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탐색의 시기, 성과지표도 재구성해야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됨에 따라 호외를 발행합니다. 코로나19 전염병 위기 관련 이슈, 현장 소식, 위기 분석 등을 별도 간기 없이 발행합니다. 현장을 기록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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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만나는 것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되면서 공공에서부터 심사든 프로그램 운영이든, 시설이든 미루거나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예술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취약한 생계구조 등을 감안해 긴급 대응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주된 관점은 코로나가 지나가면 어떻게 해서든 일이 돌아갈 것이라는 낙관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바뀌고 있는 일상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게다가 팬데믹 상황 에서 코로나의 위협도 당분간 여전할 테고, 그보다는 장기화된 비일상적인 시간이 바꾸어놓을 생계구조의 변화는 아직 제대로 상상도 못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그리고 운이 좋아 이제 곧 모든 위협들이 사라지고, 미뤄진 한 두달을 조금 바쁘게 다소간 경쟁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위협들이 사라지는’ 시기가 그렇게 바로 눈 앞에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혹은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위협이 지속될 수도 있다. 또는 코로나로 인한 위협과 파생된 사회구조의 변화가 거세게 시작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간이다. 그래서 촘촘한 질문이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지원사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성과지표도 촘촘한 질문의 하나가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미뤄진 사업들에는 어떤 성과지표가 필요할까?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사회구조변화가 거세다면? 그동안 암묵적으로 통용되어 온 문화영역 성과지표로 새로운 상황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을까. 한편 위기에서 문화예술 기관과 민간단체들의 관계도 변화하고 있다. 그간 민간단체는 사업을 수행하고 문화예술 기관들은 성과지표를 통해 사업을 평가하는 입장이었다면,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중간지원 조직이 가치와 태도, 효용을 평가 받는 입장이 되고 있다. 어떤 것들이 평가의 중요한 척도가 될까. 아마도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데 필요한 유연함, 대응 속도, 현장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노력 등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간의 성과지표 체계를 냉철하게 돌아보고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한 미션이 될 것이다.
관행적 성과지표의 빈틈, 성과가 성과 아니게 되는 순간
2019년 지역 일간지와 문화특집기사를 함께 하면서 관심 있던 문학 파트를 점검했다. 자료를 요청해도 받지를 못해서 공모선정결과 공고문을 토대로 작가 이름과 제목을 각각, 포털 두 곳에서 검색해 선정된 해에 나온 책의 유무를 확인하면서 우회적으로 데이터를 구축했다. 명목상 책을 내라고 작가들을 지원해줬던 창작지원금이 실제 어떻게 성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시작한 과정은 단순 반복의 육체적 중노동이었다. 130여 건 중에서 40여 건이 포털에서 검색 안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보다 많은 숫자가 형식적인 출판에 가까워 흔히 사람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서도 구매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300만원의 지원금을 130여 명에게 지원해서 책이 나왔다”라고 단순하고 무미건조하지만 명확하게 요약되는 것처럼 보인 그간의 성과는 나온 책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냐는 물음 앞에서 쉽사리 허물어졌다. 포털에서의 검색과 인터넷서점에서의 유통 여부가 작품의 질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독자에게 읽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느냐는 문학의 소통과 순환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몇 명에게 얼마를 지급해서, 몇 권의 책이 나왔다’는 수치의 집계 외에 어떠한 가치판단도 존재하지 않는 이 성과지표의 빈 틈 속에서 나르시즘과 매너리즘에 빠진 (문화행정과 예술가들의) 행위의 반복이 싹트고 있었다.
비단 기초예술 지원뿐 아니라 문화예술교육 등 대부분 문화영역에서 성과는 횟수, 인원수, 보도횟수, MOU 등 협력 체결 건수 등 양적인 것으로 측정해왔다. 문화다양성이나 지역문화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도시나 농촌이나, 장애인이나 이주민 등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에 관계없이 이 양적 성과지표는 무자비하게 적용되어 온 측면이 있다. 최소한의 수월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양적 지표에 매달린 사이, 문화예술의 내밀함이나 요즘 강조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 등을 포함한 질적인 부분의 성과를 정리할 지표를 충분히 개발해내지 못했다. 현장에서 새로운 대상 탐색이나 방법적 실험이 줄어들거나, 성과에 대한 형식을 맞추느라 자기 착취 과잉투여로 이어지거나,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은 그 반대급부였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만남 자체가 거의 성립하지 않는 요즘이나, 하더라도 조심해야 하는 당분간의 상황에서나, 혹은 그보다 더 암담한 현실들이 장기적으로 펼쳐진다면 문화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때의 문화예술의 성과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연말이 되어 전년 대비 줄어든 수치를 보면서 총체적으로 망했지만 시기가 시기였으니 하며 위안 삼고 넘어가면 될까. 아니면 화상이나 영상을 통해 참여한 사람이나 조회/공유 수를 통해서라도 양적인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할까. 아니면 이 위기와 함께 진행되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이미 먹통이 된, 그전에도 빈틈이 많던 성과지표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새로운 지표를 고안해보는 건 어떨까. 새로운 만남의 형식을 탐색하고 궁리할 수밖에 없고 좋기도 한 이 시기에 적합하기도 하고 꼭 필요한 일이다.
코로나 시기가 온라인플랫폼으로의 이동을 가속화 하는 것과 더불어 코로나의 파급력이 길고 클수록 다양한 상처들이 수면 위에 드러나기 시작하면 내밀한 소통과 위로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동안 숫자에 집착하느라 놓쳤던 질적인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와 담론을 이런 시기에도 마련하지 못한다면 위기가 마련해준 성장의 계기를 걷어차는 꼴이다. 유연함, 신속함, 현장과의 소통은 위기 속에서 중간지원조직들이 받게 되는 평가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지표 개발을 위해 담보되어야 할 문화행정의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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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명
생각하는 바다 대표. 사단법인 부산청년들 이사장. 공복방지위원회 과일장사. 생활기획공간 통과 금정예술공연지원센터 문화공간 운영. 잡지 제작. 구의원 출마 낙선. 플랜비문화예술 협동조합에서 문화마을 사업 총괄 등을 통과하면서 지역에서 문화하는 일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경험해왔다. 예술가와 지역운동가 사이쯤에 있는 문화기획자로 내 삶의 변화와 함께 하는 ‘자기 생애주기형 문화기획’을 지향하고 있다. 만나고, 궁리하고, 기록하는 일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