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됨에 따라 호외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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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이 깼다. 난 조수석에 있었고 운전자석은 보이지 않은 채로 차는 범퍼카처럼 앞으로 뒤로 곤두박칠 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얼마 전에 넣었던 문자 이력서였다. 외국계회사에, 오전 방역청소 치고는 괜찮은 페이였다. 사진과 이름과 거주지와 나이를 문자로 보냈고 답변은 없었다. 온라인 검색을 했을 때 담당자의 이름은 인사담당이었다.잠에 다시 들 수 없었다.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일 일은 없었고 인사담당자는 이름이 없었다. 내 사진은 어디에?
서울문화재단의 공고는 순간 매력적이어서 마음이 동했다. 하지만 나에게 늘, 미리, 언제라도 준비할 수 있는 공연은 없었다.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 뭘 더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재난을 맞이하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아이디어일까? 한시적 지원도 구체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한시적 아이디어는 언제, 어디서라도 창작할 수 있는 걸까? 재난을 맞이하는 지구는, 인류는 그동안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왜,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을까?
나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지구의 환경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일주일 내내 사용하는 정도가 지구에 거주하는 인류로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쓰레기가 쌓이는 것을 하루 더 연장하는 정도랄까.
재단의 지원금 공고는, 모든 공연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온라인 중계가 좋을지, 그것의 효용가치가 무엇인지를 논하기 이전에, 기술적으로 준비하지 못했던 상황을 정리할 수도 없는 사실을 마주하면서, 이것이 이 시대의 예술의 가치라는 것을 외부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는, 오늘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재난 시기의 예술가의 아이디어는 마치 예술가의 상상력이 현실과 무관하게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보따리를 풀어놔야 하는 사기나 재롱처럼 느껴진다.
연극의 해는 애초부터 없었다. 검열 이후 서먹하고 땐땐한 연극계와 화해의 손길로 만나보려던 문체부의 제스처였고, 그 손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에 대해 연극계는 혼란스럽다. 생계비도 어렵고, 연극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현실도 어렵다. 어렵다는 말로 쉽게 넘겨버릴 수 없는 일들은 너무나 많다. 어렵다고 말하는 사이에 놓여진 차이는 너무나 크다. 정작 문체부는 “빨리 정리해, 너희끼리. 왜 너희의 현장을 너희끼리 정리하지 못하니?"
왜 준비하지 못했을까? 왜 현장은 그동안의 문제를, 동시대의 고민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했을까? 왜 행정은 재난 시기의 예술에 대한 고민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을까? 안했을까? 재난 시기의 계획에 예술은 애초부터 없는걸까? 재난을, 이런 정도의 재난은 처음이어서 미리 예측할 수 없었을까? 아니면 예술행정의 역할이란 애초에 한시적 제스처인가?
가장 나쁜 것은 존재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존재에게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그것만큼 존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것이 이후의 선택을 종용하게 만들 때 착취는 발생한다. 무엇이 무엇을 착취하고 있는지를, 누군가는 그 속에 종속될 수밖에 없음을 새삼 발견하는 요즘이다.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4월 10일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필자 페이스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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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작가. 연출가.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