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피해증명 급급한 예술협단체, 청원을 넘어 ‘사회적 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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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리를 이루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념적으로는 개개인의 자유에 기반하고 있지만 결국은 개인의 공통성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 간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이런 말을 줄줄이 하는 이유는, 코로나 위기 이후 SNS 상에 예술인 개개인의 다양한 입장과 상황이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도대체 기존의 예술인단체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화예술정책의 사실상 기본법 역할을 하고 있는 <문화예술진흥법> 제3조(시책과 권장)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예술 진흥에 관한 시책을 마련할 때 ‘반드시’ 사전에 문화예술 기관 및 단체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개개 예술인들은 알기 어렵지만 수많은 문화예술 관련 정책은 이 조항에 근거하여 예술인 개개인의 의사를 집합적으로 대리하는 (혹은 한다 믿어지는) 단체들에 의해 조율된다.
이에 비춰보면, 현재 코로나 위기 시기에 정부나 지방정부 등에서 내놓고 있는 각종 대책들 중, 예술인에 대한 정책은 과연 어떤 의견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걸까? 당연히 지금 단계에서 누가 그 논의를 대리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주요한 예술 협단체들이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어떤 입장들을 공개적으로 내놓았는지를 짚어 보면 간접적이나마 진단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협단체들의 피해조사, 그런데 왜 민원성 질문까지?
최근 한국연극협회가 공지를 통해서 ‘코로나19에 따른 연극계 피해 상황 접수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지난 2월 17일부터 3월 31일까지 진행된 1차 조사의 결과로 총 157건의 공연이 접수되었다. 조사 내용에서 흥미로운 것은 현재의 위기가 상황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중단시키고 있다는 것인데, 공연진행 여부를 묻는 항목에 절반 이상이 사실상 ‘취소’되었다고 밝힌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뮤지컬협회(이하 뮤지컬협회) 역시 3월 30일자 공지를 통해서 ‘피해사례 신청’을 받고 있는 중이다. 뮤지컬협회는 공지를 통해서 “현재 공연을 하고 있는 공연관계자분들을 비롯하여 코로나로 인해 공연을 취소하거나 잠정중단하는 공연팀까지 다양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전체적으로 취합해 추후에 있을 정부 대응에 힘을 싣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한국미술협회는 그나마의 피해신고 현황도 없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마스크 및 손소독제 기부를 진행했다. 취지는 한국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 및 경상북도지회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각종 전시의 취소에 따른 예술인들에 대한 사항이 없어 의아하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재 예술계의 주요한 협단체들이 소속되어 있는 예술인들을 대표해서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즉,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별 협단체를 포괄하는 단체는 어떤 입장을 내놓았을까. 대표적인 예술인 단체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는 지난 3월 11일 상대적으로 가장 빠르게 ‘예술계 피해 및 대응방안 수립을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3월 18일자로 ‘코로나19 사태가 예술계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이를 공개했다. 해당 조사는 예총에 소속되어 있는 회원협회 10곳과 연합회/지회 156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인데 해외 지회 3곳을 제외하고 163개 회원단체로부터 회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취소되거나 연기된 행사의 규모는 52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예총 회원사들의 직접적인 피해규모인 75억에 7배가 넘는 규모다. 개별 회원사가 추정한 규모이기 때문에 해당 규모는 과소추정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책으로는 예술전문 거점 매장을 운영하고 작품임대를 위한 예술작품은행 설립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19 위기의 시기에 부합하는 대책이라 보기 힘들다. 당장 예술전문 거점 매장을 서울역이나 공항 등에 설치를 한다고 하지만, 이미 서울역이나 공항 자체에 이용자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예술인들이 해당 정책의 수혜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하 민예총)은 운영하는 까페 나 페이스북 어디에도 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한 사항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사무총장의 개인 SNS를 통해서 지난 3월 5일에 발표된 민예총 성명서 ‘코로나19 추경에서 소외된, 예술가와 예술 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한다’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성명을 통해서 “예상되는 공연, 전시, 행사, 예술 교육 등의 취소에 따른 ‘비상시 예술가와 예술 활동 지원 메뉴얼’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위하여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계의 피해를 전수조사 하는 한편 “사회적 위기환경에서의 예술가, 예술 활동 지원 메뉴얼을 예술계와 함께 논의하여 만들 것을 요구” 하였다. 아쉬운 것은 그 메뉴얼에 어떤 내용이 주되게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해외의 사례처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공연 상영에 따른 공연비용 지급과 같은 제안 등이라도 명시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특별조치를 통해서 예술활동증명이 된 예술인들을 고용보험에 가입된 것으로 간주하여 고용보험 기금 상의 지원에 접근할 수 있는 한시적 조치 등이 고민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것이다.
특히 예총이 이번 조사를 하면서 제시한 설문문항 중 1/3이 해당 단체의 민원성 요구내용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5번 문항에 ‘법적 기반을 갖춘 종합예술단체의 필요성’을 물었고, 6번에는 구체적으로 국회에 발의된 박인숙 의원의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해당 개정안은 ‘한국문화예술단체연합회’를 법정단체로 지정해 운영과 사업에 대한 국가 지원을 명시한 내용이다. 사실상 관변 문화단체의 공식화에 가깝다. 이것을 코로나19 위기의 피해를 묻는 조사에 끼워 넣는 것이 적절한가.
문체부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나
적어도 현재 민주주의 제도에서 보자면 대표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행 법률로서 예술정책 수립에 있어서 단체의 의견을 반드시 묻도록 되어 있지만,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누구와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또한 앞서 살펴본대로 예술인 개개인을 대표한다고 하는 기존의 협단체들이 현장의 어려움에 기반한 필요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각종 지원정책에서 예술인이 배제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지금 예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아프니 봐주세요’라고 청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코로나19 위기의 당사자이니 우리에게 보장된 것을 달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더구나 누구에게도 대표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각각이 자신들의 필요들을 구체적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들어줄지 안들어줄지도 모를 청원이나 읍소가 아니라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사회적 권리에 대한 요구다. 코로나19 위기는 왜 예술인 개개인의 필요가 제대로 들리지 않고 또한 정책으로서 나오지 않는지 진단할 수 있는 계기임과 동시에, 이런 구조들로 부터 적극적으로 벗어나 새로운 체계를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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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위원, 제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