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예술인권리보장법>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 정책의 다양한 현안을 다루기 위해 정기호 외 '호외'를 발행 합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문학 작품에서 결말을 짓거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연출장치(통상적으로 신의 등장)를 뜻하는 말이다. 6월 21일자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가 공개한 ‘광주시립극단’ 문제에 대한 답변을 보면서 떠오른 단어다.
광주시립극단 문제라는 것은 ‘작품별 단원제’를 운영하면서 고용한 프리랜서 예술인에 대한 갑질 폭력과 폭언, 성희롱 등과 이 문제의 공론화 이후 책임을 회피하는 광주광역시와 시립극단 측의 태도를 일컫는다. 더 구체적으로는 “<전우치> 작품의 연습 및 공연 과정에서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의 부재 가운데 막강한 권력과 위계 구조의 정점에 있던 극단의 상임 단원인 연출과 무대감독에 의해 프리랜서 객원 단원인 조연출과 배우 3인이 피해를 입은 사건”(현장소통위원회 제안내용) 이다. 지난 4월 13일에 접수된 본 건은 6월 21일자로 답변이 완료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인권위 제소과정을 함께 했을 뿐이다. 따라서 해당 답변에 대한 제안자의 수용 여부는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고 설사 이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차적으로 대책위 및 당사자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전제로 해서, 다만 최근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둘러싼 어떤 현상을 광주시립극단 사건에 대한 답변을 근거로 생각해 보고 싶다.
답변은 제안자가 공론의 장을 마련할 것과 프리랜서 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제정을 요청하였다고 정리하고, 이 문제가 “큰 틀에서 여전히 답보 중인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으로 수렴된다”는 인식, 그러면서 8월부터 온라인 공론장을 통해 권리보장법 사안을 다루고 ‘기초예술의 의미와 범위’, ‘공정생태계’라는 대 주제에 대한 정기적인 기획연재를 통해서 다룰 것이라는 방법론, 마지막으로 추가적인 예산확보를 전제로 권리보장법에 대한 공개토론회도 고려하겠다는 시기로 구성된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경유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적인 국정과제에 포함되었고 문화예술운동단체들의 최우선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예술인의 권리와 법적 지위에 대한 명시적 보장과 함께 권리 침해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현장에서 벌어져왔고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것은 분명하다. 2020년 6월 29일에 발의된 법률안은 내내 국회 상임위원회 캐비넷에서 잠을 자다가 최근인 6월 23일이 되어서야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다루어졌다. 법률 제정은 더디고 이를 바라보는 예술계는 속이 탄다. 그런데 예술인권리보장법이 그만큼 절실한 이유는 뭘까, 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법률이란 것은 발견적이거나 사후적이다. 없던 권리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있는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이를 지키기 위해 법률이 필요해진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명확하게 후자에 가깝다. 앞서 광주시립극단의 문제를 보자. 정규단원이 프리랜서 단원들에 대해 갑질을 했고 폭언과 성폭력을 행사했다. 또한 작품별 단원제라는 고용형태가 만들어내는 취약성으로 인해 현장 예술인들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상황 역시 분명하다. 시립극단이기 때문에 광주광역시가 운영에 대한 포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역시 논란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시립극단의 문제는 광주광역시와 시립극단, 그리고 그 둘의 정당성 근거가 되는 광주시민들의 의지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게 풀리지 않는 이유로 ‘법률의 미비’를 든다는 것은 문제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문제와 상식적인 해결과정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법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광주광역시와 시립극단의 ‘수동성’을 인정하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구태여 법률을 통해서 문제를 정의하고 또 실효성을 위해 벌칙 조항을 강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은, 예술계의 다양한 문제들이 제도적 강제를 통해서 ‘수동적으로 해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률 이전에, "당연히 그래야 하는 규칙"
기득권 구조가 공고할수록 법률을 통한 강제력은 약자의 수단이겠다 싶으면서도 뭔가 어색하다.
그것은 바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태도 때문이다. 기억이 맞다면 현장소통소위원회는 공론화, 제도혁신, 권고 등 제안한 내용에 대한 처리경로를 가지고 있다. 만약 광주시립극단의 문제가 문제인지 문제가 아닌지 모호하다면 공론화를 거쳐서 문제를 예각화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 문제가 명확하다면 적어도 광주광역시에 대해 ‘이런 저런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광주시립극단 문제에 대한 답변은 이 둘을 다 비껴간다. 구체적인 사건으로서 광주시립극단 문제를 ‘예술인권리보장법’의 문제로 자리바꿈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있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이 되겠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서 광주시립극단 문제를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입장이 나왔어야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현장의 예술인이 겪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선언해서는 안된다. 현장소통소위원회는 그러한 선언이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외적 기구다. 크게 다르지 않다면 광주시립극단의 문제는 전국의 모든 공공예술단에서 벌어지는 문제일 수 있다. 단지 터져 나오지 않거나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피해는 국회에서의 법률처리와 별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과정에서 공론화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국가기구로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능은 이런 것이 아닐까.
다시 강조하지만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법률로써 굴복시키는 힘은 결국 국가의 힘일 뿐이다. 국가는 정부라는 인격을 가진다. 블랙리스트는 반예술적, 반인권적 정부의 인격이 드러난 것이다. 법률로써 그 때 그 가해자들이 예술적, 인권적 인격을 가진 정부의 얼굴로 등장할 수 있을까. 이건 또다른 논쟁거리다. 그럼에도 사회의 진보는 ‘법률이 그러하니까’ 이전에 ‘그것이 당연하니까’라는 규칙을 만들어내는 힘을 통해서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구체적인 사례와 그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들이 모이고 모이는 축적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법률로써 대체되지 않는 상식의 권력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질문은 이렇다.
“광주시립극단의 문제에 대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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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위원, 제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