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공연예술계 멀티 페르소나의 분열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됨에 따라 호외를 발행합니다. 코로나19 전염병 위기 관련 이슈, 현장 소식, 위기 분석 등을 별도 간기 없이 발행합니다. 현장을 기록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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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공연예술계에서 창작자, 제작자, 극장 운영, 상주단체 등의 활동을 하며 각각의 위치에서 코로나19를 겪은 멀티 페르소나의 분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공연
나의 유일한 레파토리 공연이 엎어졌다.
3년 전부터 지역 재단이 운영하는 공공극장과 청소년 레파토리 공연을 만드는 작업을 해 오고 있었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되거나 축소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봐왔기에 재단과 계약 체결 시 코로나19에 대한 추가 조항을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공연 취소 시 작업자들의 작업비를 보존받기 위한 방안이었다. 재단 담당자의 수고로 주 차별 기여도에 따른 지급요율 세부 항목까지 만들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단 담당자와 난 작업이 취소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계약서상 코로나19에 대한 대비 조항을 만드는 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조항은 연습기간 내내 실로 든든했다. 우리가 만든 내용을 적용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기관도 생겼다. 좀 뿌듯했다. 그런데 공연이 한 달도 더 남은 상황에서 엎어졌다. 지역에 감염자가 증가하던 날, 갑자기 극장에서 나를 호출했다. 슬픈 예감은 역시나 적중했다. 공연취소.
“아. 매우 아쉽지만, 충분히 고민하시고 결정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극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을 겪었으리라 짐작해요. 어쩔 수 없죠. 주 관객층이 청소년이기도 하고....... 우리가 싸우고 있는 대상이 바이러스인데.”
나는 왜 공연취소 통보를 이렇게도 쉽게 받아들였을까. 그것도 무척이나 담담하게. 이 회의를 하던 중에도 배우들은 연습실로 오고 있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배우들이 운다. 올해만 네 번째 같은 상황에 빠진 배우는 외려 담담했다. 일주일이 지나서 배우들과 다시 만났다. 또 운다. 긴 장례를 치르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고 계약서에 명기한 조항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를 보호하려고 만든 주차별 작업비 보존 조항이 어쩌면, 독이 되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코로나19 상황은 점점 악화하는데, 공연 시기가 가까워져서 취소하게 되면 재단(제작자) 입장에서는 공연도 못 하고, 제작비는 주차별 작업비 보존 조항에 따라 대부분 지출하게 된다. 빠른 판단을 할수록 제작비 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한 달이 조금 더 남은 상황에서 공연취소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겠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라이브스트리밍은 현재 무료 서비스로 대부분 진행되기 때문에 사업에 이득이 되리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소설을 무대화한 작업은 출판사와 공연 계약을 했기 때문에,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전환 시, 저작권 계약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진다. 원작자의 의사로 스트리밍을 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뭐, 이런저런 각 각의 사정으로 나의 유일한 레파토리 공연이었던 작품은 사라졌다. 앞으로 공연예술계는 재난에 대비한 구체적인 계약서, 보험 등의 설계를 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극장
강화된 수도권 생활 방역은 극장을 포함한 모든 공공시설 중단을 권고하고 있다. 6월 14일까지였던 공공시설 중단 권고는 무기한 연장되었다. 공공극장들은 속절없이 셧다운 되었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참사를 겪으면서 안전에 대한 감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상황이고, 코로나19 또한 안전과 직결되어있는 문제다 보니 기관들은 시설을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관에 하달되는 지침, 그것을 받아들이는 기관의 운영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질본, 지자체는 공공이용 시설인 극장에 운영중단을 권고하는데, 공연예술계 코로나19 긴급지원금은 작품 발표를 기본 골자로 한다. 기준 없음이다.
‘공공극장은 닫을 건데, 민간이 민간시설에서 하려면 하던가. 코로나19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거니까. 알아서 판단해.’ 이렇게 해석하면 되는 건가? 블랙리스트때도 주변 작업 동료들이 이렇게 빈번하게 울거나 무력감에 빠지지는 않았다. 특정 팀, 특정 작업자, 특정 포지션 상관없이 모두가 속절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술계 코로나 트라우마는 깊게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의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사실 나는 민관거버넌스로 운영되고 있는 극장에 공동운영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부지침과 권고사항이 바뀔 때마다 극장을 닫을지 열지를 두고 몇 달째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우물쭈물한 공공극장을 보면 참 답답할 것이다. 나도 그 안에 있다. 이제는 공연을 뒤로 미룰 일정도 없다.
공공극장은 그저 권고를 따를 것이 아니라 현장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입장이 발표되어야 한다.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에 따른 운영 철학을 시민 사회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 또한 쉽지는 않다. 우물쭈물할 동안 또 한 공연이 사라지고 있다. 감염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역
나는 주로 지역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민간 연습실, 민간 극장 등 민간 창작 공간이 적고 공공시설 의존도가 높다 보니 공공시설이 닫혀있는 지금, 발표를 차치하더라도 연습할 공간마저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극단 피디님이 코로나19를 겪으며 지역에 극장을 만드는 상상을 한다. 공공극장이 줄줄이 셧다운하고 있는 지금, 참 거꾸로 간다. 그래도 신나는 상상이다.
그런데 우리 연극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영상장비를 검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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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환. 연출가. 앤드씨어터.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