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42] 지금도 사건은 여전히 생생한데
얼마 전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국립국악원이 자주 가는 극장은 아니지만 낯선 곳도 아닌데, 풍류사랑방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극장에 들어서서야 알았습니다. 국립국악원이 자주 가는 극장은 아니지만 다니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이 극장을 이제야 와보았다는 것이 낯설었습니다. 풍류사랑방은 2013년 4월에 개관했습니다.
풍류사랑방 개관 당시 소개를 보면 “옛 선비들이 음악을 즐기던 ‘풍류방’을 현대적인 전통 공연장으로 탄생시킨 곳” “전통 한옥 형태에 전자 음향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우리 소리를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으며, 신발을 벗고 들어가 마루 위 방석 위에 앉아 관람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극장에 와 본 것은 처음이지만 이 극장에 대한 이러한 소개글은 익숙합니다. 풍류를 즐기던 사랑방을 재현한 극장이라든가 전자 음향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든가 등등의 소개 글에서 “한옥에서 산조듣기”의 풍경이 떠올랐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극장에 들어서니 일반적인 소극장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객석에 앉아서는 잘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원형의 계단형 객석이 고정되어 있어서‘전통한옥 형태’는 찾아볼 수 없었고 무대와 객석, 퍼포머와 관객, 관객과 관객의 친밀함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게다가 제가 봤던 공연은 소리꾼과 악사 모두 마이크를 쓰고 있어서 확성기를 통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전자 음향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우리 소리를 온전하게 감상”한다는 이 극장의 음향을 확인할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개관 10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극장이 달라졌던 것일까요?
아쉬움만은 아니었습니다. 풍류사랑방하면 자연음향이 자동완성 연관어처럼 떠오르는 건, 2015년 10월 이 극장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입니다. 당시 이 극장에서는 금요공감이라는 기획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는데, 전통음악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의 무대를 매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또 적극적으로 다장르 협업 프로그램을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11월에 이 무대에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앙상블 시나위는 극단 골목길 박근형 연출과 협업을 구상하게 됩니다. 앙상블 시나위와 극단 골목길은 이미 함께 무대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불과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최 측은 연극을 빼고 음악공연으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당시 상황을 두고 오가는 엇갈리는 여러 말들을 옮길 수는 없고, 앙상블 시나위는 주최 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결국 공연을 취소합니다. 이러한 저간의 상황이 SNS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국립국악원은 풍류사랑방은 전통음악을 위한 자연음향으로 설계되어 음향과 조명 장치를 사용할 수 없는 극장으로 연극에 적합하지 않기에 공연의 완성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음악 중심 공연으로 변경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요지의 해명글을 게시합니다. 이 석연치 않은 해명으로 논란은 계속되고 예정되어 있던 예술가들의 공연 취소가 이어집니다.
이 사건을 좀 더 이해하려면 2015년 9월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의원이 폭로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심의 과정에서 박근형 연출에게 공연포기를 종용하고 문서를 조작했던 사건, 대학로예술극장 팝업씨어터 공연방해 사건 등을 옆에 두고 보아야 합니다. 이후 이 사건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다루게 됩니다. 위원회 종료 후 발행한 백서에 게재된 이 사건 진상조사결과보고서를 보면 당시 관련자들의 진술이 이어지는데 사건 당시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2014.11~2016.2), 조사 당시 주영한국문화원장(2017.12. 2018.3) ‘A’ 씨와 다른 참고인들의 진술이 엇갈립니다. 이에 대해 백서에서는 “이 사건 관련 A 주장과 이 사건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반대사실 및 정황”을 표로 정리해두기도 했습니다.(『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 부록 진상조사 결과보고서: 공연2』, 378쪽) ‘A’ 씨는 일관되게 공연장 문제였고 공연팀과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지만 (A 씨는 '박근혜정부의최순실등민간인에의한국정농단위혹사건규명을위한특별검사' 조사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진술합니다) 다른 참고인들은 공연 2주 전 앙상블 시나위 단독 음악공연로 변경하라는 지시가 A로부터 있었다고 진술합니다. 조사결과보고서의 결론은 문화관광체육부의 지시나 개입 정황은 확인되지 않으며 A 씨가 박근형 연출가를 문제 삼아 국악원 직원들에게 이 사건 공연의 조정 혹은 취소를 지시했고 연극이 공연장과 맞지 않는다는 해명 역시 A 씨가 주도했다는 것입니다.
자연음향 운운하며 연극공연을 올릴 수 없다고 했던 풍류사랑방에서는 지금 전 출연진이 마이크를 착용하고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백서에는 A 씨로 표기되어 있는, 사건 당시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 조사 당시 주영한국문화원장은 용호성 씨입니다. 2024년 1월 22일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보도에 따르면 용호성 씨는 고위공무원단으로 해외문화홍보원 원장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제야 풍류사랑방에서 처음 공연을 보면서 자연음향이 아닌 스피커로 전해지는 노래와 연주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사건이 여전히 생생한 것일까요.
이번 호에서는 두 편의 이슈와 한 편의 칼럼을 다룹니다.
김상철 “[이슈] ‘약자와의 동행’은 권력의 자기애에 불과하다”는 윤석열 정부의 약자와의 동행 정책을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 최초 장애인 미술작가 채용”을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분석합니다.
안태호 “[이슈] 시민 중심에서 K-성과로 드라마틱한 유턴- 대한민국 문화도시 선정 결과에 대한 10개의 단상”은 지난 해 12월 2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대한민국문화도시 후보지 선정 결과에 대해 분석합니다. 제5차 문화도시 지정을 폐기하고 시작한 대한민국문화도시 사업의 과정과 쟁점을 정리했습니다.
염신규 “[칼럼] 전망 부재, 다시 집요한 질문을 만들어야 할 때”는 산적한 과제에도 불구하고 문화정책의 의제설정의 어려움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자 진단입니다. 비단 문화정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 사회에서 삶의 자리가 매우 불안정해졌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제안입니다.
벌써 2024년도 12분의 1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몇 번 강추위가 남아 있겠지만 다시 봄이 옵니다. 우리 삶의 따스함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김소연 편집장
목차
[이슈] ‘약자와의 동행’은 권력의 자기애에 불과하다_ 김상철
[이슈] 시민 중심에서 K-성과로 드라마틱한 유턴- 대한민국 문화도시 선정 결과에 대한 10개의 단상_ 안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