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술인권리보장법, 현장의 관심이 중요하다
참으로 고단한 여정이었다.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구성되기 까지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했다. 2016년 문화예술인들에게 작동된 블랙리스트를 규탄하는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에서 촉발하여 광화문 촛불집회로, 그리고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나선 광화문에서의 1인 시위와 광장극장블랙텐트 공연들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이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권리에 대한 정당한 요구들로 집결되었다.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활동이 있었고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이행협치추진단’이 이어졌다. 그와 함께 추진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이 지난 2022년에 완료되었다. 그중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에 따라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이하,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이 지난 1월에 구성되었으니 이 모든 과정에 도합 8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표현의 자유가 법률에 의해 보장받아야만 하는 세상이라고 여기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블랙리스트가 자행되었고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을 무시하는 국가 폭력에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장치로 법안이 마련되었다. 법률이란 것이 의당 최소와 최저, 그리고 기본을 규정하고 있다. 설혹 이를 어기면 제재를 가하는 것이 법률의 속성인지라 사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지당하신 말씀뿐이다. 다만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면 해당 법안과 동일 법안에 의해 구성된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가 어떤 권력과 경우를 떠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예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취지에 의해 조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뭇 다른 이해와 해석으로 작용될까 싶은 점이다. 예를 들자면 이미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배포된 보도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언론들의 보도만 보더라도 “예술인 보수 미지급 업체, 정부 지원 못 받는다”(아시아 경제), “문체부, “예술인 보수 미지급 업체에 재정지원 중단 조치””(KBS) 등 언론의 자극적 제목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가 못 받는 돈 대신 받아주는 곳으로 이해될까 하는 우려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데, <예술인권리보장법>은 표현의 자유와 창작 활동 전반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다. 따라서 이 법은 예술인을 중심으로 창작 전반에 걸쳐 불평등과 불공정, 성희롱과 성폭력 등 모든 사안들을 따지고 가름해 보면서 예술인들을 보호하는 법률이고 제도다. 그런 이유로 가해의 대상에는 국가 권력도 포함된다. 따라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에 많은 후속조치가 따라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가 예술인들의 창작 작업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각종 문화예술재단과 국공립단체들이 지켜야만 하는 조례와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아직 마련된 곳이 전무하고 그나마 가장 빠른 진행을 보이고 있는 곳이라면 광주문화재단 정도다. 서울문화재단도 작년까지 움직임이 있었지만 현재 진행과정을 확인할 수가 없다. 그 외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3년 지원사업 선정 사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업 설명회에서 따로 언급만 하는 정도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도 간단한 교육용 자료를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는 자료들이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의 설명인 관계로 예술가들의 어법과 언어와는 거리가 있어 이해도가 낮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 현장과 결부된 현장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각 공공기간 내에서 작동될 수 있는 조례와 규칙들이 마련되어야 하고 이를 예술가들에게 공표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당한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적용 가능하고 무엇보다도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연에 방지를 할 수가 있다.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린” 그 모든 관행과 행위를 근절하고 막을 수 있다. 나아가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동일한 경우와 원칙에 의해 규정되고 처벌 사안을 가름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아직 자신의 분야에서 부당하게 자신의 권리가 침해를 당하면 해결 방법이 있다는 점도 모르고 있다. 관례적으로, 의당 그랬으니까, 억울하면 떠나야 하니까 참고 그냥 지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상상력을 제재당하거나 빼앗겨도, 성희롱과 성폭력에 그대로 노출되더라도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고 예술적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 아직도 신고의 부담을 느끼는 예술가들도 존재한다. 이 좁은 바닥에서 혹시 소외당할지 모르고 이상한 소문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계의 평판이 부정적으로 퍼져 다음 일을 기약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다양한 법안들과 연동되어 있다. 가령 신고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있다면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작동되고 가벼운 성희롱이라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과 연동되어 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프리랜서인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맹점인 ‘갑을관계의 모호함’을 해결하고 예술 창작 작업 중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함에서 예술가들을 보호하는 법이다. 쉽게 애기하자면 예술 활동 중 발생하는 반인격적 행위 모두가 문제가 될 수 있고 시정 조치 요구에서 처벌까지 다양한 조치가 가능하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준비모임에서는 이 법이 블랙리스트 작동에 시작되었음을 상기하며 조사권은 물론 가해자 처벌권도 강력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특별법이 아닌 이상 사법부에 버금가는 권한에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하며 조사권만 예술보호관에 부여되었다. 또한 기구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문체부 산하 기구보다는 문체부 자체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현재 예술정책국장이 예술보호관을 겸직하고 있다. 여러모로 살펴보면 법안의 내용도 보완이 필요하고 그러므로 개정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조직의 독립성을 어떻게 담보하고 유지해야 하는지도 관건이다. 아마도 이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까 싶은데, 당장 ‘윤석열차 사건’이나, 국가 검열에 대한 대응하는 향후 모습이 이를 증명할 듯싶다.
전쟁에서 공성전이 벌어질 경우 성을 공격하는 쪽이 지키는 쪽보다 어렵다. 그런 믿음으로 개인적으로 <예술인권리보장법> TF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고 이를 지키면서 보완하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제정 준비 시 많은 논의가 오갔고, 포기한 부분도 많으며 절망한 부분은 더더욱 많았다. 그래도 일단은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회 상정과 통과를 지원했다. 그리하여 이제 법은 시행되고 조직은 구성되었다. 어떻게 운영되고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는 아마도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들과 정부의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예술가들의 이해와 협조,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에 달리지 않았나 싶다. 대한민국에는 법은 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법들이 많다. 통과되어 공표되고 시행되지만 몰라서, 적용을 기피해서, 심지어 관습과 현실에 타협하며 무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제대로 작동하고 적용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심과 사례들이 나와야 한다. 관심이 있어야 좀 더 수월하게 합리적 내용으로 개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들의 권익과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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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혜. 발레리나 출신이지만 무용 이론과 비평이 주업이 되었다. 현재 한예종 한국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재직 중이며, 문체부 <예술인권리보장법> TF위원을 거쳐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