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지역문화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 ⑥] 지역에 뿌리를 두고, 음악하기 (배미나)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라는 기획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새정부에 대한 제안이라기보다는 새정부 구성을 계기로 현단계 정책과제를 살피자는 기획이었습니다. 이 기획에는 100인의 예술가, 기획자, 정책연구자 등이 참여하여 현장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과제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이 기획에 대한 분석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단과 제안에는 구체적 현장으로서의 ‘지역’에 대한 여러 관점이 드러납니다. (관련기사:[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⑤] 분석-정책 관심도와 흐름, [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⑦] 분석-정책에 대한 관심과 흐름2)
‘지역문화의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은 지역예술과 지역문화의 현장에서 정책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현장에서는 어떠한 변화와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책의 작동에서 토대로서의 현장에 주목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지원사업의 안이냐 밖이냐를 떠나 스스로 자신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현장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의 재구성을 전하고자 합니다.
① 척박하기 때문에 연대로 성장해온 대구 독립영화 씬 _ 권현준
② 창작열, 동료의식, 지원기관의 노력_ 이승우
③ 지역문화예술정책은 지역에서! _ 강구민
“대구의 자랑,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이 문장은 내가 하는 밴드의 짧은 소개글이다. 2018년 정규 1집을 발매한 후 올해 초 다녀온 북미투어를 포함 총 10번의 해외투어를 했고, 10번의 해외음악페스티벌에 참여했고 국내 유명 음악페스티벌에도 다수 출연한 경험이 있으니 “대구의 자랑”이라고 스스럼없이 우리를 소개하는 것이 무색하지 않다. 아마도 이런 수식어를 스스로 붙일 수 있는 것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의 장점일 것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밴드 중 어느 누구도 쉽게 “서울의 자랑”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나 그리고 밴드를 함께 결성한 친구들에게 처음부터 특정한 꿈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주인공의 멋지고 무모한 도전을 동경한 적은 있지만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2010년에 개봉한 인디음악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미국시장 진출과정을 담고 있다.) 다만 밴드 결성 이후 활동 초반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모든 부분에 꽤나 능동적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앨범을 만들 돈이 없으면 각종 경연대회에 참여해서 제작비를 모으려고 노력했고, 우리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울산, 부산, 대구, 광주, 청주, 제주 등 각 지역에서 활동에는 음악가에게 연락해서 우리를 위해 공연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성사된 공연에서는 대부분 공연을 하는 사람의 수보다 공연을 보러오는 사람의 수가 더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그저 즐거웠다.
대구음악창작소와 잔다리페스타
밴드 활동이 좀 더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에는 몇가지 계기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대구음악창작소의 설립이다. 대구음악창작소의 앨범제작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8곡이 수록된 <Keep Drinking>이라는 앨범을 발매하면서 밴드 활동을 나의 하나의 직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디밴드가 정규앨범을 제작하기에 필요한 비용은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1천만 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하다. 대구음악창작소의 앨범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그만큼의 값어치를 세금으로 지원받았다는 것이기에 허투루 할 수 없다는 일종의 책임감이 생기면서 직업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두 번째’는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 기획자의 인디음악 씬으로의 유입이었다. 그들은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공연을 만들고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모이게 만들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소셜미디어에 우리의 공연영상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해외의 관객들에게 소개되었고 추후에 런던의 인디음악 레이블과 계약을 성사되는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는 서울 홍대 지역에서 열리는 잔다리페스타 참여를 꼽을 수 있겠다. 잔다리페스타는 서울 도심이라 할 홍대 일대에서 쇼케이스 형식으로 공연이 진행되는 음악 페스티벌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음악관계자들이 초청되어 그들을 직접 만나 홍보할 기회가 제공되고 해외의 팀들도 초청되어 국적을 넘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페스티벌이다. 잔다리페스타에 참여하면서 ‘인디음악 비지니스’의 개념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고 어떠한 태도로 공연에 임하며 밴드활동을 이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 페스티벌’(이하 SXSW페스티벌) 참여 초청 메일을 받았다. SXSW페스티벌은 미국 텍사스주의 오스틴이라는 도시에서 매년 3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디음악 페스티벌이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에서 주인공들이 참여했던 바로 그 페스티벌이다. 해외진출을 목표로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매사에 능동적으로 움직여온 결과였다. 2019년 3월 SXSW페스티벌 참여를 시작으로 해외활동이 본격화되었고 영국, 네덜란드, 미국, 일본 등을 포함 총 10회의 해외투어를 다녀왔다. 올 가을에는 다시 한번 3주간의 북미투어를 떠날 예정이다.
해외 관객들에게 ‘대구’를 들려주는 이유
해외활동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각인시켜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대구’이다. 우리는 아시아의 작은나라 한국에서, 그리고 수도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왔다는 것을 끊임없이 각인시켜 주고자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의 고향 대구에 대한 애증의 마음을 담은 노래 <Big 9 Let’s Go>를 발매하기도 했다. 노래에서는 대명동, 동성로, 수성못 등의 장소를 소개한다.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을 소개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온 음악가라는 것은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는 마케팅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잃고 싶지 않은 정체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러한 정체성을 가지려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든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우리를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대구에서 하는 공연을 찾아와 준다면, 비단 우리 공연이 아니라도 그저 호기심으로나마 대구를 찾아와 준다면, ‘어떻게든’ 음악활동을 병행하며 삶을 영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바램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며, 진정한 대구의 자랑이 되고 싶다는 희망 또한 품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나의 가장 큰 고민은 해외와 국내 활동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해외에서의 성과가 국내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음악 활동만으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른다. 국내에는 우리를 소개할 수 있는 매체도 많지 않고, 영미권 국가처럼 클럽을 찾아와 인디음악을 즐기는 관객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국내에도 매년 다수의 음악페스티벌이 열리지만, 초청되는 밴드는 일부에 한정되어 있어 지역의 인디밴드가 주목받을 기회는 제한적이다. 이 문제는 비단 지역 밴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밴드라고 해서 더 나은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무한도전’에 출연하면 먹고살 수 있다는 농담 섞인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조차 사라졌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디 밴드는 과연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영국과 미국에서 투어를 하며 가장 놀라운 점은 관객의 연령층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족 단위의 관객부터 10대 청소년, 그리고 은퇴 후 노년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공연장을 찾는다. 그들에게는 라이브 음악을 즐기는 문화가 전 연령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짧은 근로 시간 덕분에 우리나라보다 문화를 즐길 시간적 여유가 많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어 다른 것을 낮추어 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취향이 문화를 소비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뿐이다. 이런 태도 속에서 ‘오아시스’나 ‘너바나’처럼 동네 밴드였던 그룹이 전 세계적인 록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그러한 경험이 지역 인디 음악 시장을 더욱 굳건히 유지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이러한 문화는 단기간의 노력이나 단발적인 사업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 대중 매체는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소개할 수 있어야 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를 형성해 가야 한다. 또한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지속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이 오랜 시간 꾸준히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지역마다 독특한 색깔을 가진 인디음악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비록 음악활동만으로 생계를 온전히 유지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다른 직업을 병행하며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한 시간이 쌓이면, 대구에서도 전국적으로,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스타는 또 다른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지역에 더 많은 예술가가 머물며 활동할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살아남을 것이니
최근 데이식스, 실리카겔 등의 몇몇의 밴드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온라인에서는 ‘밴드붐’이 왔다, 아니다 공방이 펼쳐지기도 한다. 나에게 묻는다면 ‘밴드붐’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하겠다. 음원차트를 휩쓸고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는 특정 몇몇 밴드에만 한정된 현상으로 보인다. ‘밴드붐’이 왔다고 말하기에는 라이브 공연장을 찾는 관객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용어의 출현은 아주 반갑다. 말이 씨가 되어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K-POP보다 밴드음악을 더 많이 듣고 동네 곳곳의 라이브 공연장을 찾아와 주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방식대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국내, 국외 활동의 균형점에 대해 고민한다 한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계속해나갈 뿐이다. 공연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으고 음악을 연주하는 수밖에 없다.
밴드의 탄생부터 현재의 고민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했지만, 얼마나 우리가 힘든지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참 무색한 요즘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면 된다라는 말을 하기엔 기만적이다. 다만, 나는 나의 방식대로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떻게든 살아남으시라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존재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나는 당신에게 즐거운 공연을 선사할 것이다. 그날까지 당신의 무운을 빈다.
배미나.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펑크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의 베이시스트이자 보컬로 활동 중이다. 서울 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주목하는 오디오비주얼페스티벌인 빅데이사우스를 기획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구 외의 국내외 뮤지션들을 대구로 초청하는 공연을 기획을 종종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