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문화도시조성사업] 맥락을 읽고 가치를 드러내는 ‘평가’가 필요하다
[편집자 주] 문화도시조성사업이 여러 도시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문화도시조성사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 스스로 도시의 문화환경을 기획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18년 5월 발표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차례에 걸쳐 문화도시를 지정하고 도시별 특성에 따라 중앙정부는 최대 100억원(=100억원 지자체 매칭)을 지원한다는 계획입니다. 이에 따라 2019년 12월 1차 문화도시 대상지로 경기 부천시, 강원 원주시, 충북 청주시, 충남 천안시, 경북 포항시, 제주 서귀포시, 부산 영도구 등 일곱곳을 지정한데 이어 2020년 12월에는 제2차 문화도시로 인천 부평구, 강원 춘천시, 강원 강릉시, 전북 완주군, 경남 김해시 다섯 곳을 지정했습니다. 문화도시 지정과정은 여러 지표에 따른 평가과정을 거칩니다. 그 평가과정에 대한 제언입니다.
사전적 정의로 평가(評價, evaluation)는 사물의 가치나 수준 따위를 평함. 또는 그 가치나 수준이 높은지 혹은 낮은지를 매긴다는 의미이다. 영어에서 평가 ‘evaluation’은 ex(밖으로)+value(가치)+ate(동사)’가 연결되어 있다. 즉 평가는 가치를 규명하여 드러내는 작업이다. 평가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평가(결과)가 ‘높다’ 혹은 ‘낮다’와 같은 이분적 시각에서 접근할 때 순위가 매겨지고 경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현재 문화도시 조성사업 평가가 이런 방식을 따른다. 영역마다 점수가 배정되어 있고 기준에 적합한 객관적인 근거(?)를 찾아 점수에 반영한다. 평가항목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항목설계는 이해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감점을 당하지 않는 방법론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족집게 과외를 받은 것처럼 모든 지역 조직구성에는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쓰고, 모든 라운드테이블은 ‘시민주도’라는 말이 붙어 있다. 하나라도 더 MOU를 맺어서 더 많이 연합하고 있다는 증거를 만들고 조례도 더 많이 더 조밀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기본이다. 마치 감점을 안 당하는 방법론을 아는 도시가 승리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런 단어들로 채워진 도시계획들은 차별성이 없다.
문화도시 평가과정은 서면심의와 현장심의로 나뉜다. 지역은 자신만의 선수를 앞세워 서면심의자료를 기가 막히게 만든다. 심의자료만 보아서는 이 도시가 문화도시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워 보인다. 문화를 덧붙인 새로운 단어와 깔끔하게 만들어진 도식, 그래프가 지면 한가득 채워진다. 물론 잘 쓰인 보고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현장의 경험과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똑같은 사업을 했어도 그 포장 기술에 따라 성과는 완전히 다르게 드러날 수 있고 직접 보고 듣지 않는 이상 그 한계는 명확하다. 또 현장심의는 어떤가. 그 역시 준비된 게임이다. 최대한 감점을 피하는 현장 코스와 PT가 준비되어 있다. 이 방법론도 점차 학습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심의위원을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유지할 것, 문화도시에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되 전문가답지 않은 시민이 참여할 것. 이 보이지 않는 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점수에 반영이 안 된다고는 말하지만, 사실 모두 알고 있다. 눈에 보이는 요소 하나하나가 점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안타까운 점은 탈락하는 도시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도시는 정말 열심히 했지만, 그 과정을 보고서, 또는 최종 PT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면 너무나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제한된 20분 안에 365일 또는 730일의 사업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민하는 담당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결국 심의 기준 점수표다. 그리고 이 점수표에 앞에서 이야기한 방법론을 끼워 맞춘다. 문화도시 조성사업 자료를 준비하는 담당자 중에 누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제 ‘평가 피로’를 말하고 싶다.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최소 2년의 긴 준비과정을 거친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칠 때가 많고, 계획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정이 없다. 사업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도 힘들지만, 유독 평가로 인한 피로가 가장 힘들게 느껴진다.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긴장감을 유발하기 때문도 있지만, 행여나 점수 기준표에서 빠진 것이 있는지, 또 감점에 해당하는 미흡한 점은 없는지 등등으로 평가일시가 다가올수록 스트레스는 극도로 높아진다. 다른 도시보다 더 높은 점수로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므로 그 피로와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평가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공의 자금을 투입하여 도시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업에 걸맞게 참여와 향유를 넘어 도시 발전의 효과와 가능성까지 평가 기준에 반영된 점은 평가의 범위 측면에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업의 효과나 유용성을 따져 묻지 않는 것이 관례인 문화예술계에서 이와 같은 거시적 기준을 세운 이유는 아마 도시의 관점에서 문화를 방법론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 산업, 복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와 대응하면서 경계가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있는 문화정책 흐름과 더불어 전통과 현재, 개인과 사회, 삶과 가치를 연결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 사업의 목표에 비추어 이러한 평가 기준의 의도와 맥락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객관적 점수만으로 평가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많은 이가 공감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논할 때는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우열을 논하는 것이 아닌 인식의 전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다양성이 전제된 평가를 제안한다.
첫 번째, 특정한 날짜가 아닌 연중 수시 평가가 필요하다. 사전에 공지된 일정에 따라 진행되는 평가는 문화도시 준비과정 전반의 성과와 전망을 진단하기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오히려 암행어사처럼 몇 번이고 해당 도시를 찾아가 사업 과정에 참여하고 관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도시 입장에서는 진정성 있게 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줄 수 있고, 그 결과를 무리해서 포장할 필요도 없다. 최종심의를 위해 머리털을 쥐어뜯는 평가 피로도 다소 줄어들 수 있다. 이 방식은 심의위원의 노력과 수고를 요구하지만 2년의 문화도시 과정을 준비하는 도시를 온전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과 차별된다.
두 번째, 점수만이 아닌 다양한 평가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 도시를 방문하고 느낀 사업의 성과와 의미를 채점이 아닌 비평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현장을 관찰하고, 때로는 사업에 참여하여 점수가 아닌 비평critique, 리뷰review 등을 통해 평가를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한다면 어떨까. 작성된 평가내용은 다른 심의위원과 공유하고 상호 논의를 통해 의견을 구체화해서 지역 관계자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방식은 무엇을 했는가 또는 안 했는가에 대한 근거 찾기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비평에서 중요한 것은 횟수나 실행 여부보다 그 이면의 맥락을 읽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제안하는 방법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평가 방식의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강조하고 싶다. 문화도시가 도시 고유의 자원을 다양한 측면에서 활용해 창조성을 발현하는 것인 만큼 평가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우러져야 한다. 다양한 평가가 다양한 결과를 이끈다.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문화의 담론을 도시까지 확장했다. 기존 문화사업이 개별 프로젝트로 완결되는 것이라면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조례, 예산, 조직 등 도시정책의 여러 분야로 확장된다. 문화정책이 비문화적 목표와의 균형을 모색하는 지점으로 이동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과정에 대한 평가는 도시 발전을 견인하는 목적에 비해 너무나도 갇힌 시선에 머무르고 있다. 평가란 ‘가치를 찾아서 드러내는 것’이고 ‘가치가 형성되도록 재구성하는 것’이다. 점수만으로 평가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준비하는 지역의 구성원들은 다 알고 있다. 심의위원이 우리가 쓴 보고서와 자료를 얼마나 꼼꼼하게 읽고 질문하고 있는지. 바로 그 책상에 놓인 자료들이 너무나 많은 피로, 스트레스와 분투하며 불철주야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다양한 각도로 평가해주기를 기대한다. 단점을 부각하는 근거 찾기를 걷어내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피부에 와 닿는 생산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도시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좋은 평가 제도 안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선과 방식이 교차하였으면 한다.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피로감이 아닌, 설레는 작업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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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춘천문화재단 정책기획팀. 20대에 대학로에 발을 들인 후, 줄곧 관객 행동과 심리를 연구했다. 주로 사람들의 예술 경험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춘천문화재단에서 일하며 예술의 경험자뿐만 아니라 예술계(art world)를 연구대상으로 놓고 여러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