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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약자와의 동행’은 권력의 자기애에 불과하다

CP_NET 2024. 2. 2. 13:35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약자동행위원회 위원장을 겸했다. 최근 정부 문서에서 떠돌고 있는 약자와의 동행은 여기에서 비롯된 정치적 언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전부터 약자와의 동행을 말한 오세훈 현 서울시장도 그렇고, 대개 보수 정치인일수록 약자라는 개념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언어사용에 민감한 사람은 누군가를 당연하게 약자라고 지칭하는 것자체에 불편함을 느낀다. 이를테면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는 노인은 약자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변화라는 것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며 누구나 그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근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성을 약자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운가는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강과 약의 문제를 단순히 젠더에 의한 근력 차이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장애를 갖는다는 것은 약자가 되었다는 뜻인가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약자가 되어버리는 사회 구조다. 가장 선명한 대비는 그토록 장애인을 앞세워 약자와의 동행을 말하는 윤석열 정부나 오세훈 서울시정이 정작 지하철을 함께 타자는 장애인들의 직접 행동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보이는 모습일 것이다. 즉 정부의 정치슬로건으로서 약자와의 동행은 정부가 선별한 약자에게만 해당된다.

 

 

역사적 이정표라는 장애예술인 창작물 ‘3% 우선구매 제도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3월 보도자료를 통해서 국가 및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예술 창작물을 구매할 경우 총 구매금액의 3%를 장애예술인의 창작물로 구매하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회에서 장애예술인지원법이 개정된 것에 따른 발표다. 낯뜨겁게도 문화체육관광부 스스로 이를 역사적 이정표라고 밝혔는데, 실속을 보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당장 실효성의 측면에서 보면, 2003년부터 시행중인 중증장애인생산물품법에 따른 공공구매의 1%를 우선구매하도록 한 제도를 참조할 수 있다. 해당 법률은 매년 공공기관에서 구입하는 물품 중에서 중증장애인이 생산한 물품을 전체 금액의 1% 이상 의무적으로 우선 구매하도록 했다. 2021년 기준으로 국가기관은 0.71%, 지방자치단체는 0.98%를 보였다. 그나마 공공구매 비중이 큰 공공기관에서 1% 남짓 구매한 덕에 매년 평균치로 1%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고 연간 7천억 원 규모다. 그렇다면 국가 및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구매하는 예술 창작물은 연간 어느 정도의 규모일까. 안타깝게도 해당 정책시행에 앞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장애예술인 창작품 유통 활성화 방안 연구’(조현성, 김현경 연구책임)에도 자세한 금액이 나타나 있지 않다. 3%라는 기준의 전제가 되는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의 예술창작품 구매 규모에 대한 데이터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3%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참고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정부미술은행이 연간 공모로 구매하는 미술품의 규모는 12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의 3%라고 해봤자, 3600만 원 수준이 된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직접 매입보다는 임대 방식으로 미술품을 활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실효성이 있는 규모가 나올지 의문이다.

 

만약 3% 우선구매제가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의 전체 예술 창작물 구매의 총량을 늘리는 데 기여를 한다면 이 정책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정부가 나서서 팔을 비트는 꼴이라면 오히려 합리적인 미술품 구매를 방해한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가 기존 청와대를 비우면서 장애인미술품 전시회를 한 적이 있는데 전시된 60점 중 25점이 판매되었고 이 중 8점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이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가 봐도 의구심이 일만한 상황이었고 실제로 물품관리법 시행령의 위반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 대해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는 언론 기고에서 공공기관의 장애인예술품 구매는 내년 3월부터 합법이고, 그 이전의 구매는 불법이라는 논리는 물은 아침에 먹어야 하니 목이 아무리 타들어가도 저녁에는 물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고문과 다름이 없다이라고 반박했다.(기고 “SBS ‘장애인미술품 불법구매방송 개구리에게 돌 던진 행위) 장애예술인들의 절박한 심정에 대한 호소라고 읽어야 할까. 이뿐만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비장애 예술단체의 지정교부 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이를 공모방식으로 바꾸라고 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경우에는 2022년 사업 기준으로 창작 부분에서는 37%의 예산이 비공모 사업으로 지원하고 있다. 사실상 지정공모 방식인 셈이다. 각종 행사성 사업에 해당되는 유통 분야로 가면 아예 44% 이상이 비공모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정도면 국정기조라는 비호 아래 위법과 예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정기조 다른 한편에는 불법 시위라는 공권력과 여론의 공격을 받고 있는 이동권 투쟁 장애인들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장애인 작가고용, 이게 장애인 직무개발이라고?

 

더 이상한 일은 2024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 최초 장애인 미술작가 채용이라는 보도자료 였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3년에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장애인에게 맞는 직무개발을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미술작가라는 직무를 만든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은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할 책임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2년 기준으로 상근직원수 271명으로 장애인 의무고용인원은 9명이다(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기준). 하지만 실제 고용된 장애인은 5명에 불과해, 2024년에 장애인 미술작가 3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해도 법적 의무고용 기준을 넘기지 못하는 8명에 불과하다. 무슨 이런 코미디가 다 있나. 애당초 법에서 정한 의무고용률도 지키지 않았던 기관이 장애인 미술작가 3명 고용으로도 의무고용률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위의 보도자료는 은폐하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 의무고용률 미달을 은폐하면서 내세운 공공기관 최초 장애인 미술작가 채용의 내용은 더 문제다. 보도자료에서 이 작가들의 업무는 창작활동으로 되어 있다. 알다시피 공공기관의 채용은 엄격하게 공개채용을 원칙으로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홈페이지에 따로 채용모집이라는 페이지가 있고 여기엔 공고, 서류전형 합격 공고, 최종 합격 공고 등이 게시된다.. 최소한의 채용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112일 입사를 환영했던 직원들에 해당하는 채용 공고는 확인되지 않는다. 특별 채용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경쟁 채용이기 때문에 지난 202397일의 공고와 같이 보훈 특별채용 공고가 나와야 한다. 즉 이번 채용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업무인 창작활동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조직도나 업무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조직도나 업무에 창작활동이나 작가라는 부서나 업무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로 장애인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직무개발은 특수한 직군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14년에 장애인고용률을 6%로 올리기로 하고 이를 위해 신규채용의 10%를 장애인으로 채용하고자 했던 서울시는, 서울시의 모든 직무에 대한 장애친화도를 측정하고 이것과 장애인 직원의 선호 직무 간의 불일치를 확인해서 선호 업무의 장애친화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장애인의 직무개발은 장애를 가진 직원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업무 환경을 장애가 있어도 가능하게 만드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상 장애인의 업무라는 것이 일반업무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특수직역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장애인 미술작가 채용은 약자와의 동행이나 장애인을 우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공공기관에 일을 하고자 하는 다른 장애인들의 기회를, 예술인이라는 이유로 선점한 것에 가깝다. 앞서 지적했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의무고용률도 지키지 못한 사업장이다. 이제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현업 예술인을 채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창작 행위 자체를 직무로 인정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것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의 역할 상 개인 창작활동을 공적 업무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가와 공공재원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적절한 비용으로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약자와의 동행은 권력자의 나르시시즘에 불과

 

정부의 약자와 동행에는 장시간 노동에 힘겨운 노동자들은 대상이 아니다. 대형마트와의 경쟁 속에서 힘겹게 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도 약자가 아니다.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은 약자가 아니며 사회적 참사에 의해 가족이나 아는 사람을 잃은 이들 역시 약자가 아니다. 아니, 이 정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빈곤층은 정부가 인증하는 약자에 해당되는가. 그렇다면 어찌하여 임대주택 예산은 삭감되었나.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은 약자가 아닌가, 왜 이들을 돕기 위한 사업은 사업비 전액이 사라졌나.

 

동행은 어렵고 힘들지만 옆에 함께 서겠다는 연대의식의 한 형식이다. ‘함께 맞는 비라는 말이 있듯이 구체적인 상황의 개선이 어렵더라도 함께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나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말하는 동행은 그런 마음을 찾을 수 없다. ‘약자를 선별하고 선별한 약자 옆에서 스스로 칭찬하기 바쁘다. 이는 오히려 약자가 가진 간절한 마음을 이용하는 파렴치에 가깝다. 이런 것이 진정한 동행일리도 없다. 사회적 연대나 연민은 없는 자기애의 발로일 뿐이다. 아니 약자와의 동행 운운 이전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지원 기관으로서의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공기관으로서 상식을 세워야 한다. 언제부터 약자를 위한 정치가 권력자들의 나르시시즘의 수단이 되었나. 그것도 예술이 말이다.

 

 

 


김상철.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