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용호성’이라는 기표와 한국문화정책의 어떤 지점(김상철)
기표와 기의는 일대 일의 대응관계를 이룬다. 이것이 일반적인 의사소통의 전제다. 하지만 때때로 기표와 기의 사이에 거리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벌어진 것이라면 그 요인을 따지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반면 억지로 이를 떼어놓을 필요가 있기도 하다. 이 글에선 용호성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을 자연인으로서 그와 떼어놓을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무엇보다 사태로부터 한참 멀어져 버린 때 늦은 글의 쓸모도 있겠다. (이 글에서 용호성은 인격체보다 하나의 기표로 다룬다. 이런 이질감을 드러내기 위해 별도의 호칭 없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관료조직의 수동성, 관료조직의 능동성
지난 7월 9일 새로운 제22대 국회의 첫 번째 회의에 용호성은 제1차관으로 출석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제1차 전체 회의에 출석한 용호성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출신의 원주갑 박정하 국회의원의 ‘공직생활 중 가장 꽃피워야 할 시기에 특검과 검찰 수사, 감사원 조사를 받느라 6~7년의 세월을 허비했’다는 위로를 받았다. 용호성은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 검찰 조사에서 각각 무혐의와 입건유예를 받았고 이는 용호성의 ‘억울함’으로 완성되었다.
문화부 관료로서 용호성은 2022년 연말 뉴욕한국문화원장 공모에 신청하고 12월 최종합격했다. 하지만 23년 1월 뉴욕한국문화연원은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 된다. 부처 차원에선 최종적으로 용호성이 낙점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최종적인 임명처인 청와대에서는 연속해서 민간출신을 앉혀 왔던 자리에 안 그래도 블랙리스트 논란이 있는 관료 출신을 앉히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그 덕분에 기업 출신을 갑작스럽게 기용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관료조직의 힘과 청와대의 힘 사이 수싸움에서 청와대가 이긴 셈이다. 용호성은 2022년 7월에 국정농단 재판에 출석해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을 2015년 즈음 뉴욕한국문화원장으로 가려고 했지만 문화부 내부에서 개인 사정으로 지원을 철회했다는 문서를 작성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증언했다.
그에 앞서 2022년 4월 5일 유진룡, 박양우 전 문화부 장관과 오지철, 나종민, 송수근, 김정배 등 전 차관들이 용호성에 대한 징계절차를 중단해 달라는 청원을 제기한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모두 관료 출신의 고위 공직자들이다. 유진룡은 스스로 박근혜 정부 하에서 블랙리스트를 직접 만류했고 청와대의 인사 청탁에 반발하기도 했다며 관료들의 표상으로 언급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임기 이후에 실제로 블랙리스트가 작동되었고 여기서 실무자 역할을 한 용호성을 지지하는 역설을 보인다. 이것은 관료조직의 보호를 위해서만 합리성이 동원된다는 의미에서 ‘한국적 관료제의 한계’라고 부름직한 사태다.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용호성은 2015년에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으로 옮겨간다. 형식으로 보면 청와대에 있다 한직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해 12월에 진행한 서울여자대학교 특강에는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연속으로 나선다. 안무가 정영두는 2015년 10월 30일 국립국악원 앞에서 ‘국립국악원 예술검열 사태를 해명해 달라’며’며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이 사건은 국립국악원이 금요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예정되어 있던 공연팀에 협업자인 연출가 박근형을 배제하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이후 금요공감에 예정되어있던 아티스트들은 공연을 거부한다. 2015년 9월 국정감사에서 작가배제가 폭로되고 11월에는 한국공연예술센터 팝업씨어터 공연방해 사건에 대한 릴레이 시위가 벌어지고 있던 때였다. 그해 11월 28일 페스티벌 도쿄에서 한국의 검열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고, 12월 1일 용호성은 서울여대에서 ‘국제 매너를 갖춘 대학 지성인’이라는 강연을 하고 있었다.
용호성은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에서 주영국한국문화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사이 박근혜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정부가 들어섰다. 주영국한국문화원장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용호성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이 된다. 이후 해외문화홍보원장과 국제문화홍보정잭실장을 지낸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하에서 문화관료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책인 차관에 오른 것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용호성이라는 기표는, 블랙리스트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버텨내는 문화부 관료제의 탄력성을 증명한다. 관료조직의 수동성은 ‘자의적이지 않은 행위’의 알리바이가 되고 관료조직의 능동성은 ‘예술정책 전문가’라는 자기 증명으로 나타난다. 용호성이라는 관료의 역량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문화관료로서의 성취 덕분인가 아니면 국가고시를 통해서 공무원이 되었다는 한 번의 자격 조건 때문인가. 2007년 경희대학교 공연예술학과에서 받은 「문화예술교육정책에서 효과적인 거버넌스 모형에 대한 연구」라는 박사학위는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의 주요한 이해당사자에 대한 조사를 심층면접과 AHP 분석으로 살펴본 것으로 절반 이상이 설문조사 분석에 달하는 140쪽 내외의 논문이다.
용호성의 관료로서 탁월함은 그가 공직자로서 보인 대외적인 공적보다는 오히려 문화관료 집단에게 내부적으로 보여주는 성취에 있다. 실제로 관료 집단에서 선호하는 ‘선배들에 대한 인식’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관료로서의 이상향과는 거리감이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관료집단은 고시제도를 통해서 선별된 이들인데 단 한번의 자격시험을 통해서 높은 자율성과 검증되지 않는 전문성을 부여받는다. 한국 관료는 법제도에 의해 부여된 권한을 자신들의 능력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크고 그렇기 때문에 순환보직이라는 구조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전문가로 간주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이는 정책적으로 권한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고위 공직자 자체가 주요한 정책 추진의 내부적 문턱이 되는 이유다. 실제로 문화예술 정책 현장에서는 담당자가 이해를 하지 못해서 정책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정책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회자된다. 특히 문화예술과 정책의 효과가 주요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나타나는 영역의 경우에는 오랜 관료 경험은 곧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힘을 ‘설득력’으로 착각할 개연성이 크다.
블랙리스트 이후 주요한 정무직 공직자들, 즉 정치인들에 대한 처벌은 아주 불만족스러울 지언정 반걸음의 변화가 있었다 하겠지만 오히려 이들의 손발이 된 관료조직은 건재했다. 용호성은 문화부가 거느리고 있는 외청을 떠돌면서 공무원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했다. 이런 행보는 현재 문화부 내의 관료들에게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것보다는 끝끝내 버텨서 명예회복을 해내는 선배 공무원으로서의 귀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게 용호성은 문화관료 체계가 가지고 있는 자율성이 사실은 내부로 향하는 조직탄력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해 문재인 정부의 헛발질 끝에 윤석열 정부에 이르러 문화부 관료체제의 타락을 증명하는 기표가 되었다.
우리 편을 들어 줄 용호성을 기대하는가
관료조직은 역사적 체제에서 언제나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더구나 공적인 일을 하는데 반드시 관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도 아니다. 1989년 제임스 윌슨은 관료제에 대한 글을 통해서 관료제와 관료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공무를 수행하는 시스템으로서 관료제가 반드시 상식적인 고용인으로서 관료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현상유지자였던 윌슨은 80년부터 미국 정부에서 진행된 탈관료화=작은정부의 흐름에서 관료제를 악마화하는 경향성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찾아낸 방식이 정부가 시민에게 찾아가는 경로가 아니라 정부 안으로 시민들을 들어오도록 하는 경로다. 우리는 거버넌스라는 말을 이미 식상한 말로 취급하고 있지만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의 부재는 역으로 관료제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블랙리스트를 마주했던 그 상황으로 원점을 재조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문화부의 폐지와 국가예술위원회로의 전환이라는 이상이 전제했던 문제설정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 나아가 우리 내면에 결국 ‘우리 편을 들어 줄 용호성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진지한 자성이 필요하다. 벽은 누군가에게 걸음을 막는 방해물이지만 누군가에겐 기댈 수 있는 지지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벽을 허물자하는 건 단순히 무너뜨리자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자는 의미가 된다. 2024년 지금, 용호성은 한국의 문화정책을 극적으로 표상하는 기표가 되었고 우리가 마주하는 한국의 문화예술정책 관료제라는 장벽 자체가 되었다.
김상철.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