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 서울혁신파크의 기억들 ②] 서울혁신파크와 함께 한 비건페스티벌의 시작(강소양)

CP_NET 2024. 11. 17. 01:19

 

편집자 주: 이번 기획은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일대에서 시도되었던 서울혁신파크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기록하고자 하는 취지로 준비되었습니다. 서울혁신파크는 한국의 대도시에서 좀처럼 시도되기 힘들었던 도심 공간 안에서의 공유 개념에 대한 실험, 혁신에 대한 시도들, 문화적 행위들이 이루어지던 장소이자 프로젝트입니다. 이 실험은 때로는 도시문화정책의 선구적 지점을 보여주기도 했고 때로는 시행정 관행의 한계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해 이 공간에 관계 맺었던 이들의 다양한 관점, 가감 없고 자유로운 기억과 목소리를 수집하여 남기고 전하고자 합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같았던 야외공간의 기억 (정혜선)

 

비건페스티벌은 20165월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저와 비건페스티벌의 대표 기획자인 캘리는 함께 소소한 비건 프리마켓을 운영하고, 학내에서 퀴어영화제 등을 기획한 경험이 있어서 재미있는 비건 행사를 기획해 보자”라는” 개인적인 호기심과 열정만 가득했습니다. 당시 비건카페 달냥이라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저희 수익의 전부였기 때문에 거의 자금 없이 행사를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테이블과 천막을 무료로 빌려줄 수 있다는 서울혁신파크의 외부행사 담당자의 이야기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환호했던 기억도 납니다.

 

서울혁신파크의 계약직 신분으로 근무하던 콩님이라는 문화기획자 한 분이 계셨는데, 혁신파크 외부공간을 잘 활용할 행사들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유명한 문화행사들을 유치하기에는 혁신파크 내부의 역량이나 여건이 미처 조성되어 있지는 못한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저희는 콩님을 소개받고 몇 차례 미팅을 한 이후에 무료지원이 가능한 물품, 테이블, 천막, 파라솔 등과 외부공간 무료대여를 약속받고 친환경 비건을 주제로 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콩님은 비건페스티벌 1회 행사를 마치자마자 서울혁신파크를 퇴사하셨습니다. 당시 서울혁신파크의 내부 인력들도 성장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혁신파크 직원들, 입주단체들이 수도 없이 또 새로 입주하는 모습들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성인 혼자서 들기는 무거운 테이블 40여 개와 햇빛을 가려줄 천막과 파라솔 등을 옮길 친구들과 지인들을 총동원해 새벽까지 서울혁신파크 외부공간을 뛰어다니던 기억, 이른 잠을 깬 모기들과 씨름하면서 대낮에도 빛이 안 들어오는 창고를 들락날락거리면서 짐을 옮기던 기억, 파는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일을 하는 동안 내내 물을 직접 떠서 나르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비건 페스티벌의 첫 결과는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은 성과였습니다. 변변치 않은 SNS 홍보가 전부였던 저희 행사에 8000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별로 많지도 않은 물건과 음식을 다 맛보고, 잔디밭에서 뒹굴며 음악을 듣고 놀다가 헤어졌습니다. 행사장에는 자기 식기를 다 가지고 와서 설거지를 해서 재사용하고, 텀블러에 물을 담아 마시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광경이었습니다. 첫 비건페스티벌은 무거운 테이블과 천막들을 몇 시간 동안 옮기고 쓰레기를 하나하나 직접 수거하는 일로 끝을 맺었지만, 친절한 마음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도와주셨던 소중한 친구들과 지인들과 함께 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협업과 협력

 

첫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에 서울혁신파크와 비건페스티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초기 서울혁신파크에서 비건페스티벌이 차지한 자리도 컸고, 비건페스티벌이 이만큼 지속될 수 있도록 동력을 준 것도 서울혁신파크였습니다.

 

비건페스티벌을 1년에 두 번씩 개최하고 비건카페 달냥을 운영한 지3년 정도 지난 시점에 저희는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렸던 국제행사인 팹랩 아시아 네트워크 컨퍼런스5(FAN5:Fab Lab Asia Network Conference 5)’*에 비건 다과 케이터링을 제공하면서 협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비건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 외에 비건카페 달냥과 서울혁신파크의 협업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마침 상상청의 입주단체를 모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비건 친환경 서비스 제공을 주제로 입주공모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저희는 비건페스티벌을 직접 기획해 왔고,, 비건 친환경 생활방식의 미래를 모색해 왔다는 점을 혁신의 가능성으로 인정받아 서울혁신파크의 입주단체가 되었습니다.(* 201956일부터 11일까지 서울혁신파크에서 개최되었던 FAN5(팹랩 아시아 네트워크 컨퍼런스5 Fab Lab Asia Network Conference 5)‘We Make Change(우리는 변화를 만든다)’라는 주제로 27개국 60여 개 도시에서 300여 명이 참석하게 되어 2018년과 비교해 4배 커진 규모로 성대하게 개최된 국제행사다. 아시아 제작자(메이커)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들이 해온 성과를 공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는 의미가 있는 컨퍼런스라고 할 수 있다.)

 

상상청 1층에 입주한 뒤에는 서울혁신파크와 협업하여 마이파크 텔레비전이라는 파크 내부행사와 파크 입주단체들의 커뮤니티 파티, 매거진 쓸에서 기획하는 “쓸어담장” 등에 참석하며 협업하였습니다. 비건페스티벌이 소유한 표지판과 재활용 식기 등을 매거진 쓸 등의 입주단체에 무료 대여해 준다거나,, 타래 유니버스라는 팀과 협업한 랜선캠핑, 은평 혁신스쿨 등의 프로젝트, 공정무역 사회적 기업인 어스맨과 협업한 온라인 요리강좌, 파크 내 맛동과 협업한 일일요리강좌 등도 수차례 진행했습니다. 여기에 다 쓰지 못할 만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회적 기업가와 혁신 활동가들이 수많은 협업 진행을 문의해 왔고,, 달냥에서 협업을 위한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도와주었던 것은 파크 내부의 활동가인 정혜선()님과 김아롱 담당자님의 순수한 열정과 배려였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부침을 겪으면서 파크가 문을 닫을 때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끌어주었던 것은 서울혁신파크를 사랑하고, 사회 혁신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가득했던 파크의 입주단체들과 사회적 기업들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서울혁신파크라는 공간 안에서 만났던 많은 사회적 기업가들과 기획자들, 비영리단체들과 혁신가들이 공유하고 나누는 아이디어들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한 예로 비영리 사회단체들과 사회적 기업가들의 컴퓨터 사용이나 네트워킹을 무료로 돕고 싶어 창업한 ‘비영리IT지원센터’‘’의 대표님과 나눴던 공유와 지원, 무료나눔에 대한 이상적인 꿈이나 토종 작물에 대한 애정을 창업과 연결하여 넘치는 아이디어를 뽐내시던 커먼그린 대표님과 몇 시간이고 한국의 혁신적인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현실화되지 못한 꿈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꿈들은 저희 모두의 마음속에 혁신가의 꿈을 지속할 동력이 되어 남았습니다.

 

저희가 비건페스티벌을 개최하고 비건카페 달냥을 운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차 비건기업이 되어 사회에 도움을 주고, 환경문제도 해결하고, 사람들도 동물들도 모두 행복하게 해주자는 목표를 가지게 된 것에는 이 소중한 혁신가들의 찰나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이 큰 힘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만나기 어렵다고들 하는) 혁신의 꿈을 꾸는 사람들을, 저희는 서울혁신파크에서 잔뜩 만났고, 그 공기를 함께 호흡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많은 실패와 소중한 성공의 경험을 했습니다. 서울혁신파크가 있어서, 그 공간 안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협업과 협력이 있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그 동력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저희의 비전을 잘 유지하는 것이 지금 저희의 과업으로 남았습니다.

 

 

비건페스티벌의 성장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친환경 비건생활방식을 제안하는 축제인 비건 페스티벌은 올해 9, 한양대 서울캠퍼스로 장소를 옮겨 개최되었습니다. 서울혁신파크에서 연을 맺은 빅이슈 코리아 홈리스월드컵과 콜라보했습니다.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리던 그간의 비건페스티벌이 시즌1이었다면, 이번 한양대에서 열린 12회 행사는 비건페스티벌의 시즌2를 여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기획단의 마음가짐도 많이 성장했고, 시야도 그만큼 확장됐기 때문입니다. 비건페스티벌 기획단은 늘 글로벌 진출을 꿈꿔왔는데, 이번 행사가 끝나고 일본과 대만의 비건페스티벌 기획자들과 한자리에 만나 다음의 협업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울혁신파크라는 혁신의 꿈이 자라던 공간의 동력을 이어받은 비건페스티벌이 이제 그곳을 벗어나 새로운 협업과 성장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비건 아시아를 꿈꾸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친화적인 비건생활방식이 알려질 수 있도록 돕는 비건페스티벌 시즌 2를 기대해주세요.

 

그리고 서울혁신파크에서 혁신의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겪었던 수많은 시도와 실패의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 다음 세대를 살아갈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시간적 여유와 책임감을 동반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주어지고, 더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태어난 그대로의 생명을 존중받으면서 살 수 있는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진 세상을 만나게 되길 빕니다.

 

 

 


강소양(쏘이). 비건페스티벌 대표 기획자. 비건카페 달냥 대표셰프. 비건생활연구도() 공동대표. 올해로 30년 차, (비건채식 16년차) 채식인. 지구를 위해, 동물을 위해, 채식한다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채식을 하고 있는 비건 채식인. 비건생활방식이 인간 본연의 선한 심성을 일깨우고, 영혼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비건페스티벌을 기획했고, 비건인으로 살면서 얻게 된 확신을 자연스럽게 세상에 풀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인간이기 전에, 동물의 한 종류로서, 모든 동물과 식물, 숲과 공기, 지구와 우주를 고려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명을 구상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 슬픔과 외로움을 다른 존재에 가한 폭력에 기인하므로, 비건생활방식을 실천한다면, 더 행복해지고, 안정적인 마음을 얻게 되며, 세상과 더 잘 연결될 것입니다. 비건을 실천해서 당신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