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상충하는 과제, 모호한 가치,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업무계획’ 뜯어 보기
정부 부처는 매년 초에 당해 연도 업무계획을 대통령에 보고하고 발표한다. 업무계획은 1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왜 할 것인가? 등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당해 연도의 정책 방향과 내용을 정리한 공식 문건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업무계획에 담긴 내용이 당해 연도에 해당하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책 과제라는 것이 단기간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년도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초기의 업무계획은 그런 점에서 해당 정부의 전반적인 정책 방향, 기조를 엿볼 수 있는 공식 자료이다.
현 정부는 출범한 해인 2022년 7월에 2022년 업무계획을 발표했고, 2023년 1월 초에 2023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정책 추진은 예산과 맞물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2년 업무계획은 2021년도에 확정된 예산, 즉 전 정부시기에 확정된 예산의 범위에서 작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충분히 담기지 않을 수 있다. 2023년 업무계획은 현 정부에서 확정된 예산에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2023년 업무계획은 오히려 현 정부의 기조에 더 근접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겠다.
K-컬처로, 산업-기업-스타발굴
업무계획 문건의 분량은 정해진 것은 없다. 2007년도에는 103쪽이기도 했고, 보통은 40쪽 내외이고, 적은 경우라도 최소 20쪽 이상 이다. 이전의 업무계획 문건의 분량과 비교할 때 현 정부의 업무계획은 우선 분량이 상당히 적다. 2022년은 12쪽, 2023년은 13쪽. 업무계획 문건의 분량이 정책의 질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문건의 분량은 매우 적다.
비전을 보면 2022년과 2023년에 모두 ‘문화매력국가’라는 것으로 정리하는데, 2023년에는 ‘K-컬처가 이끄는 국가도약, 국민행복’이 추가되었다. 문화매력국가의 방법론을 K-컬처로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K-컬처란 용어가 업무계획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4년 업무계획이다.) ‘국가도약’과 ‘국민행복’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정책 영역에서 K-OOO으로 일괄하고 있다. K-컬처는 K-콘텐츠, K-관광, K-아트, K-스포츠를 말한다. 한류란 용어가 회자하던 시기에 무엇이 한류인가라는 논의가 있기도 했는데, K-컬처는 아직 그런 논의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논의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간에 비전을 보면 K-컬처가 핵심 내용이라는 것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연차별 업무계획 비전 : 2000년~2023년>
구분 | 비전 | 가치 |
2023년 | 국민이 함께하는 문화매력국가 K-컬처가 이끄는 국가도약, 국민행복 |
자유․혁신, 공정․연대 |
2022년 | 국민이 함께하는 문화매력국가 | 자유, 공정, 번영 |
2021년 | 문화로 되찾는 국민일상, 문화로 커가는 대한민국 | 회복, 포용, 도약 |
2020년 | 문화로 행복한 국민, 신한류로 이끄는 문화경제 | 풍요, 선도, 품격, 활기 |
2019년 | 사람이 있는 문화, 함께 행복한 문화국가 | 평화, 포용, 공정, 혁신 |
2018년 | 사람이 있는 문화,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 | 정의, 향유, 혁신 |
2017년 | 문화체육관광의 생활화를 통한 국민행복 실현 | - |
2016년 | 문화융성을 통한 창조경제․국민행복 실현 | - |
2015년 | 문화로 행복한 삶 | - |
2014년 | 「문화융성」 문화가 있는 삶, 행복한 대한민국 | - |
2013년 | 문화가 있는 삶, 행복한 대한민국 | - |
2012년 | 문화가 창조하는 더 큰 대한민국 문화로 즐기고, 문화로 화합하며, 문화로 발전하는 대한민국 |
- |
2011년 | 함께 누리는 문화, 행복한 대한민국 | - |
2010년 | 더 큰 문화국가, 품격 있는 대한민국 | - |
2009년 | 문화로 생동하는 대한민국 | - |
2008년 | 소프트파워가 강한 창조문화국가 | - |
2007년 | 문화로 부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 | 창조, 소통, 나눔 |
2006년 | 창의한국, 문화로 부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 | - |
2005년 | 창의한국 | - |
2004년 | ※ 비전 문구를 특정화 하지 않음 | - |
2003년 | ※ 비전 문구를 특정화 하지 않음 | - |
2002년 | ※ 비전 문구를 특정화 하지 않음 | - |
2001년 | ※ 비전 문구를 특정화 하지 않음 | - |
2000년 | 문화의 힘으로 ‘삶의 질’ 향상 | - |
*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년차별 업무계획은 2000년부터이고, 이를 토대로 비전으로 특정화된 문구를 중심으로 정리함
* ‘가치’ 항목은 2023년 업무계획에서만 비전 도표에서 명시하고 있음. 다른 년도 업무계획에서는 내용 중에 작성된 것을 근거로 정리함(‘가치’ 항목이 비어있는 것은 내용 중에서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표에 넣지 않았음)
업무계획에서 첫 번째 과제가 대체로 제일 중요하다고 보는 과제, 즉 핵심 과제이다. 2022년 업무계획에서는 첫 번째 과제가 청와대였다. 다른 과제들은 1쪽(콘텐츠는 2쪽)인 것에 비해 전체 12쪽에서 3쪽이 청와대 활용 내용이다. 2023년 업무계획에서 첫 번째 과제는 “K-콘텐츠, 수출 지형을 바꾸는 게임체인저” 이다. K-콘텐츠는 독립적인 영역일 뿐만 아니라 관광 등 문화부의 다른 업무 영역을 견인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제조업, 서비스업 등을 견인하는 핵심 영역이자 정책 도구화되는 영역이 되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류가 주요한 정책 관심으로 부상하면서 콘텐츠 자체에 대한 수출지원뿐만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한류를 활용하는 것들도 함께 정책 과제로 설정되기도 했다. 일례로 가전제품을 비롯한 디지털기기에 한류 콘텐츠를 내장해서 판매하는 방안도 있었다. 2023년 업무계획에서는 이러한 흐름에서 더 나아가 콘텐츠를 “게임체인저”로서 설정하고, 이를 위해서‘총력 지원’을 한다.
업무계획에 포함된 개별 정책과제를 하나하나 살펴보기에는 내용이 매우 간략할 뿐만 아니라 새롭다고 보여지는 것은 없다. 지난 정부뿐만 아니라 그 이전 정부 시기에서도 언급되고 계획되고 추진되었던 정책 지평과 다르지 않다. 매년 업무계획이 새로운 것으로만 작성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정책적 요구가 역사성이 있듯이 그에 반응한 정책 과제도 역사성이 있다. 이전 정부에서 했다고 지속적으로 반응해야 할 정책 요구를 무시하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것은 몰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자칫 정책이 사유화될 수가 있다. 물론 당연히 좀더 강조되거나 확장된 내용은 있다. 콘텐츠 분야의 청년 스타트업의 확대, 금융지원 확대, 관련 기관․기구 설립, 규제 개선, 관련 인력 양성, 관련 기업 지원 등에서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다. K-컬처로, 산업-기업-스타발굴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드는 생각은 아직도 국가주도의 강력한 수출지향 정책을 그것도 문화영역의 핵심 정책으로 설정해야 하는 것인가?
약자는 누구이고, 불공정한 문화향유는 무엇인가
이전 업무계획과 비교할 때 새로운 것이 아예 없지는 않다. 예술정책에서 ‘예술산업’을 본격화했다. 이전에도 예술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2023년 업무계획에 명시화한 것이다. 산업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는 문화활동(창작, 향유)에서 취약계층, 소외계층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2023년 업무계획에서는 ‘약자’라는 표현을 명시하고 있다. “약자 프렌들리 정책 공세적 확대”인데 대체로 장애예술인 정책을 말한다.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정책 확대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것으로 환영할 내용인데, 장애인을 약자로 보는 관점은 환영할만하지 못하다.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은 누군가에 의한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는 관점에서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공정’에 대한 것이다. 이전의 업무계획에서도 공정은 주요한 정책 과제로 설정이 되었는데, 그 내용은 창작과 유통에서의 공정한 환경 조성(권리, 대가, 인권 등)에 대한 것이다. 즉 관행적인 불공정한 환경을 근절하는 것이다. 2023년 업무계획 중 콘텐츠정책에서는 공정․상생 환경 조성, 예술정책에서는 예술인들의 창작 대가 현실화로 세부 과제로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공정이 다른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공정한 문화 누림”, 즉 “문화를 공정하게 향유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이고, 그 내용은 기존의 문화활동 격차 해소와 기회 확대에 대한 것이다. 내용으로는 새로운 것은 아니고 어느 시기의 업무계획에서도 늘 있는 주요 과제이다. 새롭다는 것은 향유를 공정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불공정한 문화 향유를 전제해야 가능한 것인데, 문화 향유에서 불공정함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이러한 불공정 문화 향유의 원인 무엇일까? 이것에 대한 내용은 업무계획에 없다. 기존의 과제의 내용이 공정이란 용어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새롭게 표현된 것들이 있는 반면에, 이전 업무계획들에서는 주요하게 설정되었던 정책과제들이 없는 것들도 있다. 매년 업무계획에 있지는 않지만 정부 출범 초기의 업무계획들에는 거의 있는 과제들이다. 첫째는 문화행정 개선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는 이전의 불합리하거나 적절하지 못하거나 또는 좀 더 정책 추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문화행정 개선이란 과제를 주요하게 설정했었는데, 2023년 업무계획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둘째는 일자리 창출이다. 특히 청년 일자리 창출. 모든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은 핵심 과제중 하나였다. 현 상황이 과거와 비교해서 좋아진 상황도 아닌데, 2023년 업무계획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다만 스타트업 지원 확대는 있다. 셋째는 남북 문화교류 다. 이 과제도 매년 업무계획에 있지는 않지만 초기 업무계획에는 대체로 있다.(2013년~2017년 업무계획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남북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정책은 통일부만의 업무는 아니다. 2023년 업무계획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앞서 3개 과제는 2022년 업무계획에도 없다.) 넷째는 정책 진단 이다. 정책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최종 과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설정하는 것이 우선이자 기본이다. 즉 과제 설정에서 왜(why)라는 과제에 대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하고, 이러한 문제설정을 위해서는 진단이 있어야 한다. 이전의 업무계획들에서 정책진단이란 항목을 명시하고 작성되지 않았지만, 한계, 문제점, 개선점 등이란 항목에서 정책 진단에 대한 내용이 작성되어 있다. 그런데 2023년 업무계획에서는 이 부분이 없다.(2022년 업무계획에도 없다.) 정책 성과가 정책 진단을 전적으로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2023년 업무계획에서는 “자유․혁신”, “공정․연대”를 가치로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과제와 연결한다. “자유․혁신”은 콘텐츠, 관광, 예술 과제와, “공정․연대”는 지역, 향유, 스포츠 과제와 연결되어 있다. 가치와 과제의 연결에서 혁신은 산업 혁신이란 측면에서, 나아가 창의성이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으나, 자유, 공정, 연대는 과제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연대는 “문화로 세계인과 연대하는 대한민국”이란 과제명에서 언뜻 보여지기는 하지만 이를 연대란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노동시간 단축 없는 여가활동 증가는 불가능, 상충하는 정책들
2023년 업무계획에 있는 많은 과제들은 하나하나 다 필요한 영역들이다. 일부러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점들이 있다.
첫째, 문화예술활동은 시간, 특히 여가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9년 대한민국 성인(19세 이상)의 평균 생활시간을 보면, 필수시간 11시간 33분, 의무시간 7시간 39분, 여가시간 4시간 47분 이다.(2019년 생활시간 조사 결과, 통계청, 2020. 노동시간은 의무시간에 포함된다.) 여가시간 중에서 문화 및 여가활동 시간은 3시간 46분이다. 생활시간의 구성은 어느 한 영역의 시간이 증가하면 다른 영역의 시간은 줄어드는 일종의 제로섬이다. 현 정부는 주 40시간 노동시간을 증가하려고 하는 노동정책을 표방했다. 노동시간이 늘어나면 필수시간, 여가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국민들은 문화예술활동 활성화 지표를 위해서, 공정한 문화누림을 위해서 잠 자는 시간을 줄여서 여가활동을 해야 하는가?
둘째, 현 정부 출범 1년이 되지도 않는데 벌써 검열 문제가 여러 차례 있었다. 검열은 문화예술정책과 가장 대립하는 행위이다. 검열이 문화예술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가는 역사적으로 경험했다. 자유라는 가치와 검열이 문화정책에서 동반할 수 있을까? 아니면 표방하는 자유 가치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
셋째는 장애인의 접근권은 생활의 기본 권리이다. 그러기에 국내외적으로 이와 관련한 협약, 법률 등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상황이다. 장애인의 이동권도 지원하지 못하는데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에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삶의 기본권도 충족되지 못한 환경에서 문화예술활동 지원이 어떤 가치를 갖고 있을까?
그리고 세부내용 중에서 학생선수의 운동권과 학습권의 조화로운 보장이 학습권의 비중을 줄이는 것인가?(출석인정일수 기준 완화(2023년 업무계획 13쪽)) 지역의 교통체계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관광객 유입 증대를 위해 관광 중심으로 교통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적절할까? 지역소멸이 현실화되고 있는데 관광객 유입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정주인구 1명 감소에 따른 소비감소를 대체하기 위해 관광객 약 41명 필요(2023년 업무계획 9쪽)) 이러한 세부적인 내용은 업무계획에서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지 않아서 우려가 기우일 수도 있다.
어느 시기의 어느 정책이든 항상 충분히 만족스러운 적은 없다. 그것은 공상적 기대일 뿐이다. 그렇지만 과정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있을 수 있고, 정부의 정책은 그래야 한다. 업무계획에 적시되어 있는 문장들이 아무리 좋아도 가능성의 기대와 대립하는 태도는 녹슨 활자일 뿐이다.
김민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학 시절 연극이 좋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문화운동과 조우하였다. 90년대 초반 석사 과정 시절 국내 최초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생활실태조사를 했다. 2000년대 초 인디문화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게임산업 진흥기관에서 정책, 기획 업무를 총괄하고 문화산업과 예술 분야 정책 및 법제도 개선에 참여했다. 관심이 흘러다니는데, 예술과 문화산업에서의 공정 환경, 문화예술 분야의 노동 환경, 디지털시대의 문화운동은 무엇일까 그리고 최근 지루함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