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코로나19의 빛과 그림자
-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됨에 따라 호외를 발행합니다. - 투고를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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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더 이상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탄식한다. 이 암울하고 묵시적인 선언에 우리는 무기력하고 절망한다. 많은 미술인들이 궁금해한다. 전통적인 미술관과 갤러리가 코로나19가 야기한 팬데믹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비대면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회의적이다. 예술창작과 감상, 작가와 작품과 관객의 관계는 고도로 직접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는 것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작품에 손을 대지 마시오.’ ‘만지지 마시오.’ 같은 관습이 여전히 작동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본래 미술 감상이란 눈과 귀를 사용해 작품과 작가로부터 거리를 두고 공감하는 문화라는 면이 있다.
국내의 많은 전시들은 공공예산으로 준비되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고 보수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작가들은 전통적인 창작의 관습을 벗어나 새로운 형식의 전시 형식을 고민하느라 바쁘기도 하다. 사실 전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바빠졌다. 미술계 현장에서 전시분야 관계자들 사이의 의제는 건강과 관련된 것이며 미술과 전시는 후순위다. 기획하거나 관여했던 전시들도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고 현대미술의 큰 특징이자 흐름이었던 다양한 형태의 직접적인 국제교류와 협업과 연대가 셧다운 되었다.. 다들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더 무겁고 깊은 인내를 갖자고 서로를 격려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온라인으로 서비스되는 엄청난 퀄리티의 데이터로 구성된 세계 주요 미술관의 미술품을 보아왔다. 절망적인 봉쇄와 비대면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현실에서 인터넷을 이용한 예술감상은 불가피한 선택이며 현재까지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판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각종 SNS에서 온라인으로 전시와 공연을 관람하고 경험하는 기획으로 전시분야는 분주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정보나 데이터를 보는 것이지, 그것이 미술작품의 감상이나 예술적 경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더욱이 그와 같은 수준의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예술가들이 볼 때는 엄청난 자본과 시간에 비해 비효율적이며 본질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비대면 미술 감상을 위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 그럴듯한 소신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코로나19에게) 쳐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소수의 전염병 전문가들과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시나리오 작가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오늘과 같은 현실을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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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일이 없어 생계가 어려워진 노동자부터 자영업자들, 공장과 기업들의 줄도산이라는 위기에 맞서 정부는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재난기금을 전국민에게 일괄 지급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거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본주의와 시장주의에 밀려 일상이 곧 재정적 재난상태였다. 굳이 판데믹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러니 예술가들에게는 판데믹의 극복 유무와는 무관하게 최저 생계와 지속적인 창작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소득이 주어져야 한다. 핀란드가 2년간 국민들에게 실행했던 기본소득실험으로 우리가 알 수 있던 결과는 일부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기복 소득을 일괄적으로 받은 핀란드 국민들의 노동에 대한 의욕은 감소되지는 않았으며 개인의 행복감과 안정감과 함께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데 그동안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주요 국가들이 모두 시행하는 흐름 소위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국민에게 일괄적으로 기본 생계가 가능한 기본 소득을 지급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생산 노동과는 다른 차원의 노동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에게는 더 긍정적인 기대효과를 보여줄 거라 생각한다. 당장 기초 생활을 위해 창작이 아닌 아르바이트에 종사하는 시간이 기형적으로 큰 대부분의 예술가들에게는 정부가 지원하는 기본소득은 단비와 같다. 기본소득제는 일종의 자본주의 시대의 난민인 예술가들이 경제적 곤란과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잠시라도 여유를 갖고 창작 노동에 전념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게다가 국가 기금을 받기 위해 예술가들이 엄청난 심력과 수많은 시간을 작품 창작이 아닌 기금신청서 작성과 결과 보고에 보냈던 것을 생각해보라. 기본소득제가 예술가들의 재능이 성취해낼 미학적 성과와 그것을 시민들이 즐길 풍요로운 향유와 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회적 이득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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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통해 수많은 혁명과 테러와 전쟁으로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꿈을 피우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21세기는 반복적인 판데믹으로 인해 많은 원로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미쳐 마무리하지 못한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상이 그리고 예술이 어떻게 변할 지 어떤 예측도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일상과 삶 모든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성사회와 질서는 새롭게 해체되고 재편될 것이고 그로 인해 세계사의 거대한 변화와 변혁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그 과정에 우리는 기존의 수많은 갈등과 반목을 뒤로하고 생명존중과 인류연대라는 오래된 꿈을 향해 일보를 내디뎠다고 위무하고 있다.
판데믹은 우리에게 죽음과 공포, 불안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죽은 사람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손을 더 많이 씻고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을 덜 만나고 병원이나 요양원을 방문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거리를 두자 독감과 수두와 같은 각종 전염성 질병이 90% 이상 줄어들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잠시 활동을 멈추자 공기와 물이 맑아졌고 동물들이 돌아왔다. 북극의 오존층이 눈에 띄게 회복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공짜라는 말처럼 우리가 크게 인식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채워왔던 소소한 일상, 가족과 친구와의 평범한 만남과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되었다. 뉴스를 장식하던 정치인들의 정쟁도 북한의 핵문제도 주요 의제에서 사라졌다.
언젠가 한 정치인이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면 힘을 합쳐 이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해 우리는 협력하며 눈에 보이지는 않는 바이러스의 침공에 대응해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륜에 기반해 지역과 사회, 국가를 초월한 연대를 향하게 되었다.
수많은 난관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전진하려 한다. 그것이 우리가 얻은 교훈이고 자산이다. 큰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 코로나19의 빛과 그림자가 점점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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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암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