instagram Youtube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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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위원, 제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