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지의 꽃길’부터 샘터까지- 2022 프로젝트 영도 “영도 공공미술 전수조사”(서평주)
프로젝트 영도 2022, 영도 공공미술 전수조사는 영도에 존재하고 있는 공공미술이라 불리는 것들을 모두 조사하고 현재의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해 보자라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김상아, 김선영, 김효영, 진세영, 서평주가 참여했다. 공공미술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라는 문장으로 나왔던 프로젝트 영도 2021과 이어지는 작업이었다. 전수조사의 내용 중 몇몇 사례를 소개한다.
흰여울 문화마을
흰여울 문화마을은 가장 복잡한 사례들이 한데 모여 있다.
1) 벽화와 우물
벽화와 우물은 2019년 7월 1일 구청에 게시된 “흰여울마을 두레박샘터 관광객 소음으로 인한 주민 고통호소”라는 민원으로부터 시작한다. 먼저 흰여울 마을의 두레박샘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샘터의 우물은 오랜 과거부터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던 식수원이자 빨래터였고, 소통 공간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또 샘터 앞 작은 공터에서 마을 공동체가 진행하는 국밥데이, 국수데이가 열리거나 김장을 담그기도 하고, 마을과 관련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시위장소가 되기도 했다.
민원은 2018년 5월 중 이틀간 진행된 원도심 골목축제 당시 그려진 벽화를 지워달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축제 이후 샘터가 명소화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다 보니 사람이 살고 있는 집 벽의 바로 너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밤늦게 까지 소음이 발생하고, 쓰레기 관리 등의 문제가 있었고, 심지어 샘터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퇴거하고 빈집으로 남게 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해당 민원에는 빠져있지만 잘못 복원된 우물까지 여러 문제가 겹치게 되어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행정기관에서는 “통장, 공동체 대표, 집주인 등의 의견을 반영해서 시행했고, 조성 후 1년 만에 국민의 혈세(2000만원)로 만든 작품을 다시 원상 복구하기에는 지나친 예산 낭비이다”는 답변을 했고, 전수조사가 마무리되던 2022년 말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2) 도시재생 + 미술 = 카페
흰여울 문화마을은 그간 지적 불부합이라는 이유로 재개발 사업에서 제외된 곳이다. 생활환경의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여러 도시재생 사업들이 시행된다. 약 6년간 8개의 사업, 37억 정도가 투입되었다. 급경사를 정비하거나, 거점센터를 조성하고, 테마형 담장, 골목길 정비, 공폐가 정비의 환경 개선공사에 벽화나 공공미술이 포함되어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원주민이 아니라 관광객과 카페 주인이었고, 카페 주인은 대부분 외지인이었으며, 때를 같이해 오른 집값은 더더욱 원주민을 떠나게 했다. 마을 안에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그 빈집으로 다시 카페가 들어오고, 카페는 경쟁적으로 좋은 뷰를 확보하기 위해 통창을 만들고, 그 창으로 바다와 마을 주민들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환경 개선공사 이후 행정은 손을 놓아버리고 그 틈을 타 조형물과 벽화가 그려진 마을의 공유지는 카페의 테라스가 되고, 공동화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이 와중에 2020년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 동네 미술>은 흰여울 마을의 경관을 아주 심각하게 망쳐버린다. 사업을 따낸 카페 주인 겸 작가는 마을 공동체와의 별다른 상의 없이, 상인회에 가입된 사람들, 주로 큰길을 끼고 카페나 편의점, 음식점 같은 장사를 하는 외지인들이 포함된 상인회 사람들이 소유한 건물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고, 눈뜨고 보기 힘든 조악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3) 금성교회, 마을 공동체
흰여울 문화마을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이어지는 경관을 볼 때 유달리 튀고 어색한 건물이 있는데, 바로 금성교회다. 금성교회는 1953년 피난민 중 이북계열 사람들이 개척한 교회로 영도에서도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17년까지 나란히 선 2층 건물 2개를 사용하던 금성교회는 근처의 건물들을 차근차근 매입해 지상 7층의 교회 신축을 신청했고, 행정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에 마을 공동체는 역사적 가치가 중요한 문화마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경관 보존과 주민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의 결정에 민원서를 제출하고 시위를 시작한다.
마을의 우물터와 금성교회 앞을 중심으로 무책임한 행정에 대해, 흰여울 문화마을의 관광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분노를 함께 표출한다. 시위가 거세지자 영도구와 금성교회는 갑자기, 교회 내 일부 부지를 문화예술공간으로 20년간 제공한다는 협약을 체결한다. 결국 교회는 완공되었고, 금성주차장에서 흰여울마을 주차장으로 이름까지 바꾸며 비싼 주차요금을 받고 있다. 흰여울 문화마을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교회의 십자가가 되었다.
4) 벽화를 손쉽게 지우는 방법
앞서 언급한 두레박샘터의 벽화를 지우지 못하는 사례와 달리 아주 쉽게 벽화를 지워버린 예가 있다. '아트부산 2019 특별전 프로젝트'의 일환(총 3개 중 1개)으로 20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진행된 벽화가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욕설 낙서가 생겼고, 그것을 지우는 과정에서 벽화가 일부 훼손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영도구 관계자는 "벽화를 그린 작가들이 그림이 훼손되고 낡아도 작품의 일부라고 인정해 수정 작업은 계획하지 않고 있다"며 "주민협의체 등과 논의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고, 해당 벽화는 금세 지워졌다. 앞선 두레박샘터 벽화의 민원을 볼 때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말인 즉 두레박샘터 벽화도 낙서만 하면 애써 민원을 넣지 않아도, 힘든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지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전수조사 팀은 두레박샘터 벽화를 지울 수 있는 조건을 따져본 적이 있는데, 당시 협의를 진행한 축제조직위원회, 통장, 공동체 대표, 집주인, 구청, 작가 및 관계자의 협의가 필요하고, 벽화 앞에서 하루에 몇 명이 사진을 찍는지 소음은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꾸준히 기록해서 제시해야 한다. 설령 이런 기록들을 제시한다고 한들, 행정에서 이전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사실상 지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주민들의 인터뷰에서 공공미술은 공공성보다는 불투명하고 책임지지 않는 것으로 귀결된다. 샘터의 사례에서 보듯 공공미술에서 차분한 협의 같은 것은 작동하지 않는다. 행정은 사건이 발생해야 움직이며,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주민들 입장에서 공공미술은 전혀 공공적이지 않고 피해야 할 메뚜기 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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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커뮤니티 문화광장 조성공사를 하는데 주민과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경우
2020년 1월 13일 영도구청 홈페이지에는 “흰여울문화마을 주민도 모르는 공사를....” 이라는 민원이 올라온다.
화단 조성 안 하기로 하였는데..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무시한 채 다시 설치를 하시는 의도는 뭐죠? 국민들의 세금으로 조성한 화단 또다시 업어버리고.. 다른 걸 한다는 건 혈세 낭비가 아닌가요? 의자를 설치하면 밤에 와서 떠들고 술 마시고 하는데.. 그런건 전혀 관심이 없나요? 그리고 바로 집 앞 화단은 화장실 창문도 바로 있는데... 사생활 침해는 누가 책임 지나요? 본인들이 이곳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이런 식으로 하시면 좋은가요? 지금도? 가끔 드론이 촬영한답시고 남에 집 거실 창문이며 방 앞에까지 오고 해서 확 뽀사버리고 싶고 짜증 나 죽겠는데....
해당 민원은 주민 협의 부재, 사업 변경으로 인한 세금 낭비, 관광객에 의한 사생활 침해 등 흰여울 문화마을의 모든 문제가 담겨 있다. 이에 반해 행정에서 적시한 흰여울 문화마을 커뮤니터 문화광장 조성공사의 목적은 아주 문제적인데 지역을 상징 디자인화하여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흰여울 문화마을을 절영 티타운으로 만들고자 하는 행정의 목적과 부합하며 원주민들은 시야에 없고, 오로지 관광객을 위한 관광의 대상으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금의 흰여울 문화마을은 이러한 문제를 안고 혼란 속에 빠져있다. 마을 주민은 마을의 경관을 무시하고 지어진 교회 옆 계단에서 바다라는 이유에서 온통 파랗게 그려진 벽화를 배경으로 웨딩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피해서 본인의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특히나 주민들에게 주말의 풍경은 국내외 관광객과 방문 차량, 캐리어 바퀴 끄는 소리와 사진 찍는 소리, 관광객이 배출하는 쓰레기, 거기에 난잡한 공공미술이 한데 뒤섞여 마치 지옥과도 같다.
관광객은 큰 창이 난 절경의 카페에서 바다도 구경하고 주민들의 빨래 너는 모습도 구경하고, 작은 창문으로 집안도 구경한다. 카페가 생기기 전 주민들은 옥상에서 바다를 감상했다지만, 지금은 집에 난 작은 창문마저 커튼으로 가려야 한다. 행정은 행동 조심 따위의 안내판을 만들어서 붙이면 그만이다. 주민들에게 카페와 관광객, 공공미술과 행정은 모두 동일범이다.
절영마
전수조사를 하면서 섬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뜬금없이 말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만큼 말과 영도는 관계가 깊은데, 영도의 원래 이름은 절영도다. 끊을 절(絶) 그림자ᅠ영(影)으로ᅠ그림자가 끊어질 정도로 빨리 달리는 말을 키우는ᅠ섬이란 뜻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영도는 절영마를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하고, 섬의 곳곳에 번쩍이는 말들을 세우기 시작한다.
2011년 절영마 시계탑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영도 곳곳에 절영마 관련 조형물, 벽화가 생겨난다. 주로 도로 주변, 다리, 공원 등에 설치되었으며, 48m 높이의 주차타워에 절영마가 그려지거나, 건축물 미술품에서 절영마의 머리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기업후원으로 3억 원의 절영마 상이 제작되고, 꽤나 유명한 작가도 절영마를 모티브로 조형물을 제작한다.
절영마 브랜딩의 정점은 2017년 ~ 2020년 경 <순직선원 위령탑>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승마장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지만 결국 또 다른 관광개발 사업에 의해 무산되었다. 다른 곳으로 옮겨질 뻔 했던 <순직선원 위령탑>은 1979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선원 위령시설이자 동시에 꽤나 기념비적 공공미술 작품이다. 박정희의 글씨가 새겨졌고, 이은상이 시를 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전히 승마장도, 위령탑도 그 자리 그대로 있다.
2020년을 전후로 더 이상 절영마는 영도를 대표하지 못한다. 2010년 초반 극소수의 커피숍이 있던 영도에는 2017년경부터 2020년 사이에 흰여울 문화마을을 필두로 150여 개의 커피숍이 생겨났고, 현재 200~250개의 커피숍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제는 절영마의 그림자의 섬이 아니라 커피 보물섬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매년 커피 페스티발이 개최되고 있고, 커피 특화거리가 조성될 예정이며, 커피 조형물이 절영마의 자리를 대체할 예정이다.
무엇을 기념하는 돌덩이들, <의지의 꽃길>과 <추모공원>
<의지의 꽃길>과 <추모공원>은 전수조사를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다. 기념비가 왜 공공미술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영도의 어떠한 것보다 섬의 지역사, 한국 사회와 닿아 있고, 끊임없이 의미를 새롭게 획득하고 있기에 충분히 미술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공공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의지의 꽃길은 1974년 7월 3일 조성되었으며, 영도구 동삼동 176-2번지 부근으로 현재는 영도구청이 조성하고 관리하는 미니공원으로 단장되어 있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의지의 꽃길>이라는 이름인데, 1973년 태종대 종합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부산 시내에서 태종대 입구까지의 7.7km 구간의 도로 공사(태종로)를 영도 구민의 ‘무임 노동’으로 조성한 것에 대한 기념비이다.
연인원 14만 명 ~ 17만 명이 동원되었고, 당시 금액으로 8700만 원~1억 5천8백만 원(시비 지원 1천 8백만 원) 상당의 사업비는 모두 주민들이 부담하였다. (자료에 따라 참여인원, 사업비가 다르게 기재되어 있음) 또한 영도다리에서 태종로 진입로까지 장장 4km의 간선도로변에 가로 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714개의 화단을 조성했고, 여대생들의 꽃 팔기 운동에 호응한 가로변 주민들이 손수 꽃을 사서 심었던 사업이다.
당시 사업에 참여한 구민들의 이야기로는 희생정신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중노동과 어려움이 있었고, 1974년 사업이 완료된 후 박정희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해 구민의 노고를 치하하고, 이 길을 ‘의지의 꽃길’로 명명하고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치하가 아니라 당시 영도 구민의 엄청난 희생이 담긴 기념비인 것이다.
이 기념비는 현재 사실상 방치된 채 영도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대형 카페의 입구의 이정표처럼 서있다. 기념비의 아랫단에는 어울리지 않게 시멘트로 처리되어 있으며, 기념비의 뒤에는 기념비에 대한 설명이 담긴 돌이 제자리가 아닌 듯 박혀있다. 기념비 바로 옆으로는 재떨이가 있고, 카페의 흡연 장소로 쓰이고 있다. 기념비가 있는 장소의 풍광이 이것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추모공원은 2005년 10월 <박창수·김주익·곽재규 열사 합동 추모비>와 함께 건립되었다. 비석의 위치는 영도 한진중공업 주차장 옆이자 한진중공업 정문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비석에 새겨진 추모공원의 글자는 신영복이 썼다.
이 추모공원은 2010년대에 새롭게 의미를 획득한다. 2010년 12월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희망퇴직으로 정규 생산직의 36%에 달하는 400명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김진숙은 2011년 1월 김주익이 올랐던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고, 그해 6월 이를 지지하기 위한 16대의 희망버스가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당시 309일 만에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김진숙 위원은 1986년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지 37년, 2009년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심의 위원회가 1986년의 해고에 대해 부당해고로 인정하고 복직을 권고한지 14년 만인 2022년 2월 25일 복직(복직 후 당일 퇴직)을 할 수 있었다.
추모공원의 주변 풍경 역시 이를 통해 달라지게 된다. 추모공원 비석은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한진 중공업 정문을 마주하고 있는데, 도시 미관을 고려해 부산시가 5억 원을 들여 조성했다는 2.3m 높이의 테마 담장 위에 2012년 콘크리트 구조물이 덧대어졌다. 희망버스를 타고 온 시민들이 담장을 넘은 뒤로, 회사 쪽이 보안상의 이유 등을 들어 6m로 담을 높인 것이다.
또한 정문 오른편에 서 있던 타워크레인 85호는 파업이 끝나기 무섭게 철거됐다.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 동안 버티다 목숨을 끊었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을 버티다 생환한 크레인은 노조 투쟁의 상징 그 자체다.
사실 아주 작아서 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추모공원은 맞은편의 한진중공업의 크레인들을 마주하며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의미를 갱신해 나간다.. 전수조사 당시, 추모공원의 작은 화단과 골목은 지나가는 행인들의 쉼터로 많이 이용되고 있었고, 그 후로도 가끔 추모공원을 지날 때 면, 여전히 몇몇의 사람들이 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공공미술이 있다면
꽤 오랜만에 전수조사 결과를 다시 들여다봤다. 전수조사를 진행하면서, 모든 것이 뒤엉켜서 마음대로 꼬여버린 영도를 마주했던 당시의 기억이 났다. 분명 벽화를 조사하러 갔는데, 고통 받는 마을 주민을 만나게 되고, 공공미술 혹은 도시재생 또는 무슨 이름이든 형편없이 망쳐버린 흰여울 마을의 경관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뚝 솟은 교회를 목격하고, 마을공동체와 상인회의 갈등, 관광객들에게 지쳐버린 마을 주민, 언젠가 터질 대박을 노리며 17채의 주택을 소유한 외지인과 그것을 방관하는 행정을 보게 되었다.
또 영도의 초입부터 섬 곳곳에 위치한 절영마들을 보았고, 오래전부터 ‘그림자 섬’이라는 명칭을 만들어준 절영마를 단번에 넘어선 커피 산업, 즉 영도를 부르는 새로운 명칭인 ‘커피 보물섬’을 말할 법한 초대형 카페들도 보게 되었다. 또한 반드시 기념해야 할 역사를 갖고 있지만 사실상 방치된 기념비, 단지 좋은 뷰를 가진 카페의 이정표가 되어버린 것들과 지나가는 행인, 노동자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는 추모공원을 보았다.
지금도 전수조사 결과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당시 공공미술 전수조사를 마치고 나서 적는 보고서에, 다음에 누군가 영도 공공미술을 하게 된다면, 어떤 거창한 것들 말고 흰여울 마을의 두레박 샘터의 벽화를 지우는 것부터 시작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누군가를 그렇게나 고통을 주는 공공미술이 있다면, 그것부터 해결하는 것이 가장 먼저일 것이고, 그것이 우발적인 낙서나 우연적인 상황보다는 아주 지루하겠지만 민주적인 방식으로 공공의 이름에 맞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 영도 공공미술 전수조사와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영도 공공미술 전수조사」 보고서 웹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이 글은 2024노원달빛산책심포지엄 “숨 쉬는 공공미술”의 발표문을 토대로 했다.
서평주. 공간 힘 대표.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2010년을 전후로 미술 활동을 시작했으며, 영상, 설치 등 여러 매체를 다루고 있다. 미술로 사회 문제를 다루고자하며 최근에는 지역과 밀접한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