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변화는 어떻게 오는가: 광주시립극단 사태에서 본 예술노동, 예술인권리보장
편집자 주: 관찰해온 바, 오랫동안 현장에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나 변화에 대한 신념보다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우려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주된 동기로 삼고 있었다. 그런 감정이 견고해 보였던 부조리의 관행을 무너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을 청탁하면서 몇 가지 궁금한 부분을 전했고, 이를 고려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아예 서면인터뷰 형식의 글을 작성해 주었다. 문답으로 전개되지만 인터뷰는 아니다. 질문과 답변이 모두 글쓴이에 의해 작성되었다. (김상철 편집위원)
1. 광주시립극단에서 발생한 일, 어떤 일인가요?
광주광역시립예술단은 시민의 정서 함양과 지방 문화예술 창달을 위해 시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예술기관으로 광주시립극단은 광주문화예술회관에 상주하는 8개 광주광역시립예술단 중 하나입니다. 광주시립극단은 예술감독이 공석으로 막강한 권력과 위계 구조의 정점에 있던 극단 상임 단원인 연출자와 무대감독이 지난해8월 공연된 <‘전우치 comeback with 바리>에 참여한 프리랜서 배우, 조연출 4인에게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불공정 계약 종용 등의 가해와 ‘예술인복지법’ 상의 표준 계약서 미준수, 보험 미가입 상황 속 발생한 안전사고 문제입니다.
2. 9개월이 지난 현재 문제가 잘 해결되었나요?
작년 10월 광주시 인권 옴부즈맨의 인권침해 인정과 법령 위반 의심 사례들에 대한 검토 및 시정 조치 권고가 이뤄졌고, 광주지방 고용노동청은 작품 참여 배우, 조연출에 대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는 프리랜서 공연예술인에 대한 근로자성을 인정한 첫 사례라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가해 단원들에 대한 중징계 처분 의결을 공식적으로 밝힌 광주문화예술회관은 발표 내용과는 달리 가해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가벼운 경징계 처분을 내렸으며 작년 8월 <전우치 comeback with 바리> 공연 이후 진행된 두 번의 정기 작품에서도 ‘작품별 단원제’라는 명목으로 공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품별 단원제는 상임과 비상임 단원의 지위에 해당하지 않기에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계약입니다. 극단 운영의 총괄 책임자인 극단의 예술감독은 작년 4월부터 현재까지 공석인 상황입니다.
3. 해당 문제가 지역 사회 내에서, 특히 문화예술계 내에서 왜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나요?
어쩌면 이번 시립극단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와 잘못된 관행, 예술인 복지법 위반에서 예술계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 맺어진 계약. 기준 없이 작업이 끝나고서야 알 수 있는 보상금, 보험 가입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에서 늘 위험에 노출돼야 했고, 노출시켜왔던 우리 모두 이러한 문제를 발생시킨 당사자였습니다. 누군가는 이 문제를 발생시킨 책임을 인정하고 새로운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에 동참했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외면하고 회피했습니다.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위태로웠던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를 유지하며 잡음을 막아내는 일, 말하자면 2차 가해와 본질 왜곡에 더 열을 올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행여 개인의 갈등과 불만으로 비추어질까 두려워 수많은 2차 가해 상황에도 대응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의 진심만을 동료들에게 어필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여야 할 책임이 있는 주체들의 무책임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문화예술계의 현안을 외면하는 예술 관련 협회/단체, 문화기관, 행정, 의회는 입장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느 것도 책임지지 않았고, 자신들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해결되어야 할 일이 문화체육관광부 황희 장관을 직접 만나 호소를 하고 장관 차원의 문제 검토를 약속받게 했다는 것만으로 중간 책임자들의 무책임함이 증명되었습니다. 노동청의 처리 결과만을 근거로 시정 권고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는 행정이 내용의 개선을 끝까지 책임져줄 일은 만무했습니다. 함께해 주는 대책위가 없는 개인이었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막막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행히 최근 지역 문화예술계 동료들이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고 예술인의 존엄과 권리 보장의 필요성을 함께 이야기해 주시고 계십니다. 진심이 통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도 현저히 줄어든 상황입니다. 행정과 의회 역시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정책과 조례 제정을 약속해 주었고 관련한 정책토론을 광주광역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 위원장 김나윤 시의원과 6월 중에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4. 이미 예술인 권리 보장이나 예술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식이 변해가는 만큼 제도가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된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통과가 되었다면 현재의 ‘예술인복지법’에 반영되어 있지 못한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 노동의 개념, 권리와 지위 보장, 차별의 금지, 기회의 평등, 성희롱/성폭력 없는 안전한 창작 환경 조성 등을 통해 더 많은 예술노동자들의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직업적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인식을 반영한 제도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무책임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술인 권리 보장법’ 제정이 문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의 개별 예술 활동, 노동환경, 계약 형태, 조건이 너무나 다른 상황에서 유일하게 문화예술 노동자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제도를 통한 권리와 지위 보장, 복지와 처우 개선입니다.
예술 혹은 노동, 예술가 혹은 노동자라 정의되고 불리는 문제의 대립을 멈추고 논의할 수 있는 시간과 교육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직업군의 노동자들과 같이 예술인들의 창작과정에도 물리적인 시간과 육체적, 정신적 노동력이 사용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에 우리의 활동이 노동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으로 불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무엇으로부터 보호를 받는지가 중요합니다.
5. 예술인 권리 보장이 법 제도 등 예술계 밖의 변화로 충분할까요? 아니면 예술계 내의 변화와 함께 해야 할까요? 혹은 선후가 있을까요?
그동안 문화예술인들이 예술 현장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에 조금은 무관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버텨내고 살아내야 하는 일상에서 무대 밖의 상황을 살피고 반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도가 마련되길 바라고 복지의 대상이 되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예술산업의 발전을 고민하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으로 예술인의 존엄과 권리 보장, 안전하고 공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조금은 넘어서는 정도의 수고로운 일, 애쓰는 일을 해야만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서로 편하기 위해 묵인해왔던 잘못된 관행, 계약서 미작성, 보험 미가입, 불공정한 보상을 멈추는 것도 예술계 내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예술계 안팎에서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예술계 안과 밖이 잘 협력할 수 있도록 함께할 사람들과 동력들이 끊임없이 생겨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이 멈춰지지 않아야 유행에 따라 흔들리는 정치와 행정을 견제하고 협력해서 예술인 스스로 우리의 존엄과 권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6. 피해 당사자로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들과 멀어져야만 하는 현실이 힘들었습니다. 예술 활동, 가족, 친구, 잠, 식사, 건강, 돈, 여유와 함께하지 못한 10개월입니다. 피해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왜 모든 것을 소모해야만 일을 해결할 수 있는지, 변화는 왜 헌신과 희생을 동반해야만 이뤄지는 것인지에 대해 매일 밤을 새워가며 고민을 했습니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저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소모하기보다는 저를 위해서라도 더 나은 예술환경 조성을 위해 긍정적인 모든 것들을 생산해 갈 계획으로 즐겨내고 있습니다.
7.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목표는 문화예술계 동료분들과 우리 스스로의 권리를 만들어가는 일을 함께 해나가고 광주 지역의 동료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해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하면서 지난 10개월 동안 단 한 편의 작품도 출연하지 못하다가 올해 ‘연극 전태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했던 생각과 행동, 꿈꿨던 삶이 지금을 살아가는 제가 바라는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단 한 사람의 예술인을 살려내는 일이 대한민국의 모든 예술인을 살려내는 일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어떠한 하나의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하고 같은 문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줄 좋은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무대 안팎에서 관객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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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국. 배우이며 작품을 적고 연출한다. 십여 년의 활동에서 느꼈던 문화예술계의 잘못된 관행과 너무도 열악한 예술인들의 권리와 처우가 개선되는 과정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무대 안에서는 관객으로서의 시민을, 무대 밖에서는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친구로서의 시민을 만나 안전하고 공정한 문화예술생태계 조성을 고민하고 있다. 작년 광주시립극단에서 발생한 예술인 노동인권침해 피해의 당사자이며 광주시립극단 부조리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에서 문제를 알리고 있다. 11월과 12월에는 전태일이 되어 무대 안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